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Fathers, sons have a bond unbreakable

Aug 19,2004


Upset by a disappointing test score, a father reproached his son, “If you fail the next test again, I will disown you.” A month later, the son had a test at school. The father asked, “How did it go this time?” The son said, “Do I know you?”

The twist on the joke, common among teenagers, is that the unbreakable relationship between a father and a son can be severed, at least rhetorically.

Not many sons understand the unconditional love of fathers, who are willing to risk everything for their children. Similarly, many fathers, who had all been teenage boys themselves, do not understand the world of youngsters. The misunderstanding produces confrontations and collisions. True reconciliation of a father and a son often takes place when the son becomes a father himself.

A generation ago, a father sent his son to a university in Seoul. Without knowing the financial sacrifice the father made, the son enjoyed a lavish lifestyle. Furious at his son’s spending, the father decided to not to send his allowance. The son sent an emergency telegram, “Father, your son will die of starvation.” In response, the father wrote, “All right, whatever you like.”

Enraged by the father’s letter, the son disowned the father and never contacted the family again. He worked as hard as he could and was determined to succeed. One day, decades later, the son was married and had children. He realized that the father’s last telegram was a turning point of his life. That year, he returned to his hometown for Chuseok, but his father had already passed away.

The father left a letter for his son. “I have waited for you all my life, but I might have to leave this world now. I have never forgotten you for a moment. Since you broke off from me, not one day went by without pain. In the last telegram, I wanted to encourage you to live your life in full. I have always loved you.”

Shin Ki-nam, the chairman of the ruling Uri Party, is under fire for his father’s collaboration with Japan during the occupation. He said, “I would have been far more proud if I were born a son of an independence fighter.” With his political career collapsing, Mr. Shin expressed his feelings frankly, but denouncing his own father is not right. No one can choose his father and change his destiny. In his fifties, Mr. Shin is a son who is now a father himself.

The writer is a deputy politic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Chun Young-gi

아버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다짐을 한다. "이놈아, 다음에도 꼴등 하면 부자지간을 정리하자꾸나." 그러곤 한달 후 아들은 시험을 쳤다. "요번엔 잘 봤냐?" "근데 아저씬 누구세요?"

청소년끼리 유행하는 이 우스갯소리의 유쾌함은 끊을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논리적으로 끊어지는 데에 있다.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는 아버지의 애틋한 심정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아들은 많지 않다. 반대로 자기도 똑같은 시절을 겪었을 텐데 도무지 아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도 많다. 그래서 적의가 생기고 충돌이 벌어진다. 둘의 진정한 화해는 아들이 아버지가 된 뒤에야 이뤄지곤 한다.

한 세대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흥청망청 돈을 써대던 서울의 대학생 아들에게 사람 만들어 보겠다며 시골 아버지가 꼬박꼬박 부치던 용돈을 끊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전보를 쳤다. "당신 아들, 굶어 죽음." 아버지의 답전은 이랬다. "그래, 굶어 죽어라."

분노한 아들은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다. 연락도 끊었다. 아들은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세월이 흘러 결혼하고 자식을 낳은 아들은 '굶어 죽으라'는 아버지의 전보가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됐음을 깨닫는다. 그해 추석, 고향집을 찾았더니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유서 한장이 있었다. "아들아, 너를 기다리다 먼저 간다. 너를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네가 소식을 끊은 뒤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가 보낸 전보는 네 인생의 분발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너를 사랑했다." (인터넷 news.joins.com/assembly 2004년 4월 23일자 글에서 인용)

끊을 수 없는 천륜이란 이런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부자관계는 아버지가 허랑방탕하거나 무책임하거나 부도덕했다 해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친일 경력 때문에 순식간에 벼랑 끝에 섰다. 그는 "독립투사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면 훨씬 자랑스러웠을 것"이란 말을 했다. 아버지 문제로 위기에 처한 그의 솔직한 심정이 배어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썩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은 주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택 상대가 아니다. 그들의 운명을 대체할 관계는 없다. 더구나 신 의장은 아버지가 된 아들, 50대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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