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Better bilateral understanding

Jan 19,2003


On Feb. 10, 2001, the USS Greenville, a 110-meter nuclear attack submarine, collided in the ocean near Hawaii with the Ehime Maru, operated by the Uwajima Fisheries High School and used to train Japanese students. Nine people, including four fisheries students, are missing and presumed dead.

The U.S. government responded quickly. Officials of the U.S. Department of State, including Thomas Hubbard, now U.S. ambassador to South Korea, and the Department of Defense phoned the Japanese ambassador. U.S. Secretary of State Colin Powell called Yohei Kono, the Japanese minister for foreign affairs.

The next day, Thomas Foley, then U.S. ambassador to Japan, visited Prime Minister Yoshiro Mori and went to Kansai International Airport, where he met the victims' families who were leaving for Hawaii. He bowed deeply, saying that they were the persons to whom he should really apologize. The anger of the Japanese people slowly died down as the United States sincerely settled the accident.

Thomas Foley was U.S. ambassador to Japan from November 1997 to April 2001, after serving as speaker of 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 Because he represented Washington state in the House, he had a deep interest in Japan because of geographical proximity and extensive trade relations.

But Mr. Foley's participation in the Shimoda Conference, a private forum on U.S.-Japan bilateral relations, also shaped his attitudes. The conference began in 1967 in Shimoda in Shizuoka prefecture. Once every several years, dozens of politicians, economists and academics of the two nations discuss bilateral relations. The conference helped end the 27 year-occupation of Okinawa by U.S. armed forces in 1972. Mr. Foley first joined the second Shimoda Conference in 1969.

South Korea has been embroiled in controversy over pro-United States and anti-United States attitudes since last year. But it is doubtful whether influential figures here and in the United States have a deep mutual understanding. The Korea-Japan Forum, which began in 1993, was modeled on the Shimoda Conference.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should have a chance to talk that way. I hope prominent academics, such as those in the Institute of Foreign Affairs and National Security, can establish such a forum.

The writer is a deputy internation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Noh Jae-hyun

시모다 회의

재작년 2월 10일. 하와이 부근 해상에서 일본 수산고교의 실습선이 미군 핵잠수함과 충돌해 일본 고교생.선원 9명이 실종됐다.

사고 후 미국의 대응은 신속했다. 지금 한국대사로 근무 중인 토머스 허버드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를 비롯한 국무.국방부 관리들이 주미 일본대사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어 해명하고 사과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별도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외상에게 전화했다.

사고 다음날엔 토머스 폴리 주일 미 대사가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의 관저에 가 회담하고 곧바로 간사이 공항으로 날아갔다. 그는 막 하와이로 떠나려던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모리 총리에게도 사과했지만, 내가 진짜 사죄해야 할 분들은 여러분입니다"라며 일본식으로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상대의 문화를 배려해가며 뒷수습에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일본인들의 분노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원의장까지 역임한 후 일본대사(1997년 11월~2001년 4월)를 지낸 토머스 폴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통 정객이었다. 그는 자신이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로 두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지역구인 워싱턴주가 인구 1인당 일본과의 무역량이 미국에서 가장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어릴 때 본 일본 그림책이 너무 예뻤던 기억이 생생해서"였다.

그러나 폴리를 일본통으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시모다(下田)회의'라는 미.일 민간인 모임이다. 양국의 정.재.학계 인사 수십명이 몇년에 한번씩 모여 현안을 토의하는 이 모임은 67년 시즈오카현의 시모다시에서 발족했다. 오키나와 반환문제, 무역마찰, 냉전 후의 미.일 관계 등 굵직한 사안들이 난상토론의 주제였고, 오키나와 반환 같은 외교적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폴리는 69년 제2회 시모다 회의에 처음 참가한 이후 미국을 방문하는 일본 의원들을 거의 빠짐없이 만나 환담할 정도로 '친일파'가 됐다.

우리 사회에서 지난해부터 친미.반미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의 영향력있는 인사들이 실제로 상대국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시모다 회의는 93년 발족한 '한.일포럼'의 모델이기도 하다. 미국과도 터놓고 얘기할 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마침 외교안보연구원 등에서 중견 학자들이 비슷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니 기대해본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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