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A century of Korean baseball

Jan 05,2004


A young missionary boarded a Korea-bound boat at the port of San Francisco in August 1901. Twenty-seven-year-old Philip Gillette had been a vicar of the YMCA at Yale University until he decided to leave for the East to preach the gospel. Mr. Gillette, who was a fan of baseball, had a ball and a glove in his bag.

Upon arrival, Mr. Gillette adopted a Korean name, Gil Ye-tae, and tried to become friends with Koreans. One day, he spotted an interesting scene in the downtown streets of Jongno. He saw Koreans watching Western soldiers playing baseball as a pastime. Mr. Gillette thought he could attract young Korean guys to the YMCA’s activities by introducing America’s favorite sports. He immediately ordered baseballs, bats and gloves from stateside.

In 1905, when the humiliating annexation treaty was signed between Korea and Japan, Mr. Gillette began teaching baseball to young Korean men. Hwangseong YMCA Baseball Team was the first Korean club. Then the sport spread among young Koreans, who created more teams. In February 1906, the first baseball match was held between Hwangseong YMCA and the German School. Mr. Gillette also introduced basketball and skating to Korea.

The YMCA team and Mr. Gillette were faced with persecution as the peninsula was occupied by imperial Japan. Japan had fabricated assassination attempts on the Japanese governor and arrested 105 Koreans. Some YMCA executives and members were included on the list. Mr. Gillette wrote a letter to the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to report the fabrication of the case, but his letter ended up in the hands of the Japanese authorities. He was forced to leave the country in 1913, and the team was broken up. Despite the demise of the first baseball team, private academies such as Hwimun and Baejae continued the legacy of baseball.

To celebrate the centennial of the introduction of the sport, Korean baseball organizations plan a series of events to honor Mr. Gillette. Korean baseball has grown to rival its counterpart in Japan, the country that persecuted Mr. Gillette and the YMCA team during the occupation. Lee Seung-yop, a star slugger who broke the Asian home run record set in Japan, is going to play in the Japanese League. Maybe in another 100 years, the Korean League will become the dream stage where Japanese players hope to play someday.

The writer is a deputy city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Lee Kyu-youn

길예태(吉禮泰)

1901년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한 젊은 선교사가 한국행 배를 탄다. 당시 27세의 필립 질레트. 예일대 YMCA에서 부목사로 일하던 그가 동양에서의 선교 활동을 택한 것이다. 평소 야구를 즐겨 했던 그의 여행 가방에는 야구공과 글러브가 들어 있었다.

한국에 온 질레트는 이름을 길예태(吉禮泰)로 바꾼다. 어떻게 하면 한국인들과 가까워질지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서울 종로길을 걷던 중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한다. 서양 병사들이 야구공을 던지며 노는 모습을 한국인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야구를 이용하면 YMCA 활동에 청년들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곧바로 미국에 야구공.배트.글러브 등을 주문한다.

굴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1905년. 그는 청년 회원들을 모아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국내 첫 야구팀인 황성YMCA야구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야구 열기가 번지면서 다른 야구팀들이 생겨났고 1906년 2월 황성YMCA와 덕어(독일어)학교 간에 최초의 경기가 벌어진다.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와 스케이트를 국내에 선보인 것도 그였다.

YMCA야구팀과 질레트는 일제 통치기에 접어들면서 순탄치 않은 운명에 처한다. 일제는 1911년 조선인들이 총독 암살을 모의했다는 '105인 사건'을 날조한다. 105인에는 YMCA 간부와 회원들이 포함돼 있었다. 질레트도 일제가 사건을 왜곡했다는 보고서를 만들어 국제선교협의회에 보냈다가 들통나고 만다. 결국 그는 1913년 한국을 떠나게 되고 야구팀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최초의 야구팀은 무너졌지만 휘문.배재 등의 사학들이 맥을 잇는다.

질레트가 YMCA에 야구를 보급한 지 1백년째 되는 올해, 야구단체들은 '야구 1백년 기념사업위원회' 구성 등 각종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그의 행적을 한국 야구의 기원으로 본 것이다. 이제 우리 야구도 질레트와 YMCA야구팀을 핍박했던 일본 수준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일본이 보유했던 아시아 홈런 기록을 깬 이승엽 선수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뛴다는 소식도 들린다. 1백년 뒤에는 일본 선수들이 한국 프로야구 리그에 진출하기 원하는 세상이 되길 새해 소망으로 꼽아본다.


이규연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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