중앙데일리

Anniversary of Religious Reform

Nov 01,2000

"Those preachers of indulgences are in error who say that by the indulgences of the Pope a man is loosed and saved from all punishment."

"Christians should be taught that he who sees anyone in need and, passing him by, gives money for indulgences is not purchasing the indulgence of the Pope, but calls down upon himself the wrath of God."

"Vain is the hope of salvation through letters of indulgence, even if a commissary - nay, the Pope himself - were to pledge his own soul for them."

Martin Luther, a Roman Catholic monk, nailed his 95 Theses against the practice of selling indulgences - papal absolution of sinners - to the door of the Castle Church in Wittenberg 483 years ago.

It was an act that put his life at risk, but one he felt compelled to perform. This marked the beginning of Protestantism - a branch of the Christian church that rejects the ornate trappings of Catholicism and believes the Bible is the sole source of revelation.

Martin Luther made clear in his theses the distinction between a kingdom of heaven ruled by God and a country ruled by secularists.

It is now a well-established fact that the German church cooperated, albeit only tacitly, with the Nazis during the World War II.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religious reformation, triggered by Luther, cannot be damaged by one historical incident. The anniversaries for religious reformation were varied at the beginning, including Luther's birthday (Nov. 10), the day of his death (Feb. 18), the day when the Augusburg Confession was submitted (June 25) and others.

However, in 1617, or 100 years after Luther's 95 Theses, the anniversary was agreed to be Oct. 31. In 1667, or 150 years later, the religious reformation anniversary was officially announced to honor Luther.

A few days ago, a Seoul district court became the focus of a dispute within a church. The court dismissed a case raised to annul the outcome of an election to select a chairman for a denomination. The court advised that "It is not acceptable that the religious sector raise a corrupted legal dispute. These problems should not be brought into court, but resolved in the spirit of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Before this court case, there were arguments about the hereditary position of the pastor. There were also disputes about church financing. The Bible warned against "in gathering the weeds, you root up the wheat along with them. Let both g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Maybe the true nature of these unfortunate incidents are different from what we have heard. Still, Christians should go back to the reformation spirit of Martin Luther to contemplate the role of the church.



by Noh Jae-hyun







종교개혁 483주년

'교황의 면죄부를 삼으로써 사람이 모든 징벌에서 해방받고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면죄부 판매 권유자는 그릇되다'

'이웃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면죄부를 사는 사람들은 교황의 사죄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행복해지리라고 믿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 교황 자신이 자기의 영혼을 걸고 보증을 하려 한대도 그렇다. '

오늘로부터 꼭 4백83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도사이던 마르틴 루터(1483~1546) 는 교회의 면죄부 남발을 규탄하는 '95개 조항의 반박문' 을 발표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많은 역사가들이 이 사건을 근대의 신호탄으로 삼는다. 한국 개신교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루터는 '하나님의 나라' 와 '세속인이 다스리는 나라' 를 구분했다. 독일 농민전쟁에 협력하지 않은 것도 이때문이라 한다.

그의 이같은 생각은 먼훗날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교회가 나치정권에 협력하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루터가 불을 댕긴 종교개혁의 의의마저 손상될 수는 없다.

종교개혁기념일은 처음에는 루터의 생일(11월 10일) , 사망한 날(2월 18일) ,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제시된 날(6월 25일) 등 여러 날이었지만 반박문 발표 1백주년인 1617년에 10월 31일로 가닥을 잡았고, 다시 1백50주년인 1667년에 공식 반포돼 오늘에 이른다.

며칠 전 서울지방법원의 한 재판부가 "종교계가 사회에 깨끗한 물을 흘려보내지는 못할망정 혼탁한 법적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세속문제를 법정으로 가져올 것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처리해야 한다" 고 충고해 화제가 됐다.

한 교파의 총회장 선거를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각하하면서 곁들인 말이었다. 그 전에는 담임목사직 세습문제를 놓고 토론회장에서 찬성.반대측간에 드잡이가 벌어졌다.

불투명한 교회재정을 둘러싼 잡음도 있었고 어떤 교파에서는 '금권선거' 를 폭로하는 양심선언까지 나왔다.

새삼 '곡식에 가라지가 섞였더라도 둘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는 성경내용이 떠오른다.

물론 사태의 진상이 전해진 것과는 다를 수도 있다. 아무튼 기독교인이라면 오늘만큼은 루터의 개혁정신으로 돌아가 교회의 역할을 되새겨 봄직하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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