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The bridges of Koenigsberg

July 03,2002

Recently, a meeting of the Council of Baltic Sea States was held in St. Petersburg, Russia. Vladimir Putin, the president of Russia, attended the meeting personally, an unusual event, to assert the freedom of movement for the people of Kaliningrad, an exclave of Russia.

Kaliningrad was originally called Koenigsberg when it was the capital of East Prussia. The city was annexed by the Soviet Union in 1945. When the states around the Baltic Sea became independent after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Kaliningrad was isolated from the main body of Russia.

Russians have to travel to and from Kaliningrad via Poland or Lithuania. Since those two countries are set to join the European Union and, accordingly, to become the members of the Schengen visa regime -- the system that enables free movement within the European Union while reinforcing its external borders -- problems have arisen. Since the Schengen visa regime will require visas for travelers to and from Kaliningrad, it will interrupt the exchange of people and goods and leave the city very isolated.

Kaliningrad is divided into four areas by the river Pregel. The two areas and two islands on the river are connected by seven bridges. The beautiful port city is closely linked to the history of philosophy and mathematics.

The Koenigsberg Bridge problem, an early geometric puzzle, originated in the city. The question was: "Is it possible to walk across the seven bridges without crossing any of them twice?"

Leonhard Euler (1707 - 1783) solved the problem. After turning the locations connected by bridges into vertices and turning the bridges into edges, Euler proved that if more than 2 vertices have an odd number of edges meeting there, then it is impossible to trace each edge of the diagram exactly once without lifting the pencil, and so it is impossible to walk over each bridge exactly once.

We can understand how the mathematician from Switzerland came to take an interest in the bridges of Koenigsberg, a city far from the center of Europe, if we recall the strategy of Russian emperors in the 18th century. They took great interest in inviting noted scholars from developed European countries in order to nurture Russian arts and science.

Another important figure who is closely related with the bridges of Koenigsberg is Immanuel Kant (1724-1804). He was born in the city, lived his whole life there and is buried there. We should hope that the city will not become isolated from the world.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of the JoongAng Ilbo.


by Kim Seok-hwan







칼리닌그라드

최근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발트연안국 회의가 열렸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이날 회의에 직접 참석, 칼리닌그라드의 자유통행권 보장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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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동프로이센의 수도로 쾨니히스베르크로 불렸던 칼리닌그라드는 1945년 소련에 합병됐다가 소련 해체 후 주변국들이 독립하면서 러시아의 '엑스클레이브(역외영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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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로 가기 위해서는 리투아니아나 폴란드를 경유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들이 유럽연합(EU)에 가입, 역외 동유럽국가에 대해 엄격한 비자를 요구하는 솅겐조약 회원국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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솅겐조약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까다로운 출입국 과정과 비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칼리닌그라드 주민과 경유화물의 흐름이 사실상 차단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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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는 프레겔 강에 의해 4개의 지역으로 분리돼 있고, 이 4개의 지역은 7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인류 철학사.수학사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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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하학의 난제였던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건너기'는 바로 이 도시에 있는 7개의 다리를 두번 건너지 않고 한번에 건널 수 있는 방법론을 묻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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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오일러는 다리를 조사한 후 한붓그리기가 가능한 도형이 있고 불가능한 도형이 있다는 유명한 '오일러의 정리'를 만들었다. 스위스 출신인 그가 유럽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는가는 18세기 러시아황제(차르)들의 국가전략을 알아야만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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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러시아 차르들은 인재양성을 위해 선진유럽에서 위대한 학자들을 초청해오는 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는 데 주로 유럽의 명문가를 통해 우수한 인재들을 추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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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러는 '베르누이 가문'의 추천으로 러시아로 가 그의 천재성을 뽐냈는 데 후일 그의 명성을 탐낸 프리드리히 대왕이 그를 베를린에 불렀고 그는 거기에서 24년을 보내다 다시 러시아로 가 평생을 수학연구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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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와 또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인물은 이마누엘 칸트다. 칸트는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냈으며 매일같이 이 도시의 다리들을 시계보다도 더 정확히 지나다니며 산책을 했고 그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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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의 위대한 스승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이 도시가 냉전종식 후 세계에 닫혀 버린다면 이는 큰 비극이다. 원만한 해결을 기대한다.


by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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