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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데일리

Male domination

[분수대] 아는 여자   PLAY AUDIO

Sept 08,2009



The French Revolution did not give women political freedom.

Olympe de Gouges, the daughter of a butcher from southern France, finally rose up against gender inequality. “Oh, women, women! When will you cease to be blind?” she asked. In 1791, she wrote the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an and the Female Citizen,” in which she demanded that French women be given the same rights, including the right to vote, as French men.

The response from the government? Execution by guillotine.

The official charge labeled her “a traitor who neglected the virtues of women giving damage to unity of the nation.”

Her 1791 declaration includes an apt line that is remembered by many today: “Woman has the right to mount the scaffold; she must equally have the right to mount the rostrum.” However, it took another 150 years for the French government to grant voting rights to women.

The road to women’s participation in politics has indeed been rocky. Even in the United States, a country dedicated to equal rights and the dignity of its people, women had to fight to get the right to vote.

Many things started to change after women were given suffrage with the passage of the 19th Amendment of the U.S. Constitution in 1920.

The most representative of all changes in the U.S. was the adoption of the Sheppard-Towner Act a year later. The law authorized the granting of federal aid to states for maternity, child health and welfare programs. The men in Congress, who neglected such “trivial” matters before the passage of the law, started to pay attention to these issues, as they were conscious of the power women voters wielded. Thanks to law’s enactment, it is said that the lives of more than 20,000 American children are saved annually.

As “politics for people’s lives” has emerged as a new trend here, the influence of women in politics is growing gradually in Asia, too.

The Democratic Party of Japan, which won a landslide victory recently, has elected 40 female representatives who have made pledges related directly to the people’s lives, such as payment of child care allowances.

As a result of the election victory, the proportion of females in the Japanese Diet has exceeded the 10 percent mark.

The proportion of Korean women lawmakers in the National Assembly, which stands at 13.7 percent, is slightly higher than that of Japan. But it is still lower than the international average. In Sweden, South Africa and Cuba, for example, the balance between male and female lawmakers is almost 50-50.

In the cabinet and the presidential secretariat, the proportion of females is too meager. It is said that the personnel management style of President Lee Myung-bak involves choosing people that he is acquainted with.

Is the low female proportion perhaps due to the lack of women acquainted with President Lee? Maybe.

First Lady Kim Yoon-ok may be fine with the situation, but I wonder if female voters are as well.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of the JoongAng Ilbo.


By Shin Ye-ri [shiny@joongang.co.kr]


아는 여자


프랑스 혁명도 여성을 해방시키진 못했다. 식구들 끼니 걱정에 애가 탄 아줌마 군단이 “빵을 달라”며 베르사유로 진격해 혁혁한 공을 세웠어도 세상은 여전히 남자들 독무대였다. 참다 못한 푸줏간 집 딸 올랭프 드 구즈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 “여자들이여, 깨어나라. 언제까지 눈감고 있을 텐가.” 1791년 그녀는 여성에게 투표권 등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달라고 외치는 ‘여권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단두대의 칼날이었다. “여성 본연의 미덕을 망각하고 나라를 분열시킨 반역자”란 죄목이 붙었다. 구즈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꼿꼿한 유언을 남겼다.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다.” 프랑스가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건 그로부터 150년 후의 일이다.

여자들이 정치에 참여하기까진 이렇듯 험난한 역정을 거쳐야 했다. 인간의 평등과 존엄을 건국 이념으로 내세운 미국에서도 참정권은 백인 남성만의 몫이었다. 남북전쟁 이후 흑인 남성에게도 부여된 투표권이 여성들 손까지 오는 데는 반세기가 더 걸렸다. 1920년 수정헌법 19조에 따라 드디어 여자들이 표심을 발휘하게 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1년 뒤 여성·아동에 대한 열악한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는 ‘셰퍼드 타우너법’이 제정된 게 대표적이다. 여성 표를 의식한 의원들이 이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소한’ 이슈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이 법 덕분에 해마다 2만 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건지게 됐다고 한다.

‘생활정치’가 대세로 떠오르며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최근 총선에서 승리한 일본 민주당만 해도 육아수당 지급 등 생활밀착형 공약을 내거는 동시에 여성 의원을 40명이나 탄생시켰다. 그 결과 일본 중의원의 여성 비율이 사상 최초로 10%를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우리 국회의 여성 비율은 13.7%로 일본보다 약간 높다. 하지만 아직 국제사회 평균엔 못 미친다. 스웨덴·남아공·쿠바 등은 절반에 육박한다.

막 물갈이를 마친 청와대 참모와 각료들 중엔 여성 비율이 더욱 미미하다. ‘아는 사람’만 쓰는 게 우리 대통령 인사 스타일이라는데 혹시 ‘아는 여자’가 별로 없어서일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처럼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아도 탈이지만 너무 없는 것도 문제다. 영부인은 좋을지 몰라도 계속 이러다간 여성 유권자들 뿔날라.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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