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In memory of Cardinal Kim (KOR)

Feb 18,2019
Feb. 16 marked the 10th anniversary of Seoul’s former Archbishop’s, Cardinal Stephen Kim Sou-hwan, death. Kim remains an unquestionably iconic figure in Korea’s bloody transition to a democratic society. He was a genteel and modest leader who had set an example for civility and religious comfort. This kind of leadership is missed, as language becomes increasingly vulgar and hostile across society.

The entire nation mourned for the loss of a religious and moral leader 10 years ago. Over 400,000 people gathered at Myeongdong Cathedral for his funeral. Since he became Korea’s youngest and first Roman Catholic cardinal at the age of 47, he remained the country’s most widely respected social leader even after he retired in 1998. He lived true to his conviction that the church must protect and stand up for the poor and pained.

He raised his voice against the ruthless military regimes in the 1970s and ’80s and was most affected by the tragedy of the May 18 Gwangju massacre. He granted students refuge at the Myeongdong Cathedral and defied raid police during the peak of the student democracy movement in June 1987, saying the riot police would have to pass him, the priests and nuns if they wanted to get to the students.

In 2019, Korean society is without such a voice of reason and genuine devotion from the adult generation. All we see from the elite class is narrow-mindedness that cannot respect differences in opinions, arrogance that does not admit any wrongs and contempt for others.

A handful of politicians, government officials and judges who have constitutional duties to the society stood trial and were sent to prison. It is hard to come up with the names of respectable figures in today’s elite society.

We miss the late cardinal and his teachings on humility, sharing and modesty. Kim’s final words were, “Thank you, love one another.” If members of political and bureaucratic societies took his death wish to heart, Korean society would look very different.

JoongAng Sunday, Feb. 16-17, Page 30
김수환 추기경의 미소가 그리운 2019년 한국

오늘(2월16일)로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10년이 된다. 자신을 ‘바보’라 부르며 미소 짓던 김 추기경의 모습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한국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었다. 험한 말과 말이 부딪히며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는 요즘, 그의 빈자리는 더 크게 다가온다.

2009년 2월 16일 김 추기경이 선종하자 나라 전체가 슬퍼했다. 40만 명이 명동성당으로 몰리며 ‘명동의 기적’이란 말이 나왔다. 그가 우리 곁에 없다는 상실감 때문이었다. 1969년 최연소 추기경(47세)으로 서임된 김 추기경은 98년 퇴임 때까지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얼굴이자 사회의 존경을 받는 ‘큰 어른’이었다. 그는 교회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편에 서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았다. 70, 80년대 시대의 불의에 분노한 것도, 5.18을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으로 꼽은 것도 그래서였다. “당신들은 나를 밟고 우리 신부들도 밟고 수녀들도 밟고 넘어서야 학생들하고 만난다.” 87년 6월 명동성당에서 그는 독재정권에 분연히 맞섰다.

2019년 우리는 어른이 없는 대한민국을 살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야박함과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오만함, 인격에 모멸감을 주는 잔인함은 혐오사회를 부추길 뿐이다.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인과 공직자, 판사들까지 헌법적 책무를 외면한 채 탈선하다 법과 여론의 심판대에 서 있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되돌아보면서 이웃을 향해선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는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커가는 아이들에게 누굴 보라고 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김 추기경의 미소가 그리워지는 건 “이익을 위해 남을 착취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자기 비움’과 ‘연대’의 웃음”(김남희 가톨릭대 교수)을 더는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인지 모른다.

김 추기경은 각막 기증을 통해 두 사람에게 빛을 선물하면서 우리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정치권과 공직사회 모두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 두 마디를 마음에 새기고, 김 추기경의 수줍은 미소를 배우려 노력하며, 깊이 묵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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