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Do we have what it takes to prevail?

Aug 12,2004


“Break out in sweat! The machine’s noise is your song. A girl reading a French poem in the second-class train car. I detest your delicate hands.”

President Park Chung Hee’s poem, from a 1963 book, was written at a time when 52 percent of the national budget was made up of aid funds from the United States. To Mr. Park, who was determined to save the nation from starvation and poverty, the delicate hands turning the pages of a book of French poems seemed a luxury that we could not afford. As industries and jobs were created and income was generated, Koreans were relieved from the primitive pains of hunger.

The second crisis of the Korean economy broke out in the aftermath of the second world oil shock of 1979 and the consequent 4 percent contraction in 1980. The state-run growth engine that had pursued a compressed development of the market economy was overheated and broke down. It could be compared with the “growing pains” of adolescents.

President Choi Kyu-ha, who had to tour the oil producers to beg for crude oil, shed tears on his airplane bound for the Middle East.

With the help of Kim Jae-ik, a prominent economist and a rational champion of the market economy, President Chun Doo Hwan improved the economy. The determination to protect market stability, even if it meant sacrificing other values, helped the Korean economy develop into a robust young man.

The memories of the third crisis of the Korean economy are still vivid. The East Asian financial crisis of 1997 was a national trial for the middle-aged Korean market. President Kim Dae-jung appealed to the citizens for help, and we overcame the crisis.

President Kim was a leader of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but he promoted industrialists and made the best use of their experience and wisdom to cope with the national crisis.

Once again, we find ourselves in an economic crisis. We are suffering from an obscure condition of being averse to investment even when we have money. The cause is that the market is unreliable and insecure. The attack of the disease did not start from outside but came from within our economy.

The internal anxiety must be overcome with trust and belief. But where can we find that kind of trust today?

The writer is a deputy politic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Chun Young-gi

시장의 불안

땀을 흘려라!/돌아가는 기계 소리를 노래로 듣고/…/이등 객차에/불란서 시집을 읽는/소녀야/나는, 고운/네/손이 밉더라.

이 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1963년에 쓴'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에 들어 있다. 예산의 52%를 미국의 원조자금으로 메우던 시절이었다. 나라를 기아와 빈곤에서 탈출시키겠노라 목표를 세운 그에게, 불란서 시집을 넘기는 소녀의 고운 손은 사치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전체 국민의 1% 내외의 저 특권 지배층의 손을 보았는가.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라고 자기 시를 해설했다. 박 대통령은 껍데기뿐인 한국 경제에 자본축적이란 내장을 채워 넣었다. 산업과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발생하면서 원초적인 배고픔의 고통은 해소됐다.

경제의 두번째 위기는 79년 2차 오일 쇼크와 80년 마이너스 4% 성장률 시기에 표출됐다. 시대를 압축해 시장경제를 밀어붙인 관 주도 엔진이 과열돼 타버린 것이다. 청소년의 성장통 같은 것이었다. 최규하 대통령은 원유를 구걸하러 중동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전두환 대통령은 김재익이라는 걸출한 합리적 시장주의자의 도움을 받아 시장의 충실도를 높였다. 집권 3년 만에 20%를 오르내리던 물가상승률을 한 자리로 끌어내렸다. 이어 물가.성장.국제수지의 세마리 토끼도 잡았다. 그의 위기 탈출의 미덕은 일관성과 착실함에 있었다. 다른 가치들을 희생시키더라도 시장의 안정만은 지키겠다는 집요함이 한국 경제를 뼈가 단단한 청년으로 키웠다.

97년 기억에도 생생한 세번째 위기가 찾아 온다. 외환위기다. 장년이 됐지만 그에 걸맞은 세계적 시야를 갖추지 못한 우리 시장이 겪어야 했던 시련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국민이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국민적 약속과 단결을 이뤄냈다. 자기는 민주화 세력이었지만, 산업화 세력을 중용해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십분 활용한 게 위기를 헤쳐나간 비결이었다.

지금 우리는 또다시 경제 어려움에 빠졌다. 돈은 있는데 투자를 안 하는 이상한 병이다. 시장의 마음에 불안증이 생긴 탓이다. 나라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발병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내면의 불안은 믿음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런데 그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전영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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