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The legend of a martial arts master

June 28,2004


“Justice without power is incompetence and power without justice is violence.” Sankei Shimbun, a conservative Japanese newspaper, ran a column in May 1999 which quoted the words of legendary karate master Masutatsu Oyama. The writer used the quotation to emphasize the argument that the government should be stricter with the North Korean spy boats violating Japanese territorial waters.

The Japanese karate hero was Choi Yeong-il born in Korea in 1923. To Koreans, he is better known as Choi Bae-dal. It is ironic that he was quoted by a conservative newspaper, but Sankei’s column shows how he is widely accepted by Japanese society.

Today, Korean actor Bae Yong-jun is beloved in Japan and goes by a nickname, “Yon-sama.” But in Mr. Choi’s time, Koreans were objects of contempt. In this hostile atmosphere, he did his best to maintain his dignity as a Korean while becoming a respectable citizen in Japanese society. The keys to his success were humbleness and talent.

Behaving humbly yet continuously pursuing a higher goal, he named his karate “Kyokushin,” meaning the ultimate truth. He said there is no such thing as perfecting a martial art, and therefore a martial arts student must pursue the ultimate truth and continue training.

Mr. Choi is also famous for his legendary winning streak against masters of various martial arts. He virtually created the sport of full-contact martial arts, which is hugely popular today. The comic series “Fighter of the Wind” is a dramatized biography of Mr. Choi.

Since the martial art master was only human, he had flaws. During his youth, he became estranged with Yeokdosan, a Korean professional wrestler. The hot-tempered master rushed into the Latin Quarter, a favorite bar of Yeokdosan, and demanded a showdown. In his autobiography, Mr. Choi later recalled that he was sure he could defeat Yeokdosan in three minutes. Because Yeokdosan refused to fight, the historical showdown never took place.

Even after Mr. Choi’s death in 1994, Kyokushin karate has established itself as the most effective karate used in actual fights. To mark the 10th anniversary of his death, his biography is to be published in Japan and a movie based on his life is waiting to be released in Korea. The hero is gone, but his legend lives on.

The writer is a deputy city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Nahm Yoon-ho

바람의 파이터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요,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1999년 5월 일본의 보수지 산케이(産經)신문의 한 칼럼에 인용된 말이다. 일본 영해를 침범하는 북한 공작선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논지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다.

이는 일본 가라테(空手)의 영웅 오야마 마스타쓰(大山倍達.1923~94)의 어록에서 따온 것이다. 본명은 최영의(崔永宜). 우리에겐 최배달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일본의 보수지에 인용된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일본 사회에서 얼마나 폭넓게 수용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지금은 일본에 '욘사마(배용준의 일본어 애칭)' 붐이 한창이지만 최영의가 활약하던 시절 한국인은 멸시의 대상이었다. 51년 도쿄(東京)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선 가장 싫어하는 민족으로 '조선인'이 44%로 1위에 올랐을 정도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는 한국인의 긍지를 지키면서 동시에 일본 사회의 존경받는 시민이 되려 했다. 방법은 두 가지, 겸손과 실력이었다.

그는 늘 '범인(凡人)'이라고 자칭했다. 몸을 낮추면서 높은 곳을 지향했다. 자신의 가라테에 '교쿠신(極眞)'이라는 말을 붙인 것도 그런 맥락이다. 무도에 완성이란 없으므로 늘 그 진수를 추구하며 수행을 계속한다는 뜻이다.

그는 또 다양한 무술의 고수들과 겨뤄 불패 신화를 이뤄냈다. 요즘 큰 흥행거리가 된 이종격투기도 그가 원조격인 셈이다. 만화 '바람의 파이터'는 이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다.

그에겐 인간적인 허점도 있었다. 혈기 왕성하던 시절 한국인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과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다. 그는 역도산의 단골 술집 '라틴쿼터'에 들이닥쳐 역도산에게 "한판 붙자"고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3분 내에 때려눕힐 자신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역도산이 피해 '역사적'인 맞대결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사후에도 교쿠신 가라테는 최강의 실전 가라테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200만명 이상이 입문했다. 올해는 그가 타계한 지 10주년이다. 일본에선 그의 일대기가 또다시 출간될 예정이고 국내에선 그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 영웅은 갔지만 전설은 계속되고 있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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