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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데일리

Embracing the middle ground

[분수대] 중정  PLAY AUDIO

June 18,2009

It is not uncommon for people to hang their favorite motto on the wall to be reminded of it as often as possible.

“Motto” is zuoyouming in Chinese and literally means “a phrase that one puts on one’s nearest place.” The first motto in China, however, was not a written phrase as everybody might imagine, but was a container called yiqi.

Duke Huan of the Lu State always kept one container on the right-hand side of his chair and frequently looked at it. This container was special. When it was half-filled with water, it stood upright, but if water was poured to the brim, it tipped over.

The book “Xun Zi” carries the story in which Confucius found the container when he visited Huan’s shrine.

Besides water, the container contained a message - people should refrain from excess and avoid shortage. The device was a reminder about not going to extremes.

That is where the Chinese word zuoyouming originated.

The container that Confucius saw later disappeared. But rulers in coming dynasties tried to reproduce the special container. The last was reproduced by Emperor Kwong Suis of the Qing Dynasty in 1895 and the article is now kept in the Palace Museum in Beijing.

Jiang Jieshi, or Chiang Kai-shek, dominated mainland China in the early 1900s and his earlier name was Zhongzheng, or Chung-cheng, the Chinese characters meaning “middle” and “upright,” respectively. It seems to have originated from what Confucius said: “When filled to the middle, [the container] stands upright.”

He took the new name Kai-shek after he grew up. The name means “maintaining a balance like a flat boulder.” The name represents the attitude of trying to stay at the center in both actions and thoughts. It means not to go to extremes but to embrace both sides.

Confucius, the symbol of Chinese intellectuals, and rulers in China’s dynasties appreciated this value. Chiang Kai-shek even wanted to have this meaning in his name.

Nowadays in Korea, some so-called intellectuals and religious figures condemn the incumbent administration as a “dictatorship” at a time of trouble for the country. Their declarations are extreme.

Only a few would agree that the current political situation is so serious that this time should be referred to as a troubled one. Yet these people continue in their destabilizing acts because they have too parochial a view.

These intellectuals need to refrain from going to extremes when they give their opinions to the public. They need to be careful not to misjudge the situation and get carried away with political extremes.

Only then can they be called intellectuals in the truest sense.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of the JoongAng Ilbo.

By Yoo Kwang-jong [kjyoo@joongang.co.kr]


중정


방에 걸어 놓고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문구 등을 흔히 좌우명(座右銘)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좌우명의 원래 판본은 글귀가 아니라 그릇이다. 그 이름은 기기(攲器)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환공(桓公)은 자신의 의자 오른쪽에 이 그릇을 두고 늘 지켜봤다고 한다. 이 그릇에는 묘한 기능이 들어 있다. 물을 적당히 붓지 않으면 앞으로 기울어지고, 물을 중간 정도 채우면 똑바로 선다. 그러나 물을 가득 부으면 엎어져 모두 쏟아내는 그릇이다.

공자(孔子)가 환공의 사당을 방문했을 때 이 그릇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순자(荀子)』라는 책에 전해진다. 그릇의 효용은 과도함과 부족함을 모두 경계하자는 데 있다.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함으로 자신을 일깨우기 위한 장치다. 자리의 오른쪽에 두고 새긴다는 뜻의 ‘좌우명’이라는 말이 예서 유래했다.

공자가 목격했다는 이 그릇은 후에 모습을 감춘다. 그러나 후대 왕조의 통치자들은 여러 차례 이 진기한 그릇을 다시 만들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복제품은 1895년 청(淸)의 광서제(光緖帝)가 만든 것으로, 현재 베이징(北京)의 고궁박물원에 있다.

1900년대 초반 중국 대륙을 주름잡았던 장제스(蔣介石)의 이름은 중정(中正)이다. 기기를 살핀 공자가 “(물이) 가운데 채워져 바로 선다(中而正)”고 했던 말에서 따온 듯한 인상이다. 흔히 사용하는 그의 이름 제스(介石)는 자(字)로서, 역시 너른 바위처럼 굳건해 평형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역경(易經)』에 등장하는 용어다.

행위와 사고에 있어서 가운데를 지향하는 것은 통합적인 자세다. 극단에 머물지 않고 가운데로 나아가 양쪽을 모두 끌어안으려는 태도다. 지식인의 표상인 공자, 중국의 역대 왕조 통치자 모두 이 덕목을 매우 중시했다. 장제스는 이름과 자에 이 뜻을 담으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이 시대의 일부 지식인과 종교인 등이 현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며 연일 시국선언이라는 것을 내고 있다. 그 내용이 지나치다. ‘시국선언’으로 이름할 만큼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심각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상황을 보는 안목의 편벽(偏僻)함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선언에 담아 대중에게 공표하기 위해서는 극단을 삼가야 옳다. 부족한 상황인식, 넘쳐나는 정치의식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인’이라는 이름값을 할 수 있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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