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Can Korea claim to own Manchuria?

Aug 10,2004


Scene 1: In the year 778, a hundred years after the fall of Goguryeo, the kingdom of Chichung emerged in Shandong province, China. The founder of the kingdom was a man from Goguryeo named Lee Jeong-gi. He had over 100,000 troops and ruled the Shandong, Anhui, and Jiangsu regions at its peak. Forty-one years later, the kingdom fell.

Scene 2: In Jian, Jillin province, China, stands a 6.39- meter (21-foot) monolith. The 37,000-ton stone is a tombstone of Gwanggaeto the Great. Also known as Yeongrak, the king of Goguryeo wrote a glorious history of conquests. In 395, the fifth year of his reign, the great king of Goguryeo led his army across the Liao River and defeated the Kitans in the northwest. In the following year, he subjugated the capital of the kingdom of Baekje, and in 400, he captured the valley of the Nakdong River. In 404, Goguryeo was invaded by the army of the Late Yan, but his retaliatory attack two years later regained the lost territory and wrested away land of the Late Yan. In 407, he mobilized 50,000 troops to conquer six cities of Baekje. In the 20th year of his reign, he subjugated East Buyeo, which was located in the valley of the Mudan River.

Scene 3: King Jangsu, who succeeded to the throne of Goguryeo after the death of Gwanggaeto the Great, moved the capital from Guknaeseong in Manchuria to Pyeongyang in 427. The kingdom maintained amicable relations with the Late Yan, and when its neighbor perished, Goguryeo accepted the exile of the former king of the fallen kingdom. Goguryeo subjugated Baekje and fought with Silla in the Korean Peninsula. If the king had moved the capital to the Liaodong province in the northwest, Goguryeo could have expanded its territory no less than King Gwanggaeto did.

Which of the three scenes encompassing the Shandong, Manchuria, and Pyeongyang is the true history of Goguryeo? Koreans do not intend to claim Manchuria because it once had been under Goguryeo’s rule. Are we being too modest?

China claims that everything that happened in its current domain belongs to its own history, and now says that Goguryeo was a vassal state on its frontier, not in Korea. Is China still the innocent, good neighbor? It is time for we Koreans to reconsider our one-sided love for China.

The writer is a political news deputy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Ahn Sung-kyoo

고구려

#장면 1 : 고구려 멸망(668년) 110년 뒤인 778년 중국 산둥(山東)성에 치청(淄靑) 왕국이 등장한다. '구당서'에 따르면 왕국 설립자는 고구려인 이정기(李正己)다. 왕국은 10만 대군을 거느렸고 세력은 산둥.안후이(安徽).장쑤(江蘇)성 일대를 다스릴 만큼 컸다. '자치통감'은 '이웃이 두려워할 정도'라고 썼다. 왕국은 4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장면 2 :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현 타이왕(太王)향 주화(九華)리에는 거석(巨石)이 있다. 6.39m의 웅장한 높이에 무게 37t에 달하는 거대한 응회암 비석. 광개토대왕비다. 호가 영락(永樂)인 광개토대왕의 정복사는 화려하다. 즉위 5년(395년) 대왕은 군사를 이끌고 요하를 건너 서북방 거란족을 격파했다. 즉위 6년(396년)에는 백제 왕성을 함락하고 즉위 10년(400년)에는 보병과 기병 5만명을 보내 낙동강 유역을 공략했다. 영락 14년(404년) 후연의 침략을 받았지만 2년 뒤 보복, 잃어버린 땅을 찾고 후연의 땅도 빼앗았다. 재위 17년(407년)엔 다시 5만 대군을 동원해 백제 6개 성을 빼앗았다. 재위 20년엔 지금의 무단(牧丹)강 유역의 동부여를 정벌했다. 18세에 즉위해 39세 청년왕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대왕은 64개 성과 1400개의 촌락을 지배했다고 비문은 전한다.

#장면 3 : 광개토대왕 사후 즉위한 장수왕은 재위 15년(427년) 수도를 만주의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겼다. 그래도 기상은 여전했다. 후연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이 나라가 망하자 임금 소성제의 망명을 받아들이는 등 대륙과 함께 호흡했다. 반도에서는 백제를 공략하고 신라와 싸웠다. 왕이 수도를 서북방 요동성 쪽으로 옮겼다면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못지않게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산둥성.만주.평양을 오가는 세 장면 가운데 어디까지가 우리의 고구려사일까. 우리는 만주가 고구려 무대였으니 우리 땅이라고 우기지도 않는다. 한때 산둥성에 한반도 역사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국사임을 고집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다. 겸손할 것일까. 중국은 현재 자기 땅의 과거는 모두 중국사라고 고집한다. 막 선보인 동북공정(東北工程)만으로도 이 정도니 앞으로 본격 국면이 펼쳐지면 왜곡의 홍수가 터질 게 뻔하다. 그런데도 중국을 마냥 '좋은 이웃'으로 짝사랑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가 됐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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