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국새 1949년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간 장제스(蔣介石)에게는 좌우명이 하나 있었다. 마음 속에 늘 새겨둔 일종의 다짐이었다. '거 나라에 있던 시절을 잊지 말자(勿忘在莒)'는 성어로, 장제스 통치 시절의 대만 사람들에게는" /> 고종의 국새 1949년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간 장제스(蔣介石)에게는 좌우명이 하나 있었다. 마음 속에 늘 새겨둔 일종의 다짐이었다. '거 나라에 있던 시절을 잊지 말자(勿忘在莒)'는 성어로, 장제스 통치 시절의 대만 사람들에게는">

중앙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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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고종의 국새  PLAY AUDIO

Mar 19,2009

Chiang Kai-shek adopted a motto after he fled mainland China for Taiwan after being defeated by the Communist Party in 1949. It was an old saying: “Do not forget the Ju State.” Taiwanese who lived under Chiang’s rule are familiar with this saying.

In 1952 when he visited the Kinmen Islands which are very close to the Chinese mainland, the leader of the Nationalist government delivered this saying to troops at the military base there and it started to become well known.

The saying originated from an anecdote from the ancient Spring and Autumn period in China. Duke Huan of Qi, one of five rulers, was drinking with his ministers, including Guan Zhongzi and Bao Shuya, both well known for their loyal friendship. After a few rounds, Huan asked Bao to make a toast.

Holding his glass, Bao rose and said, “The lord shall not forget the agony that he has gone through as the prince of the Ju State and Guan shall not forget the hardship that he experienced in the Lu State.” Upon hearing this, Huan, who was then pleasantly drunk, quickly became sober, went down on his knees and bowed to Bao in appreciation.

The overlord must have been deeply moved as to bow to one of his ministers. Huan replied, “You ministers and I must not forget what the great teacher Bao said to protect our state from danger.” One wonders what kind of hardship Huan went through in the Ju State.

Under the rule of Huan’s predecessor, Duke Xiang, there was a rebellion in the Qi State. Huan was a prince then and was in danger of losing his life. With the help of Bao, the prince escaped the state and hid in the neighboring state of Ju. Huan survived in a miserable farmhouse there. The next year he managed to return home thanks to Bao’s help again and ascended to the throne. No details are known about the hardship he went through in the Ju State, but one can guess that he had many menacing moments.

Chiang’s motto means that we should not forget the difficult times we’ve gone through. It also means that we should not forget where we came from and should always aim for better things.

As China’s history was full of war and natural disasters, it was important to prepare for possible danger. This is why they have many sayings about planning for emergencies while times are safe.

In Korea, the seal of state that Emperor Gojong of the Korean Empire had used has been unveiled. When the fate of the country was dim as candlelight in the wind, the emperor used the secret seal for state documents asking for support from other counties like Italy, as Japan was about to swallow our country.

Not only does the seal have value as a cultural asset but it also helps us imagine the long and dark crisis at the time on the Korean Peninsula. Present-day Korea is also in a state of crisis. It is time to once again lay our country’s foundation and prepare for potential dangers.


The writer is a deputy internation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Yoo Kwang-jong [kjyoo@joongang.co.kr]


고종의 국새



1949년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간 장제스(蔣介石)에게는 좌우명이 하나 있었다. 마음 속에 늘 새겨둔 일종의 다짐이었다. '거 나라에 있던 시절을 잊지 말자(勿忘在莒)'는 성어로, 장제스 통치 시절의 대만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말이다. 장제스가 52년 대륙에 바짝 붙어 있는 최전선 진먼다오(金門島)를 시찰하면서 이 성어를 군부대에 남김으로써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유래는 이렇다. 춘추(春秋) 시대 5대 패자(覇者)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의 환공(桓公)이 어느날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포숙(鮑叔) 등 신하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이 여러 잔 돈 뒤 환공은 느닷없이 포숙에게 건배사를 주문한다.

술잔을 받쳐들고 앞에 나선 포숙은 이런 말을 꺼낸다. "전하께서 왕자 시절 거 나라에서 겪었던 고생을 잊지 않게 하고, 관중에게는 노(魯)나라에서 당했던 고초를 잊지 않게 하며…." 술이 거나해졌던 환공은 이 말을 들은 뒤 자세를 고쳐 잡고 절을 올린다.

신하의 말을 듣고 절을 올릴 만큼 임금이 감동을 받았던가 보다. 환공은 "과인과 대신들이 선생의 말을 잊지 않아야 나라가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한다. 환공이 겪었던 고생이 궁금해진다.

선대 왕이었던 양공(襄公) 때 제 나라에는 내란이 일었다. 왕자였던 환공은 당시 죽을 고비를 맞는다. 포숙의 도움으로 간신히 제를 탈출한 환공은 이웃인 거 나라에 몸을 숨긴다. 가난한 농가에서 겨우 연명을 하던 환공은 이듬해 다시 포숙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귀국해 왕좌에 오른다. 그 고생의 내용이 자세히 알려진 게 없지만 위험한 고비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장제스가 재활용한 이 성어는 결국 어려움에 처했던 시절을 잊지 말자는 내용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근본을 잊지 말고 더 분발하자는 다짐도 담겨 있다. 전란과 재해가 늘 이어졌던 중국의 역사에서는 위험에 대비하는 게 큰 일이다. 따라서 안전할 때도 위험을 생각하자는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성어도 나왔다.

국가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가물거리던 시기인 대한제국의 고종이 사용했던 국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의 침탈을 앞두고 이탈리아 등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국서에 사용했던 비밀 도장이다.

문화재로서의 소중함도 크지만 당시 한반도의 깊고 깊었던 위기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유품이어서 인문적인 가치는 더 크다. 마침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위기에 준하는 상황에 빠져 있다. 나라의 근간을 다시 추스려 어느새 닥칠지 모르는 큰 위험에 함께 대비할 때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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