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Transitions, successions and ideology

Feb 20,2004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celebrated his 62nd birthday on Feb. 16, and this year’s birthday must have been special for him. It came 30 years after he was officially dubbed the successor of Kim Il Sung, his late father and the long-time dictator of North Korea.

In February 1974, Kim Jong-il was 32 and his father was 62.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ruling Workers’ Party had chosen Mr. Kim as the official heir who would inherit the regime. Until then, Mr. Kim had to go through a bloody power struggle. The fight started when military leaders challenged the power that the Kims held.

Kim Chang-bong and Heo Bong-hak, who masterminded the attack on the Blue House in 1968, had their own followers, and using their increased influence, they tried to change the balance of power when Kim Yong-ju, Kim Il Sung’s younger brother, was heir apparent.

Kim Jong-il did some intensive intelligence gathering and disclosed their corruption and scheming. They were purged from the party and the power of the ruling family grew stronger.

According to Jeong Chang-hyeon’s book, “A Close Look at Kim Jong-il,” Mr. Kim developed an eye for how to wield power in the course of dealing with potential threats.

The second showdown was an internecine feud; his rival was his uncle. Educated in Moscow, it was both a strength and a weakness of Kim Yong-ju that he was a blind follower of Marxism. Then Hwang Jang-yop came up with the juche ideology of self-reliance, which Kim Jong-il cleverly used as a weapon to attack his uncle.

Kim Il Sung said that he had chosen his son as his heir because his brother was not tough enough; Kim Jong-il’s strength was his strong character.

Now that 30 years have passed, Kim Jong-il is the same age as his father was when Kim Il Sung made him the heir to the Hermit Kingdom. His eldest son, Jong-nam, has turned 33; his other two sons are Jong-chol and Jong-un. Who will be named the new heir?

Kim Jong-il and those competing to become heir must remember that a regime often does not fall because of a shock from outside, but because of a paradox within. Since 1975, a year after Kim Jong-il was given de facto power, the North’s economy has been shrinking. No matter how talented they are in intelligence and propaganda, leaders who don’t put bread on the table are kicked out.

The writer is deputy politic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Chun Young-gi

후계 구도

지난 16일 예순두번째 생일을 맞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후계 확정 30년'의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1974년 2월 김정일의 나이는 서른둘, 김일성은 예순두살이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김정일을 유일한 후계자로 공식 선정했다. 그때까지 김정일의 권력게임은 피눈물나는 것이었다.

최초의 싸움은 金씨 일가의 권력에 도전했던 군부 지도자들과 벌어졌다. 68년 124군 부대의 청와대 기습사건을 주도한 김창봉.허봉학 세력이었다. 이들은 당시 김일성-김영주(김일성의 동생) 후계구도를 바꾸려 했다. 김정일은 치밀한 정보수집전을 통해 두 사람의 비행과 비리를 폭로했다. 그들은 숙청됐고 金씨 일가의 권력은 공고해졌다. 김정일의 권력에 대한 안목은 이때 부쩍 자랐다고 한다. (정창현, '곁에서 본 김정일')

두번째 승부는 골육상쟁이었다. 삼촌 김영주를 제거해야 했다. 모스크바 유학파인 김영주의 강점이자 약점은 마르크시즘을 무조건 신봉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마르크시즘을 극복해 냈다는 황장엽의 주체사상을 삼촌을 공격하는 호재로 활용했다. 김정일은 김영주에게 황장엽을 보냈다.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김영주는 저항 끝에 주체사상은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집안에서 아마도 김정일을 후계로 세우기로 한 것 같다"고 두려움을 표시했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선택한 이유의 일단을 "영주는 독하지 못한 것이 결점이고, 정일이는 제 삼촌보다 독한 것이 장점이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30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이제 김정일은 자기에게 권력을 물려줬을 때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됐다. 장남 정남이는 벌써 서른세살이다. 정남이 밑으로 정철과 정운이도 있다. 김정일이 후계자를 아들들 가운데 선택해 3세대 권력세습을 추구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매제인 장성택 혹은 제3의 인물설도 나온다.

그러나 김정일이든 그의 후계 경쟁자들이든 잊어선 안될 게 있다. 체제의 몰락은 외부의 충격에서가 아니라 내부의 모순에서 온다는 점이다. 김정일 시대의 경제상황은 자기 아버지 때보다 훨씬 못해졌다. 정보전과 사상투쟁, 권력의지가 아무리 천재적이라 해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권력자들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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