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History replete with traps that snare makers

Mar 22,2004


In ancient Greece, Athenians sometimes voted to expel a dangerous figure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The ostracism, coming from the word “ostracon,” a fragment of pottery on which Athenians wrote the name, was a preventative system to eliminate a possible tyrant or a schemer who wished to illegally seize power.

The citizens would gather once a year and cast ballots on the biggest threat to the community. In the secret ballot, the person who obtained the most number of votes over 6,000 would be exiled to a foreign country. That was essentially a direct impeachment by the citizens. The ostracized man could return to Athens only after 10 years.

It was the Athenian politician Cleisthenes who first came up with the system. He is considered to have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democracy in Athens with his drastic reform measures.

Ironically, Cleisthenes himself was the first to be ostracized from the community. Pisistratus, his political rival, exploited the system of ostracism to drive him away. Cleisthenes returned to Athens after Pisistratus was overthrown and carried out his famous reforms, but Cleisthenes had fallen into the trap he had devised.

Hugh Aubriot, the provost of the merchants of Paris under King Charles V, faced a similar fate. He begun a project of building the Bastille, but became the first prisoner of the famous prison. He was charged with heresy.

A Boston carpenter named Edward Palmer found himself in a similar situation in the 17th century. In the Puritan society of Boston, he was ordered to make a pair of stocks where sinners were tied. In Nathaniel Hawthorne’s “Scarlet Letter,” Hester Prynne received the same punishment. Palmer became the first to be tied to the stocks on a charge of extortion ― overcharging for the price of the stocks.

Thomas Montague, Earl of Salisbury, was the first Englishman to be killed by a cannon shot. He had introduced cannons to the English army during the Hundred Years’ War in the late 14th century, and was killed by the same weapon he had used while seizing the city of Orleans in 1428.

There are numerous examples in history of people caught in their own traps. We might not be an exception. In the unprecedented impeachment crisis, we could become yet another historical example.

The writer is a deputy city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Nahm Yoon-ho

자승자박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선 시민들이 직접 위험인물을 찍어 일정 기간 국외로 내쫓곤 했다. 이를 '도편추방(陶片追放)'이라고 한다. 비합법적으로 정권을 잡거나 전횡을 휘두르는 지도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였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매년 한번씩 민회를 열고 위험인물의 이름을 적어냈다. 이 비밀투표에서 6000표 이상 얻은 사람 중 최다득표자 한명을 국외로 추방했다. 시민의 '직접 탄핵'이나 다름없었다. 추방된 사람은 국외를 떠돌다 10년이 지난 뒤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를 처음 고안해 낸 사람은 아테네의 정치가 클레이스테네스였다. 과감한 개혁을 통해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확립시켰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편추방 1호는 다름 아닌 클레이스테네스 본인이었다. 정적인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도편추방을 이용해 그를 국외로 내쫓은 것이다. 물론 그는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실각 후 아테네로 돌아와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단행했다. 어쨌든 클레이스테네스로서는 한때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신세가 됐던 셈이다.

프랑스의 전제군주 시절 파리 시장을 지냈던 유그 오블리오의 운명도 그랬다. 그는 바스티유 감옥을 건설한 사람이었으나 바스티유에 수감되는 죄수 1호가 되고 말았다. 죄목은 이단이었다.

17세기 미국 보스턴의 목공업자 파머도 마찬가지다. 청교도 사회였던 당시 보스턴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죄를 범한 사람을 묶어두는 형벌대를 뒀다고 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의 주인공 헤스터 플린도 여기에 섰다고 돼 있다. 파머는 보스턴의 형벌대를 수주해 제작했으나 완성하자마자 맨 처음 형벌대에 묶이게 된다. 형벌대 제작비를 부풀려 청구했다는 게 그의 죄목이었다.

대포에 맞아 전사한 최초의 영국인이라는 토머스 몬테큐트도 비슷하다. 그는 14~15세기 프랑스와의 백년전쟁 때 대포를 본격 도입한 인물이다. 그러나 1428년 오를레앙에서 프랑스군을 공격하려다 그만 대포 유탄에 맞아 숨졌다.

역사에는 제 줄로 제 몸을 옭아 묶는 사례가 적잖다. 우리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사상 초유의 탄핵 정국에선 벌써 자승자박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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