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Skating on thin ice

July 09,2007


Fifteen kilometers south of Beijing stands a bridge named Lugouqiao, which foreigners call the Marco Polo Bridge. Its nickname comes from the book “The Travels of Marco Polo,” in which the explorer says that “It is hard to find a bridge like this one in the whole world.” The carved stone lions lined up on each of the bridge’s railings must have fascinated Marco Polo. Maybe it is because the emperor of the Qing Dynasty, Qianlong, praised the place and built a monument there as a place to watch the moonlight.
The bridge appears again in history books in an image that is the opposite of peaceful and elegant. At 10:40 p.m. on July 7, 1937, near the camp where Japanese soldiers were doing night training, gunshots were heard and a soldier disappeared.
He was found twenty minutes later, but the head of the Japanese Army concluded that it was the Chinese Army and began retaliatory shooting. This was the start of the Sino-Japanese War, which continued for over eight years throughout the Chinese territory. During the war, the Nanjing Massacre was committed by the Japanese Army.
No one is sure who shot first at Lugouqiao. Like the Manchurian Inciden, there are opinions that the Chinese Army fired, and some say it was the Japanese Army. However, what is sure is that the Japanese hard-liners turned this small collision into an all-out war.
The Chinese government opened a “Lugouqiao War Memorial” near the bridge in 1987. This shows how much meaning Lugouqiao bears, just by the fact that China chose this place from the numerous battlefields in the nation.
In 2001, Junichiro Koizumi, then Prime Minister of Japan, accepted the request of the Chinese government and visited the memorial during his visit to Beijing.
Last weekend, there was a ceremony held to remember the Sino-Japanese War, which occurred 70 years ago, with over 1,000 students and soldiers participating in the event. The two governments watched the event carefully, worrying it might spread to massive anti-Japanese demonstrations that could damage the two countries’ relationship.
This year is the 35th anniversary since the two countries forming official relation with each other.
Compared with the 70 years that they hated each other, they have only maintained friendship for half as long.
Although Premier Wen Jiabao visited Japan this April and called it “a trip to melt the ice,” the relationship of the two countries is still on thin ice.

*The writer is the Tokyo correspondent of the JoongAng Ilbo.

By Yeh Young-june [yyjune@joongang.co.kr]

노구교 사건


베이징에서 남서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있는 루거우차오(盧構橋)를 서양인들은 ‘마르코폴로 다리’로 부르기도 한다. 그가 1299년에 완성한 『동방견문록』에서 “세계 어디를 가도 이에 견줄 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고 묘사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다리 난간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새겨진 수백개의 돌사자 상이 마르코폴로를 매료시켰음직하다. 후세의 청나라 건륭제가 달구경의 명소로 상찬하고 비석을 세울 정도로 운치 있는 풍광에 반해 그렇게 썼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평화롭고 운치있는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이 다리는 다시 역사책에 등장한다. 1937년 7월 7일 밤 10시40분. 근처에서 일본군이 야간 훈련을 하던 중 몇 발의 총소리가 나더니 병사 한 명이 행방불명됐다. 병사는 20분 뒤 다시 나타났지만 일본군 지휘관은 중국군의 사격으로 단정짓고 보복 공격에 나섰다. 이것이 중국 대륙 전역을 무대로 8년간 계속되는 중일 전쟁의 발단이다. 그 과정에 인류사의 오점이라 할 난징(南京) 학살이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기도 했다.

루거우차오에 울린 최초의 총성에 대해서는 진상이 분명치 않다. 중국군의 우발적 사격이라는 견해도 있고, 만주사변(1931년)과 마찬가지로 일본군의 자작극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군에 대해 철퇴를 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일본군 수뇌부의 강경론이 소규모 충돌을 전면전으로 몰고 간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87년 이 다리 인근에 ‘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세웠다. 중국 대륙 곳곳의 숱한 전적지들을 놔두고 이 곳에 기념관을 세웠다는 사실이 루거우차오가 갖는 상징성을 말해 준다. 2001년 베이징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 기념관을 방문했다.

지난 주말 루거우차오의 항일기념관에서는 학생,군인 등 약 1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중일 전쟁 발발 70주년을 되새기는 행사가 열렸다. 자칫 대규모 반일 시위로 이어져 중ㆍ일 관계의 악재가 되지 않을까 두 나라 정부는 조바심속에 행사를 지켜 본 듯 하다. 올해는 두 나라가 국교를 맺은지 3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70년간 가슴속에 새겨온 증오의 역사에 비하면 화해의 연륜은 아직 그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자신의 4월 일본 방문에 대해 '얼음을 녹이는(融氷) 여행'이라고 표현했지만 여전히 두 나라 관계는 아슬아슬하기 이를 데 없는 살얼음판이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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