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Constitutional court’s rising prominence

Mar 16,2004


There are generally three kinds of trials that we frequently hear about. Civil actions occur between individuals over property or position. Criminal cases determine whether an individual or an organization has committed illegal acts. And administrative litigations evaluate the legitimacy of publicly decided issues. But there is a fourth kind that exerts far greater influence on society in general. It is the constitutional lawsuit, which judges a conflict over the constitution, which contains the fundamental orders of a state.

Depending on the government, either of two courts is in charge of constitutional suits. I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the Supreme Court, the highest court of the judiciary system, handles constitutional lawsuits. But France and Germany have established a separate agency to take on the role. Korea follows the latter system.

The constitutional court first appeared in Germany in the early 1950s. At the time, the power of the working class was equal to that of the bourgeoisie, and even a few votes could sway an election. Thus an organization that could mediate the friction between political forces was necessary, and the constitutional court was established.

In postwar Germany, economic revival was the prime task. The constitutional court set the framework of modern capitalism by granting a comprehensive right to private property. Leftists criticized the court for being an apparatus that safeguarded the ruling power and prevented a change of the system. But the contribution of the constitutional court to the social stabilization and economic development of Germany is undeniable.

In Korea, the constitution of the Second Republic in 1960 first laid the legal ground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constitutional court. But the military coup in 1961, which led to the long-term regime of Park Chung Hee, nullified those efforts. The constitutional court was finally founded in 1987 under the latest constitutional revision.

Since then, the constitutional court has produced many rulings with a great social impact. But it has not yet actively intervened in the confrontations between political powers. Now that conservatives and liberals and the young and the old are opposing each other over political interests, the role of the constitutional court, and its rulings, assumes a greater significance and responsibility.

The writer is a deputy city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Lee Kyu-youn

제4 재판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재판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개인 간 재산이나 신분에 관한 다툼을 다루는 민사, 어느 사람이나 단체가 사회에 나쁜 짓을 했는지를 가리는 형사, 공공기관이 결정한 사안의 잘잘못을 따지는 행정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사회 전반에 휠씬 큰 영향을 주는 제4의 재판이 있다. 바로 한 국가의 기본 질서를 담은 헌법을 둘러싼 다툼을 판단하는 '헌법 재판'이다.

헌법재판을 맡는 기구는 나라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뉜다. 미국이나 일본은 일반 법원의 최고기관인 대법원이 담당한다. 반면 독일.프랑스 등은 헌법재판소 같은 별도 기관이 처리한다. 우리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헌법재판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대 초 독일에서 등장했다. 당시 독일에선 노동자와 부르주아 세력이 대등하게 맞서고 박빙의 득표 수로 권력의 향배가 정해질 정도로 정치권의 혼전 양상이 벌어지는 상태였다. 당연히 정치세력 간 갈등을 조정할 기구가 필요했다. 이에 입법.사법.행정부라는 고전적인 삼권 분립에서 벗어나 강력한 권한을 가진 연방헌법재판소를 설립, 어느 한 세력이 국가의 대사를 결정했을 때 빚어질 정치적 위험과 혼란을 분산하게 했다.

패전 독일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부흥이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이에 맞춰 사적 소유권을 넓게 인정하면서도 사회정의의 실현을 국가 목표로 설정하는 등 현대적 자본주의의 틀을 세워나간다. 좌파 진영에선 "지배 세력의 논리를 옹호하고 체제 변화를 막는 장치"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헌법재판소가 독일의 사회안정과 경제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선 제2공화국 헌법(60년)에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의 도입 근거가 마련됐지만 바로 5.16이 터지면서 설립 자체는 무산됐다. 이후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 따라 이듬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민법상 동성동본금지 규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97년) 등 사회.경제에 영향을 주는 판단을 적지 않게 내렸지만 정치세력의 첨예한 싸움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고 보기 힘들다. 보수와 진보, 젊은 층과 중년세대의 정치적 이해가 벌어지는 요즘이야말로 헌법재판소와 헌법재판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중요하게 됐다.


이규연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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