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Love for Art Has No Borders

Aug 01,2001

In the 1920s, a significant number of Koreans moved to Gando (the Korean name for northeastern Manchuria). The immigrants took the train from Seoul to Wonsan in northern Korea. According to the author Takumi Asakawa, among the small family heirlooms and sentimental objects the families managed to carry with them were small, portable tables, shiny with wear. It is in Mr. Asakawa's 1929 book that these small tables - soban - are first mentioned in any record of folk art history.

Some may wonder why these people were taking up precious space with everyday items when they had sold their houses and left their homeland behind.

At that time, soban were not considered artistic, and yet Mr. Asakawa held them in high esteem and devoted a book, "Soban in Choson," to them. Muneyoshi Yanagi, a Japanese connoisseur of Korean art in the colonial period and a friend of Mr. Asakawa, wrote an epilogue for the book. Mr. Yanagi defined the beauty of Korean arts as simplicity and naturalness.

Even today, it is difficult to find a Korean art historian more perceptive than Mr. Yanagi. In his epilogue, he wrote: "Of the arts in Choson, the most notable are those of wood, not clay. It is rare to find folk arts and crafts which attract the human heart like this woodwork." Mr. Yanagi's explicit admiration for Choson artistry in the book should not be distorted as the hypocricy of a colonialist.

Mr. Yanagi's aesthetic point of view has a precedent, and that is William Morris, the 19th century British craftsman, designer, writer and typographer.

Mr. Morris, who hated mass produced objects, influenced Mr. Yanagi greatly. Today, the art and crafts movement that began with Mr. Morris emphasizes minimalism - a stripping away of excessive decoration. This concept has became popular again as disillusionment with the conveyor-belt nature of modern arts and crafts grows.

If Mr. Morris were still alive, there is an exhibition in Seoul that he would have wanted to see. On the second floor of Suwunhoigwan building, in Gyeongun-dong, Jongno-gu, he could see a collection of soban from the Choson dynasty. Mr. Morris might have said that the 300 soban on display are the model of minimal craft art.

Soban sparkle with uncluttered, appealing simplicity. They have the beauty of being worn from use. The exhibition continues until the end of the month; I suggest readers take their children during the vacation.

Perhaps one day these and other beauties of Korean folk arts and crafts will be appreciated in such world forums as Sotheby's.



The writer is an editor of JoongAng Ilbo publications.


by Cho Woo-suk







소반 (小盤)

1920년대 이 땅의 고단했던 민초들 상당수는 간도(間島) 이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주민들은 서울.원산을 거치는 열차 편을 이용했는데, 이 때 객차 안 풍경이 희한했다. 보따리 외에 반들반들해진 앉은뱅이 밥상 한두 개씩을 옆구리에 끼고 있지 않은가!

이 광경을 목격했던 한국공예 애호가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의 증언이다. 반상으로도 불리던 소반(小盤) 이 공예 연구사에 등장하는 첫 장면이다.

"집 팔아 고향 떠나는 마당에 품에 안고 있었던 게 소반이라니…" 할 것이다. 소반은 너무도 범용해보인다. 공예품이란 분류조차 어색할 무렵이다. 그 때 살뜰한 첫 연구서를 남긴 사람도 아사카와였다.

29년도에 선뵌 『조선의 소반』이 그것인데, 발문을 쓴 이는 친구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였다. 조선의 미를 질박한 자연미로 규정했던 그 야나기. 국내미술사 연구가 아직도 야나기 수준을 넘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발문에 이런 말이 비친다.

"조선의 예술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도자기보다 목공예다. 그처럼 사람 마음을 끌어당기는 공예품은 세상에 흔치 않다" . 야나기는 이 대목에서 조선에 대한 동경의 마음도 고백하지만 그 걸 식민지배자가 흘렸던 '악어의 눈물' 로 곡해할 필요는 없다.

물론 민족적 자부심에 우쭐대는 것도 '쇼비니스트 촌놈' 소리를 듣기 딱 알맞다. 중요한 것은 야나기 미학의 원조는 따로 있고, 그것이 19세기 영국의 괴짜 사상가 윌리엄 모리스라는 발견이다.

기계시대 대량생산 자체를 혐오했던 그가 야나기 등에 영향을 줬던 인물이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 한물 간 요즘 들어 다시 각광받는 것이 모리스의 작은 예술(Less Arts) 이다. '작은 예술론' 의 핵심은 과도한 장식성의 배제에 있다.

그렇다면 만일 모리스가 지금 서울에 나타날 경우 허위단심 달려가 볼 공간이 있다. '조선시대 소반전' 이 열리고 있는 수운회관 2층. 모리스는 그 곳에 선뵌 3백점 소반들이 '작은 예술의 전형' 이라며 무릎을 칠지도 모른다.

과연 소반은 모리스나, 그를 사숙했던 야나기.아사카와 등이 꿈꿔온 '삶의 직접성' 이 빛난다. 묻어 있는 손때 탓인지 고졸한 손맛도 여간 아니다.

다음 달까지 열리는 소반전(展) 에 방학을 맞은 아이들 손목을 잡고 함께 나들이해보자. 가서 확인을 해보자. 60년대까지도 우리 주위에 없지 않았던 소반이 왜 '작은 예술' 이고, 앞으로 반닫이.경대.문갑과 함께 소더비경매 등에서 확실하게 뜰 품목이라고들 말하는지를.



by 조우석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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