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Grand tours and thoughts of revolution

Apr 23,2004


Yukichi Fukuzawa, the face on the 10,000 yen bill in Japan, is considered “the teacher of the Japanese citizens.” A spiritual pillar of Japanese modernization, Mr. Fukuzawa asked what had become of the descendants of George Washington when he first visited the United States in 1860. When someone said, “If he had a daughter, she must have become someone’s wife.” Mr. Fukuzawa was shocked by the disinterested answer. “It is a mystery,” he said. “I thought the Washingtons were on the level of the Tokugawas.” In the 19th century, Japan was ruled by the shogunate of Tokugawa.

Mr. Fukuzawa returned from the United States with a trunkload of English books. He studied them himself and taught students. As the number of his students increased, he founded Keio University, the first college in Japanese history. Mr. Fukuzawa traveled in Europe for a year in 1861 as an interpreter. His accounts of Europe were published as “Conditions in the West” and “An Outline of a Theory of Civilization,” the texts that became the mental cornerstone of the modernization of Japan. Following the lead of Mr. Fukuzawa, many future stars of the Meiji Restoration left for Europe and learned from Prussia, a rising power in Europe at the time. Modern Japan was based on Germany’s experience.

China caught up with the Japanese boom to study abroad in the late 19th century. Until the revolution of 1911 by Sun Yat Sen, the most popular destination for Chinese students was Japan. As World War I broke out, the students began to head for France. France needed a cheap workforce because of the war, and Chinese intellectuals wanted to learn from France, “the birthplace of revolutions.”

Deng Xiaoping was the most notable Chinese to study in France. He left for Paris in 1920, worked as a laborer for four years and spent over a year as a member of an underground communist group. He spent his last year abroad studying in Moscow, “the Holy Land of the communist revolution.” His utilitarian philosophy was not unrelated to his experiences in his youth.

In Europe, a long journey to foreign lands to study cultures and civilizations is called a “Grand Tour.” Goethe traveled in Italy, Herman Hesse went to India, and Rainer Maria Rilke toured Russia. Let’s hope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s visit to China was a grand tour for reform and opening.

The writer is the London correspondent of the JoongAng Ilbo.


by Oh Byung-sang

그랑 투르

일본의 최고액권인 1만엔권 지폐의 얼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일본 국민의 교사'로 불린다. 일본 근대화의 정신적 기둥인 그가 1860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턴의 자손들은 어떻게 돼있나"고 물었다. "아마 딸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누군가의 아내가 돼있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후쿠자와는 당시 '냉담한 대답은 충격이었다. 불가사의다. 워싱턴은 일본의 도쿠가와(德川)집안과 같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지배하던 때다.

후쿠자와는 미국서 영어책을 잔뜩 사들고 와 독학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이 늘어나자 정식으로 '게이오(慶應)의숙(義塾)'이란 간판을 달았다. 일본 최초의 대학이다. 후쿠자와는 1861년 통역사로 1년간 유럽까지 순회했다. 그의 해외견문 보고서가 일본 근대화의 정신적 주춧돌이 된 '서양사정''문명론의 개략'이다. 후쿠자와의 선창에 따라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유럽으로 떠나 당시 유럽의 신예 강국인 프러시아를 배워 왔다. 일본의 국가틀은 독일형이다.

중국에서 해외유학의 열기가 본격화한 것은 일본보다 늦은 19세기 말이다. 1911년 쑨원(孫文)의 신해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으로 유학을 많이 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유학생이 프랑스로 옮겨 갔다. 전쟁으로 일손이 모자라는 프랑스가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중국의 지식인들은 '혁명의 본토인 프랑스로부터 직접 배우자'고 생각했다.

그 프랑스 유학대열의 선두에 선 인물이 덩샤오핑(鄧小平)이다. 鄧은 1920년 파리로 떠나 4년간 노동자로 일하고, 1년여 비밀 공산당 활동에 매진했다. 마지막 1년은 공산혁명의 성지(聖地)인 모스크바에서 유학했다. 그는 프랑스 커피와 치즈를 즐기며, 열렬한 축구광이자 브리지의 달인이다. 오늘의 중국을 만든 鄧의 실용주의 철학도 젊은 시절의 견문과 무관치 않다.

유럽에선 18세기 이래 귀족이나 지식인의 견문 넓히기 해외여행을 강조해 왔다. 오랜 기간에 걸쳐 멀리 여행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는 의미에서 '그랑 투르(Grand Tour.위대한 여행)'라고 한다. 괴테는 이탈리아, 헤세는 인도, 릴케는 러시아를 여행했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개혁.개방으로 가는 그랑 투르이길 빈다.


오병상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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