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Who are ‘we’?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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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3,2018
YOON SEOL-YOUNG
The author is a Tokyo correspondent of the JoongAng Ilbo.

In late July, in the midst of the hottest summer on record, I visited Hiroshima, the city where an atomic bomb had been dropped. The site of the bombing has been made into Hiroshima Peace Memorial Park, where a cenotaph stands. The epitaph states, “Let all the souls here rest in peace for we shall not repeat the error.”

It is a pledge comforting the victims of the attack and a promise not to repeat the devastation of war. But as I read the phrases, someone pointed out, “The subject is not clear.” It is uncertain who would not repeat the error. The error can be interpreted as starting the war or using the atomic bomb. It was ambiguous who the “we” was.

The cenotaph opened to the public on August 6, 1947 at a memorial service that took place two years after the atomic bomb claimed 140,000 lives in Hiroshima. Then-Hiroshima Mayor Shinzo Hamai said that once the epitaph was unveiled, people around the world would oppose nuclear weapons and pledge peace. But the reality was different.

The ambiguous epitaph immediately sparked controversy. The cenotaph was erected when Japan was still under Allied occupation. So some argued that the subject was left ambiguous to please the United States. They were stressing that Japan was the world’s first victim of nuclear bombing without acknowledging their responsibility in the war. The cenotaph stands in the middle of the Peace Memorial Park, but the controversy is hardly peaceful.

I was reminded of Hiroshima when I met visitors at Yasukuni Shrine on August 15. Fourteen Class A war criminals are enshrined there, and crowds start lining up in the morning. I was surprised by the number of visitors who lined up for over an hour on a weekday under the sizzling sun.

When I asked why they came, they said without hesitation, “For the ancestors who waged the war for peace.” They iterated the rhetoric that beautified the war with peace. When asked “What do you think about starting the war?” they said, “It was a decision to prevent Asian countries from becoming European colonies.” I was speechless. “I came to repent as the ancestors fought and sacrificed their lives.”
They were no different from those in military uniform outside the Yasukuni Shrine promoting imperialism. Actually, their composure and confidence were scarier than the madness of war.

When Japanese monarch Akihito, who is to abdicate in April 2019, spoke for the last time at a memorial service for the war dead, and for the fourth year in a row, he mentioned “deep repentance.” For 30 years, he hoped for peace. But peace in Hiroshima Park and Yasukuni Shrine seem to have a different subject and meaning.


JoongAng Ilbo, Aug. 21, Page 30
주어가 없는 위령비, 그리고 야스쿠니



사상 최악의 폭염이 지속되던 지난달 말 원자폭탄 투하의 도시 히로시마(廣島)를 찾았다. 원폭 피해지역은 평화기념공원으로 바뀌어 두 줄의 문구가 적힌 위령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편히 잠드십시오. 잘못은 반복되지 않으니까.”

원폭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고 전쟁의 참화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후손들의 다짐이다. 그런데 문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자에게 누군가 “주어(主語)가 없다”고 지적해준다. 누구의 잘못을 말하는 것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잘못인지 원폭을 사용한 잘못인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해석이다. 영어로는 ‘We shall not…’으로 되어 있으니 ‘우리’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모호하다.

이 위령비는 1947년 8월 6일 공개됐다. 14만 명의 희생자를 낸 원폭이 히로시마를 덮친 지 2년 만에 열린 첫 위령제에서였다. 하마이 신조(濱井信三) 당시 히로시마 시장은 “비문이 공개되면 전 세계 사람들이 반핵·평화를 맹세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주어가 없는 위령비 문구는 곧바로 논쟁에 휩싸였다. 위령비가 세워진 해는 미군정 통치 시절이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주어를 모호하게 흐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쟁에 대한 반성은 외면하고 세계 첫 원폭 피해자임을 앞세우는 자들의 논리였다. 위령비는 평화공원 한복판에 놓여 있지만 논쟁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이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지난 15일 야스쿠니 신사에서 만난 참배객들 때문이었다.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아침부터 붐볐다. 놀라운 것은 어마어마한 일반인 참배객의 숫자였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땡볕 아래서 한 시간 넘게 줄을 서면서까지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

참배객들은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 조상들을 위해서”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전쟁을 평화로 미화하는 논리를 줄줄 읊었다. “전쟁을 일으킨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 식민지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내린 결단”이라고 칭송했다. "몸 바쳐 싸운 조상을 뵐 면목이 없어 반성하기 위해 왔다"는 궤변에선 말문이 막혔다. 야스쿠니 신사 밖에서 군복을 입고 제국주의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전쟁의 광기’보다 태연함과 당당함이 느껴져 더 무서웠다.

내년 4월 퇴위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전몰자 추도식에서 기념사를 한 아키히토(昭仁) 일왕은 4년째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헤이세이(平成) 30년 동안 그가 염원한 것은 ‘평화’였다. 히로시마 공원에서, 야스쿠니 신사에서 본 평화는 주어도 본질도 다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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