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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데일리

Noble flowers lost

[분수대]사지   PLAY AUDIO

Mar 26,2009


China’s greatest thinker, Confucius, had a legion of faithful followers, numbering more than 3,000 while he was alive.

One of them was Yang Zhen (A.D. 59-124), who has himself won accolades from many as a teacher of justice and social righteousness. He was born in Shanxi Province in the Eastern Han Dynasty to the noble Yang family famous for indifference to officialdom and social ascendancy.

In his hometown near Mount Hua, he embraced all kinds of followers as he paid no heed to heredity or standing in sharing words of wisdom and virtue. His disciples totaled over 2,000 in his hometown and another 1,000 in other areas.

He earned the nickname “Confucius of Guanxi Province” due to his numerous acolytes. He was regarded as the model teacher at the time for the depth of his knowledge and nobility in virtue.

He accepted government office at the age of 50. It wouldn’t have been easy to practice virtuous values while in office, but he kept a far distance from any kind of temptation that accompanied officialdom.

He kept his doors steadfastly closed to people coming with personal favors.

Once when he was passing through a village, the district’s magistrate Wang Mi, who had been one of his students, came to see his teacher after nightfall.

As they talked, Wang pushed some gold ingots toward Yang, saying they were a gift for the kindness his teacher had shown him. Yang was furious and refused to accept them. Wang persisted, saying no one would know as it was very dark and late.

To that Yang made his famous speech, “Heaven knows, Earth knows, I know and you know. How can you say no one knows?”

Wang was promptly kicked out.

The story became a classic and is still taught in today’s classrooms. Yang later became known by another nickname, “the teacher of four wisdoms.” His descendants strictly followed his teachings and did not shy away from offering honest criticism to their kings.

They are called the Four Wisdom clan and the Yang name still stands for integrity and incorruptibility.

Prosecutors are calling in a string of former and incumbent government officials in association with Park Yeon-cha, the CEO of Taekwang Industries who has been arrested for bribery.

The continual replaying of corruption no matter who is in leadership is demoralizing.

Can we no longer hope for any descendants of Yang in our government?

The magnolia buds have started to show their ivory beauty. Nobility is what the flower symbolizes.

It is disheartening to think that our government officials lack such a virtue. I stand under the magnolia tree saddened by the eventual fall of the flowers before they even blossom.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of the JoongAng Ilbo.


By Yoo Kwang-jong [kjyoo@joongang.co.kr]



사지


공자(孔子)는 생전에 제자 3000여 명을 키웠다. 그에 못지 않은 후학들을 양성해 대 교육가로 이름을 낸 사람이 양진(楊震· AD 59~124)이다. 동한(東漢) 때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벼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의 산시(陝西)성 화산(華山) 근처에서 열심히 제자를 키웠다. 특히 사람의 있고 없음, 잘나고 못남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가르친 덕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 곳에서 키운 제자만 2000여 명. 그는 나중에 근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 제자 1000여 명을 더 가르쳤다.

양성한 제자의 수가 공자에 비견할 수 있어 그는 '관서(關西)지방의 공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학식의 깊이와 품성의 고매함으로 그는 당대의 사표(師表)로 받아들여졌다.

나이 50줄에 들어서 그는 벼슬길에 나선다. 지방 실력자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서다. 학자로서 벼슬에 나선 그의 행로는 험난했을 법하다. 그러나 그는 벼슬자리에서 행해지는 모든 유혹에서 철저하게 벗어났다. 사적인 청탁 등을 철저히 배제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가 관직을 옮기기 위해 이동하면서 한 지역을 지날 때였다. 현지의 지방관으로 재직 중이었던 제자 왕밀(王密)이 밤에 숙소로 찾아 온다. 제자는 은(銀) 뭉치를 내놓으면서 "은혜에 보답코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양진은 "네가 나를 잘 알 터인데, 이 게 무슨 짓이냐"고 꾸짖는다.

왕밀이 "밤이라서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양진은 이에 그 유명한 대답을 내놓는다. "하늘이 알고, 신명(神明)이 알며, 내가 알고, 네가 아는데, 왜 아무도 모른다고 하느냐." 왕밀이 부끄러워 쫓기듯 방을 나간 것은 불문가지다.

과거 한문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말이다. 너와 나, 하늘과 땅이 모두 안다고 해서 '사지(四知)'다. 그래서 양진은 '사지 선생'이라는 별명을 더 얻는다. 황제에 대한 간언을 서슴지 않고, 자식들을 절제와 청렴으로 가르친 그의 이름은 지금껏 청백리의 상징으로 남았다.

박연차 리스트에 오른 전·현직 공직자가 한 둘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늘 반복되는 부패의 행렬이 가관이다. 좀 나아졌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양진의 고결함을 이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쇠 귀에 경 읽기일까.

마침 목련이 피는 계절이다. 그 꽃말은 숭고함. 공직자들에게 그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이제 사치일 듯. 올해도 쉬이 지고 말 목련이 벌써 아쉽다. 꽃망울이 막 나온 목련 나무 밑에서 그 시듦을 먼저 걱정하는 것은 그저 세태 탓이겠지.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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