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Saddam’s trial is next Nuremberg

July 02,2004


As the Soviet Union began bombing Berlin at daybreak on April 29, 1945, Adolf Hitler wedded his 33-year-old mistress, Eva Braun, at the chancellor’s residence. Right after the ceremony, the 56-year-old Nazi leader wrote that he chose death to avoid the humiliation of surrender. At 3:30 a.m. the next day, the couple committed suicide together.

Upon victory, the Allies faced a new problem. The United States’ justification for participating in World War II was to stop the Nazis. Believing that immediately punishing the war criminals might impede true justice, Washington proposed a trial so that the records of the Nazi cruelty could be kept for future generations.

In November, 1945, the first international court for war criminals opened in Nuremberg. The trial had two problems. First, the mastermind behind the atrocities of World War II had committed suicide. Second, the existing law failed to address specific Nazi wrongdoings as crimes, and Hitler’s cronies blamed the late chancellor for their deeds. If the court were to follow the “no penalty without law” principle, many Nazi cruelties would not be classified as crimes.

But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opened a new frontier and ruled that individuals are ultimately responsible for criminal acts even if they were following orders. The court also proclaimed that there was no statute of limitations on crimes against humanity such as the Holocaust.

Based on the Nuremberg precedent, Israel tracked down Nazi war criminals over several decades and put them on trial. Former Yugoslav President Slobodan Milosevic was accused of crimes against humanity in a special court. The Rome Statute provided legal grounds in 1988 to establish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Saddam Hussein, who stood before an Iraqi court Thursday, is an international war criminal. His crimes against humanity, from his use of chemical weapons to his persecution of the Kurds and Shiite Muslims, violated the international law. But now that Iraq’s sovereignty was transferred to the Iraqis, they will prosecute the ex-dictator.

Saddam’s fate seems to be set. But the question is whether Saddam’s trial justifies the war and whether it will guarantee democracy in Iraq. In the post 9/11 world, Saddam’s trial will be the 21st century version of Nuremberg.

The writer is London correspondent of the JoongAng Ilbo.


by Oh Byung-sang

후세인 재판

소련군이 베를린을 맹공하던 1945년 4월 29일 새벽 아돌프 히틀러(56)는 총애하던 에바 브라운(33)과 총통 관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혼례 직후 유언장을 만들었다. "항복이라는 수치의 길을 피하기 위해 죽음의 길을 택한다"고 썼다. 다음날 오전 3시30분 두 사람은 동반 자살했다.

승리를 거둔 연합군 측의 고민이 시작됐다. 반(反)인륜적 악행을 응징한다며 참전했던 미국은 '전범들에 대한 즉각적인 처리는 정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원칙론에 따라 '나치의 잔혹성에 대한 기록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재판을 시작했다. 최초의 국제전범재판인 뉘른베르크 법정이 그해 11월 문을 열었다.

문제는 주범 히틀러가 이미 목숨을 끊었다는 점, 그리고 나치의 구체적 악행을 죄로 명시한 현행법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히틀러의 졸개들은 죽은 총통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를 경우 법망을 벗어나는 악행이 많았고 새로 법을 만들자니 소급적용이 문제였다. 뉘른베르크 법정은 전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명령에 따랐더라도 악행의 궁극적 책임은 개인에게 있음을 확인했다. 유대인 학살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국경이라는 공간적 제한과 공소시효라는 시간적 제한이 없음을 천명했다.

'20세기의 재판' 뉘른베르크의 결정은 속속 유엔에 의해 국제법으로 문서화됐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수십년에 걸쳐 나치 전범을 추적해 법정에 세울 수 있었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특별법정에 서야 했다. 국제전범재판을 상설화하기 위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도 98년 로마협약으로 가시화됐다.

1일 재판정에 서게 된 사담 후세인은 국제 전범이다. 화학무기를 이용한 전쟁 범죄, 쿠르드족.시아파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 등이 모두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 주권이양으로 재판관할권을 이라크 임시정부가 행사한다. 후세인이 국제전범이 아니라 이라크 국내법에 따른 형사범이 됐다. 임시정부는 후세인을 넘겨받으면서 미군이 금지했던 사형제를 부활시켰다. 갈 길은 어지간히 정해진 듯하다. 그 과정이 전쟁의 정당성을 보완해주고 이라크의 민주화를 담보해줄지 주목된다. 9.11 이후 달라진 21세기형 전범 재판이다.


오병상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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