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General Seo’s skills are needed today

June 09,2004


In 993, Khitan general Hsiao led 800,000 troops to Goryeo and demanded that it surrender. By the late 10th century, Khitans had already established the Liao Dynasty, which overwhelmed the Sung Dynasty.

The royal court of Goryeo debated whether to resist the invasion or to surrender the land north of Seogyeong, today’s Pyeongyang, to Kitai. But General Seo Hui advocated that Goryeo delay the decision until it understood the precise reason for the invasion. And he visited the Khitan camp by himself to negotiate.

The manifested reason for the invasion was that Goryeo had taken over the frontier lands of Kitai that had belonged to Goguryeo, and that the court of Goryeo served the Sung Dynasty. General Seo explained that Goryeo was a successor to Goguryeo. Also, he said that Goryeo could not have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Liao Dynasty because the Jurchens occupied the region between Goryeo and Kitai.

After seven days of negotiation, Goryeo agreed to serve Kitai and take the six counties in Gangdong, which were under Jurchen control, in return. Thanks to General Seo’s diplomatic maneuver, Goryeo avoided unnecessary fights and reclaimed its territorial rights east of the Yalu River.

The Korean government’s diplomatic caliber is far from the clever strategy of General Seo. It is not an exaggeration to say that Korea was outdone in every negotiation to sell a Korean company after the financial crisis of 1997. The Korean side lacked negotiating skills, but more importantly, the other side often had the upper hand.

Recently, the Korean Football Federation attempted to invite former Senegalese team coach Bruno Metsu to be head coach, but in vain. Mr. Metsu was criticized for his ambiguous attitude, but the federation is responsible for its unsophisticated negotiating skills.

Before the decision was finalized, the federation prematurely announced that Mr. Metsu would head the team.

When the government seems to be unilaterally outdone in crucial negotiations about the Korea-U.S. alliance or the reduction of the U.S. forces in Korea, it might be too much to expect the football federation to display clever moves. General Seo must be disappointed to see the poor performance of the negotiators today.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for the JoongAng Ilbo.


by Lee Se-jung

서희 장군

서기 993년 거란의 소손녕 장군이 80만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쳐들어와 항복을 강요했다. 당시 거란은 중국 송(宋)나라를 압도하는 강대국이었다. 고려 조정은 투항론과 서경(현재 평양) 이북의 땅을 거란에 주자는 할지론(割地論)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중군사(中軍師) 서희(徐熙)장군은 거란의 침략 이유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대응해도 늦지 않다는 반론을 폈다. 그리고 단신으로 80만 대군의 진영을 찾아가 협상에 나섰다.

거란이 내세운 침략 이유는 고려가 거란 땅인 옛 고구려 땅을 침식했고, 송나라를 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 장군은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이며, 여진족이 거란과의 중간 지역을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거란과 국교를 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송과의 일전(一戰)을 위해 후방의 후환인 고려를 자기 편으로 만들겠다는 거란의 의표를 정확히 찌른 주장이었다. 7일간의 협상 끝에 고려는 거란을 섬기는 대신 여진족이 점령하고 있는 강동 6주를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탁월한 외교술로 전쟁을 피하고 강동 280리를 수복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대외 협상 능력은 서 장군에게 면목이 없을 정도인 것 같다. 한때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는 승진을 원하면 한국과의 협상을 담당하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한국이 그만큼 녹록한 상대라는 의미다. 외환위기 이후 해외 자본에 국내 회사를 파는 협상에서도 한국은 번번이 당하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상 능력도 문제지만, 협상의 칼자루를 상대방이 쥔 경우가 많았던 탓도 있었다. 대우자동차를 GM에 판 뒤 정건용 당시 산업은행 총재가 "이 같은 비굴한 협상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소연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최근 축구협회가 브뤼노 메추 전 세네갈 감독을 국가대표 감독으로 영입하려다 실패했다. 메추 감독의 처신도 비판받고 있지만, 협상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를 감독으로 확정했다고 덜컥 발표해버린 축구협회의 어수룩한 협상능력에 대한 지적이 많다. 하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감축처럼 중요한 협상에서도 미국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판국에 축구협회의 협상능력을 기대하는 게 무리일지 모르겠다. 서희 장군이 혀를 차는 모습이 선하다.


이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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