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The substance and illusion of true love

Aug 18,2004


The 12th century French poet Bernart de Ventadorn sang, “Of grief do I die one hundred times a day, and of joy revive, again a hundred. My pain seems beautiful, this pain is worth more than any pleasure.”

Why do we care more about those we love than ourselves? It is impossible to understand the complicated feeling of love. Unlike the mating of a male and a female, love involves our mind and spirit. What we call love today is the romantic love born of romantic European literature from the Middle Ages to modern times.

The concept of love existed before the medieval period, but it did not refer to an emotion so intense that it disturbed one’s sense of existence, blurred one’s judgment and accompanied pain and trouble. The kind of love you risk your life for, as seen in “Romeo and Juliet” or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is a relatively new idea in the history of mankind.

Erich Fromm and other scholars claimed that romantic love was a product of Western capitalism, and thus an insubstantial illusion. Living in the materialistic world, people are pressured to advertise and sell themselves as products, and romantic love is nothing but an escape from daily life.

But the public does not care about dull, scientific analysis. Most recently, “Lovers in Paris,” a hit television series that ended Sunday with ratings hovering over 50 percent, showed that viewers are still fascinated by a cliche Cinderella story.

The modern world is living off unsatisfied desire. Industries constantly encourage customers to buy more new products, and films and television series produce yet another rich, handsome and kind Prince Charming. No matter how Japanese housewives crave the beloved “Yon-sama,” Bae Yong-jun cannot give them the romance of the “Winter Sonata.” No matter how much the fans of “Lovers in Paris” collect products featured in the series, they can never buy the love from the show. The disappointed public will anticipate yet another love story, but true satisfaction will be perpetually delayed.

It’s not that love is worthless, but the fashionable game of love can be harmful. Just as advertisements and commercial campaigns manipulate the tastes of consumers, delusional shows homogenize and degrade love. Love involves labor. Instead of being infatuated by the illusion on television, we should seek love in our own ways.

The writer is a deputy culture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Lee Young-ki

욕구불만

'나는 하루에도 수백번씩 슬픔으로 죽고/ 하루에도 수백번씩 기쁨으로 살아납니다/고통마저 아름다운 건/이 고통이 어떤 기쁨보다 값지기 때문입니다'. (12세기 프랑스 음유시인 베르나르 드 벤타돈)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아끼는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왜 생기는지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암컷과 수컷의 단순한 짝짓기와는 달리 사랑에는 정신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중세와 근대에 걸쳐 유럽에서 형성된 로맨스 문학에 젖줄을 대고 있는 '낭만적 사랑'이다. 그 전에도 사랑은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전 존재를 흔들고, 정신을 혼절하게 할 만큼 격렬하고, 갈등과 고통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었다. 젊은 베르테르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이 목숨과 맞바꿀 만하다는 '관념'이 생기고 퍼지게 된 건 인간 역사에서 극히 최근의 일이다.

에리히 프롬 같은 학자들은 낭만적 사랑이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그래서 실체가 없는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낭만적 사랑은 일상의 신경증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사랑의 본질인 양 착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멋대가리' 없는 분석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난 15일 종영한 '파리의 연인'에 몰린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백마 탄 왕자와 신데렐라의 결합이라는 닳고 닳은 스토리가 50%가 넘는 시청률을 보였다.

현대는 욕구 불만에 기대어 자라고 있다. 새 상품을 사라고 끝없이 부추기는 소비 시스템이 그렇고, 돈 많고 멋지고 성격도 좋은 주인공을 쉼없이 쏟아내는 영화와 드라마의 스타 시스템도 그렇다. 일본 주부들이 아무리 욘사마(배용준)의 볼을 만지고 손을 잡아보아도 거기엔 더 이상 '겨울연가'의 순애보가 없듯이 '파리의 연인'의 소품을 아무리 사모아본들 기주와 태영의 사랑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신기루에 실망한 대중은 또 다른 사랑의 드라마를 고대하고 만족은 계속 늦춰질 뿐이다.

사랑이 쓸모없다는 게 아니라 패션화되는 사랑놀이는 되레 유해할 수 있다는 거다. CF가 소비자의 취향을 한쪽으로 몰 듯 환각적인 드라마는 사랑을 균질화하고 등급을 매긴다. 사랑도 수공품이 낫다. 헛것에 홀리지 말고 둘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찾을 일이다.


이영기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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