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On economy, Roh lacks luxury of time

Jan 31,2005


The “paradigm shift of Copernicus” refers to drastic and innovative thinking that shuns conventional ways. The 16th century Polish astronomer stood by the heliocentric theory, arguing that the earth and planets revolve around the sun. His theory replaced the existing Ptolemaic theory, a belief that the earth was the center of universe. It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revolutionary findings in the history of the mankind.

However, unlike his theory, Copernicus himself was neither revolutionary nor radical. Rather, he was a conservative who was afraid that his theory could do him harm. At age 37, he had already concluded that the earth revolves around the sun. However, he was reluctant to publish it right away. Afraid of being accused of heresy, he only sent a draft of his research to some scholars. While he hesitated, talks about his revolutionary theory managed to spread among scholars.

Thirty years after his finding, he made up his mind to publish it. It was the young German mathematician Georg Joachim Rheticus who convinced Copernicus to publish the manuscript. At first, Copernicus wished to publish it anonymously. Only after observing the initial response, he agreed to include his name. That’s how “On the Revolutions of Heavenly Spheres” was introduced to the world. The complete edition was published after he died at age 70.

Charles Darwin, who challenged the biblical version of the creation, also was a prudent man. He already had an idea on the theory of evolution in his late 20s. However, he was as careful as Copernicus. He had entrusted his manuscript to his wife, asking her to publish it after he died. In 1958, two decades after his finding, “The Origin of Species” was published.

Both Copernicus and Darwin were revolutionary thinkers but they did not behave radically. They did not attempt to change the world overnight. They bided their time for decades before promoting their theories. Maybe their patience helped their revolutions succeed.

Recently, supporters of the president liken his emphasis on the economy and harmony to the “paradigm shift of Copernicus.” It might be an exaggeration, but his policy certainly has changed drastically. However, substantial changes somehow haven’t been visible. The president should realize he cannot afford to imitate Copernicus’s reluctance.

The writer is head of the family affairs team at the JoongAng Ilbo.


by Nahm Yoon-ho

코페르니쿠스

종래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획기적인 생각을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고 한다. 16세기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천동설을 무너뜨린 그의 지동설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지동설만큼 혁명적이거나 대담한 성품이 아니었다. 오히려 몸을 사리는 보수적인 스타일이었다. 37세 때 이미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움직인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당당히 발표하지 못했다. 논문 초고를 일부 학자들에게 보내는 데 그쳤다. 이단으로 몰릴까 두려워서였다고 한다. 그가 머뭇거리는 동안 지동설에 대한 소문은 조금씩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야 책을 펴낼 결심을 했다. 그것도 독일의 젊은 수학자 레티쿠스의 간곡한 설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익명으로 내겠다고 조건을 달았다가 세상의 반응을 살피고는 실명을 썼다. 이렇게 나온 책이 바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다. 완성본이 나온 것은 그가 향년 70세로 숨을 거둔 뒤였다.

성서의 창조론에 정면 도전한 찰스 다윈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그가 진화론에 확신을 갖게 된 때는 20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그도 코페르니쿠스만큼 조심스러웠다. 부인에게 "내가 죽은 뒤 출판해달라"고 논문을 맡기기도 했다. 그가 '종의 기원'을 출판한 것은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1858년이었다. 장녀와 여섯째 아들이 죽자 슬픔에 휩싸인 나머지 신의 존재를 회의하며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발표했다는 설도 있다.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은 모두 혁명적 발상을 했지만 행동이 혁명적이진 않았다.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현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수십년을 기다렸다. 그래서 진정한 혁명에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 주변에선 경제와 화합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말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부르기도 한다. 과장이 심하지만 종래의 노선에 비춰 방향전환이 획기적이라는 점에서 그런 듯하다. 하지만 실질적인 변화가 잘 안 보이는 것은 왜일까. 좌고우면하면서 뜸을 들이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까지 코페르니쿠스를 따라할 여유는 없을 텐데.

남윤호 패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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