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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데일리

Sinking feelings

[분수대]전함 야마토  PLAY AUDIO

Feb 04,2009



Why did the world’s first atom bomb fall on Hiroshima of all places, killing 200,000 people? It is of course entirely unjust for the innocent civilians who were killed. But for the United States military it was the perfect choice as the city bore high strategic value. Hiroshima was a military city that harbored Japan’s Second Army Group command, the Fifth Division command and dozens of military equipment factories such as Mitsubishi Heavy Industries. Kure’s naval harbor and shipbuilding dock also added to Hiroshima’s military value.

The Japanese have another painful memory related to Kure. The battleship Yamato was completed in the dockyard in Kure in 1941. It was the largest battleship at that time and was equipped with large cannons. The idea was that if its cannon fire is beyond the enemy’s range of gunfire it could easily win a battle and gain control of the oceans. Japan built the 72,800-ton, 314-meter ship with its own technologies. The construction took four years and was kept top secret. After the vessel was completed, the Japanese military was confident that they would never be defeated as long as they had the Yamato. However, once it was sent to battle, the battleship’s performance was quite mediocre as sea battles had already shifted to a war of mobility led by aircraft carriers. The Yamato was a success for engineering but a failure as a strategy.

The Yamato had a miserable demise. In April 1945, the battleship departed from the port in order to deter the U.S. military that was already at Okinawa from landing in one of the main islands. But hit by carpet bombing from 386 U.S. planes, the giant vessel sank helplessly. Among 3,332 soldiers on board, only 276 survived. It was predictable, as there was not a single Japanese fighter plane to protect the Yamato. Just as in most battles of the Japanese army in the late phase of World War II, most of the victims on the Yamato were teenage boys. A document from that time states that the Japanese military command foresaw such terrible consequences but went ahead with a rash departure in order to set an example for the entire Japanese forces of 100,000 to die in honor rather than surrender in humiliation.

Recently news reports are surfacing that people with influence and means in Kure are trying to raise the Yamato that has been lying on the sea floor near Kyushu. There is nothing wrong with restoring history, whether it is to console souls that have been wandering under the sea for 60 years or to use it for tourism.

Nevertheless, we feel uncomfortable hearing the news because we have seen many cases where relics from the war were used to glorify Japan’s aggressive invasions in history and to promote blind patriotism among the Japanese, instead of learning a lesson not to repeat the insanity.

If one doesn’t avoid mistakes of the past, memories that are buried deep somewhere inside the brain tend to surface again.


The writer is a deputy politic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Yeh Young-june [yyjune@joongang.co.kr]




전함 야마토

20만명의 사상자를 낸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하필이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무고하게 희생된 시민들이야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미군 수뇌부의 입장에선 ‘고도의 전략적 가치를 가진 도시’란 선택 기준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일본 육군 제2총군 사령부와 5사단 사령부는 물론 미쓰비시 중공업 등 수십개의 군수공장이 밀집한 군사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런 히로시마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높여준 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일본 굴지의 군항이자 조선 기지인 구레(吳)였다.

일본인들에겐 구레와 얽힌 또 하나의 아픈 기억이 있다. 1941년 구레 해군공창에서 완성된 전함 야마토(大和)는 적국 미국의 함정들을 압도하는 사상 최대의 전함이었다. 큰 배에 큰 대포를 갖춰 적의 사정권 밖에서 쏴 대면 손쉽게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이른바 ‘대함거포주의’의 산물이었다. 배수량 7만2800t, 길이 314m의 거함을 일본의 독자 기술로 그것도 극비 보안 속에서 4년만에 만들어 낸 뒤 일본 군부는 “야마토가 있는 한 절대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빠졌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 투입된 야마토가 거둔 전과는 미미했다. 이미 해상전의 양상이 항공모함 탑재기가 주도하는 기동전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야마토는 공학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작전엔 실패한 배였다.

야마토의 최후는 비참했다. 45년4월 오키나와까지 올라온 미군의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출항한 야마토는 미군기 386대의 융단 폭격을 맞고 침몰했다. 탑승 병사 3332명 가운데 생존자는 276명뿐이었다. 야마토를 호위한 일본 전투기가 한 대도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2차대전 말기 일본군의 모든 전투가 그랬던 것처럼, 전사자 중엔 10대 소년이 많았다. 일본군 지휘부는 그런 결과를 빤히 예상하면서도 ‘1억 총옥쇄’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무모한 출항을 감행했다는 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구레 유지들을 중심으로 규슈 앞바다에 잠들어 있는 야마토 인양을 추진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60여년간 바다밑을 떠돌고 있는 혼령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든, 돈벌이를 위한 관광자원화가 목적이든 생생한 역사의 증거를 복원하겠다는 건 전혀 시비 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야마토 인양 소식에 왠지 꺼림찍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광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교훈의 자료로 활용되어야 할 전쟁 유물들이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맹목적인 애국심을 부추기는 장으로 둔갑한 사례들을 여러 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과거의 오류와 단절하지 못하면 뇌리 속 어딘가에 각인된 형상기억합금이 다시 펴지는 법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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