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오늘] 일제하의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 … 서러운 ‘가갸날’ 기념식 1926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 회원들이 서울의 음식점 식도원에 모여 ‘훈민정음 반포 팔회갑(480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을" /> [그때 오늘] 일제하의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 … 서러운 ‘가갸날’ 기념식 1926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 회원들이 서울의 음식점 식도원에 모여 ‘훈민정음 반포 팔회갑(480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을">

중앙데일리

From disdained to revered script

[그때 오늘] 일제하의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   PLAY AUDIO

Nov 06,2009

On Nov. 4, 1926, the members of the Korean Language Society and Shinminsa, an academic society, held a memorial ceremony to celebrate the octo-sexagesimal (480th) anniversary of the declaration of the Hunminjeongeum, the original promulgation of Hangul. Participants declared it the first observance of “Gagya Day,” based on a mnemonic recitation beginning “ga-gya-geo-gyeo,” like another phonetic symbol, the Roman alphabet. However, the ceremony for Gagya Day ended that year, because the Korean Language Society decided to use “Hangul” instead of “gagya,” on the occasion of the publication of its organization magazine called Hangul, as the official word for the Korean alphabet.

Even though King Sejong tried to make Hangul the most effective means to describe the sound of the Korean language, the script could not be applied for all written materials. Chinese characters were still overwhelmingly used. The King himself humbly named his invention “jeongeum,” meaning right sound, rather than “jeongja,” meaning right characters.

Therefore, Hangul was given the following different names by those who preferred the Chinese characters: eonmun (vernacular script), bangeul (indecent script) and amkeul (script for slow females). As banmal, meaning indecent speech, was only allowed to be used by young children before they received a proper education, bangeul was for uneducated females and children mostly.

The word Joseongeul or gungmun (national script) appeared after Joseon acquired diplomatic independence from China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A research institute for the study of gungmun was established as a government agency in 1907. However, after the fall of the Joseon Dynasty, the Japanese hiragana obtained the status of the new national script and Hangul became demoted again to a lower rank for the exclusive use of the “indigenous people.”

Hangul, meaning “great script,” was coined by Ju Si-gyeong in 1913. The name can be also be read as “great Korean script.” The name reflects a bitter introspection into our disdainful treatment for the Hunminjeongeum in the past, also striving to help restore our people to our forbidden memory of the Great Korean Empire while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Since then, although Hangul was often used in several places, such as local workshops, it was not widely used by the general public through the mid-1920s. It was not until the general principle toward the exclusive use of Hangul in public documents was confirmed upon the inauguration of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that Hangul finally became the perfect national script for the Korean people.

It was a good thing to establish the bronze statue of King Sejong the Great and redesignate Hangul Day as an official holiday. However, we should reflect on ourselves whether Hangul is being dropped to a lower rank of bangeul, as the craze for English has swept over every corner of the nation.

The writer is a research professor of the Center for Hospital History and Culture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By Jeon Woo-yong



[그때 오늘] 일제하의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 … 서러운 ‘가갸날’ 기념식


1926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 회원들이 서울의 음식점 식도원에 모여 ‘훈민정음 반포 팔회갑(480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을 ‘가갸날’로 정했다. 같은 표음문자인 알파벳의 예를 따라 ‘가갸거겨’의 가갸를 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가갸날 행사는 이 해로 끝이었다. 이듬해 조선어연구회가 기관지 『한글』을 창간하면서 ‘한글’을 훈민정음의 새 이름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말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말처럼, 형식 논리로만 따지면 사실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은 훈민정음이다. 새 글자가 삼라만상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온전한 글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름도 정자가 아니라 정음이라 했다. 한자가 모든 문서 생활을 지배하던 시대에, 뜻은 표현하지 못하고 소리만 표현하는 글자를 온전한 문자로 취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한글은 오랫동안 언문(속된 글), 반글, 암클 등으로 불렸다. 어미를 생략하고 어간만 쓰는 ‘반말’이 복잡한 존비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 한시적으로 허용된 말이었듯, ‘반글’ 역시 어려운 한자를 배우지 못한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위한 글이었다. 중국에 대한 사대관계를 공식 단절한 뒤에야 한글은 비로소 조선문 또는 국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07년에는 학부 소속의 정부 기관으로 국문연구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한 뒤 일본의 ‘가나’가 새로 국문의 지위를 차지했고 한글은 다시 ‘원주민’을 위한 반글이 되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1913년 주시경이 처음 썼다. 큰 글, 온전한 글이라는 뜻이다. 대한의 글이라는 뜻도 된다. 이 이름에는 우리 스스로 훈민정음을 ‘반글’로 천대했던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정신이 서려 있으며, 일제 강점기 금기시됐던 대한제국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는 뜻도 새겨져 있다. 이후 지방의 강습회 등지에서 간간이 한글이라는 말이 사용됐지만, 이 이름은 1920년대 중반까지도 일반화하지 못했다. 제1회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이 ‘가갸날’이 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공문서에 한글 전용 원칙이 확정된 뒤에야 한글은 비로소 온전한 국문이 되었다.

세종대왕 동상을 더 세운 것도 좋은 일이고, 한글날을 공휴일로 재지정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 스스로 영어 광풍에 휩쓸려 한글을 다시 ‘어린 백성들’이나 배우는 반글의 자리로 몰아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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