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Military force should be the crux of reform

Aug 17,2004


In June 1982, Israeli forces invaded Lebanon. By August, Washington had deployed a Marine detachment to Beirut to oversee the evacuation of the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Upon completing the mission, the Marines stayed at the Beirut International Airport. The rules of engagement dictated that the Marines should carry unloaded rifles and could only load and fire if they were attacked. With their hands tied, the Marines in Beirut were continuously attacked by Lebanese guerrillas.

In order to investigate the reasons for the attacks, the U.S. Department of Defense launched a probe. The investigation committee paid attention to the complicated lines of command. For orders from the White House to reach the battalion commander in Beirut, five levels had to be cleared: orders were passed to the European commander, then to the navy commander in Europe, then to the 6th Fleet commander, to the Task Force 61 commander and then to the battalion commander. There was no senior officer responsible for security, and the chain of command had nothing to say about an offensive posture against guerrilla attacks.

On Oct. 23, 1983, an attack on the Marine barracks in Lebanon resulted in over 200 Marine and Navy deaths, and the transportation of the injured became a problem. According to Charles M. Perry’s “Defense Reform, Modernization, and Military Cooperation in Southeastern Europe,” the U.S. armed forces debated where to send the injured soldiers and ended up transporting them to West Germany instead of a much closer naval hospital in Naples, Italy. Only two decades earlier, U.S. forces were not the organized and powerful armed forces they are today.

After the confusion after the attack, the effectiveness of cooperation among the military services was debated, and there were productive discussions regarding how to maximize military clout. Today, the U.S. military is unchallenged in the world.

After Yoon Kwang-ung became the new minister of defense, reform has become a buzzword in the armed forces here. But the focus seems to be on civilian control of the military. As the example of the United States shows, making the military more “civilian” is not the point of military reform. The point is how to maximize military capacity.

The writer is a political news deputy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Ahn Sung-kyoo

군 문민화

1983년 10월 25일 미국은 그레나다섬을 침공했다. 지역담당 사령관은 해병대만 동원하려 했지만 합동참모회의는 해병엔 북쪽을, 육군엔 남쪽을 맡겼다. 합참엔 '영광을 나눠 갖자'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단일 지상군 지휘관도 없었다. 육군의 상륙작전 기획과정에 해군은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화력 지원을 맡은 해군과 상륙하는 육군과의 교신도 먹통이었다. '이게 합동작전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82년 6월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한 뒤 8월 미 해병 1개 분견대가 베이루트에 파견됐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레바논 철수 감독 때문이었다. 임무 종료 뒤 해병대는 베이루트 국제공항에 상주하게 됐다. 교전수칙은 '탄알 상시 장전 불가. 공격받을 때만 반격'이란 제한된 것이었다. 손이 묶인 해병대는 줄기찬 공격을 받았다. 집중 공격을 당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국방부가 나섰다. '지휘계통이 너무 길고 뒤얽혀 합동작전 여건이 준비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조그만 부대 지휘에 유럽통합사령관-유럽주둔 해군 구성군 사령관-6함대 사령관-61상륙임무부대 지휘관-해병 상륙부대 지휘관의 다섯 단계를 거쳤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미군의 과거 모습이다('합동성 강화 미 국방개혁의 역사').

이 사태를 계기로 미군 내 육.해.공군의 효율적 통합 운영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각 군의 할거주의 극복' 즉, 군사력 합동 운용에 관한 미군 내 논쟁사는 길다. 지난 세기만 해도 1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됐던 주제다. 각 군의 '따로 노는' 성향에 대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군인이라는 이유로 군 문제에 관한 장군의 견해가 가치 있을 것으로 생각지 말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다.

그렇다고 '군 문민화'가 통합력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린드 B 존슨 대통령은 민간인들과의 오찬에서 베트남전을 기획했다. 합참은 철저히 배제됐고 합참의장은 오찬 자리에 딱 한번 초대됐다. 그래서 각 군은 민간인에 선을 대는 데 바빴고 통합작전은 삐걱거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은 통합전력 강화를 향한 생산적 논쟁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군은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됐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 취임 뒤 군에선 개혁이 화두가 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초점이 군의 문민화로만 쏠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미국 사례에서 보듯 문민화가 다는 아니다. 핵심은 군 전력을 어떻게 극대화하는지에 있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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