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Grim lessons in pollution’s consequences

June 06,2004


One day, seagulls began falling from the sky. Dead fish floated belly-up on the sea. A cat went berserk and fell dead. These strange events happened in 1953 in a fishing village in Japan’s Kumamoto prefecture called Minimata.

Three years later, villagers themselves began to show abnormal symptoms. Many experienced paralysis in their limbs, and were unable to walk properly. Their speech became slurred, their vision constricted. They began to die one by one.

The affliction that struck that village is now known as Minamata disease ― one of the first diagnosed cases of pollution-related illness. The fish the villagers ate had been contaminated by mercury discharged from a chemical factory.

Decades earlier, in 1910, what was called itai-itai disease had broken out in the Jinzu River basin in Toyama prefecture. In 1968, the cause was found to be cadmium poisoning. The disease’s name, which means “ouch, ouch,” came from the pain that accompanied the coughing and other symptoms. An upstream mining station that refined zinc had discharged wastewater containing cadmium. The poisoning impaired kidney function and caused osteomalacia, or brittleness of the bones. There is a report that victims lost 20 centimeters (eight inches) in height.

Similar pollution-related diseases have turned up in parts of Korea dense with factories. Especially in the 1960s and ’70s, the government indiscriminately attracted environmentally hazardous industries from Japan and other developed countries, and tens of thousands of residents in factory complexes suffered from poisoning. In 1985, hundreds of people in Onsan Industrial Complex showed symptoms of itai-itai disease. Environmentalists charged that Korea had traded its environment for economic growth.

Recently, residents of Goseong county, South Gyeongsang province, have been afflicted with itai-itai disease. Cadmium elements discharged from a copper mine that operated until the early ’90s seemed to be the cause.

“Sustainable development” was discussed in 1992 at the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in Rio de Janeiro. But the concept is still vague and equivocal. It is still a matter of debate how much environmental destruction should be allowed. History, though, has given us an obvious lesson: that mankind will pay the price for any development that ignores effects on the environment.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for the JoongAng Ilbo.


by Lee Se-jung

이타이 이타이

하늘을 날던 갈매기가 갑자기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다 위엔 물고기가 허연 배를 내놓고 둥둥 떠올랐다. 집에선 고양이가 미쳐 날뛰다가 죽어버렸다. 1953년 일본 구마모토현의 작은 어촌인 미나마타에서 일어난 일이다. 3년 뒤 이곳 사람들에게도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발이 마비돼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났다. 사람들이 말을 똑똑히 하지 못하고,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것처럼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에 시달리면서 하나 둘 죽어갔다. 가장 대표적인 공해병으로 꼽히는 '미나마타병'이다. 인근 화학공장에서 배출한 수은에 오염된 어패류를 섭취한 데서 비롯된 수은 중독이 미나마타병의 원인이었다.

또 다른 공해병인 이타이 이타이병은 이보다 수십년 앞선 1910년께 일본 도야마현 진즈강 유역에서 발생했지만, 중금속인 카드뮴이 이 병의 원인이란 사실은 68년에야 밝혀졌다. 기침만 해도 뼈에 금이 갈 정도로 아파서 '아프다 아프다'는 뜻의 '이타이 이타이'란 이름이 붙었다. 납과 아연을 제련하는 근처 금속광업소에서 카드뮴이 다량 포함된 폐수가 흘러나와 주변 논과 밭을 오염시켜 생긴 병이었다. 카드뮴이 신장의 재흡수 기능을 떨어뜨려 체내의 칼슘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바람에 카드뮴 중독증 환자는 부닥치기만 해도 뼈가 으스러지곤 한다. 당시 일본에선 키가 20㎝나 줄어든 환자도 있었다고 한다.

국내 공단에서도 공해병이 적지 않게 발견됐다. 특히 60~70년대 일본 등 선진국의 공해산업을 무분별하게 국내에 유치하면서 공단지역의 수만명이 공해병에 시달렸다. 85년 온산공단에서는 수백명이 집단으로 이타이 이타이병 증세를 나타냈다. 환경론자들은 "한국의 경제성장은 공해와 맞바꾼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최근 경남 고성군 주민들이 이타이 이타이병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90년대 초까지 운영된 근처 구리광산에서 배출된 카드뮴 탓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환경을 보전하면서 개발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92년 리우 환경회의에서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속 가능한 개발의 개념이 모호하고 다의적인 상황이다. 환경 파괴 정도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다만 환경을 무시한 개발이 인류에 반드시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경험이다.


이세정 논설위원



dictionary dictionary | 프린트 메일로보내기 내블로그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