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1 year later, Cheonan still unresolved

천안함 폭침 1주년

Mar 22,2011
At the compound of the Navy’s Second Fleet headquarters in Pyeongtaek, Gyeonggi, people on March 18 look around the corvette Cheonan that was torpedoed on March 26 last year. By Kim Hyung-soo

Nearly one year has passed since the sinking of the South Korean corvette, Cheonan, on March 26, which killed 46 sailors onboard. North Korea was blamed for torpedoing the ship, which it vehemently denies to this day. An investigation was launched by the government, led by a group of South Korean military authorities and private scholars that concluded the military corvette had been sunk by a North Korean torpedo.

Despite the weeks they spent studying the ship and torpedo pieces fished out of the ocean after the accident, not all Koreans have been convinced by the investigation’s findings. A multinational group of experts from the U.S., Britain, Australia and Sweden also concluded last May that the corvette had been torpedoed by North Korea.

Although the issue was brought to the UN Security Council, which released a statement criticizing the attack, opposition from China and Russia prevented the UNSC from condemning North Korea directly.

Some South Korean Internet users did not agree with the Korean and international investigation results. Numerous posts appeared on popular South Korean Internet portal sites claiming that the Cheonan sinking had been a hoax created by the South Korean and U.S. governments. Others asserted that the corvette had hit an aged explosive device left over from the Korean War or, more simply, an underwater boulder.

These doubts led the head of the investigative group to complain to the public about the lack of trust in their results. A recent meeting with the press held with the survivors of the accident showed that the remaining 58 sailors struggled most from “exaggerated stories” about the sinking.

A year after the accident, there are still doubts within the Korean public about what happened in the Yellow Sea on that fateful night last March.

A recent survey conducted by the JoongAng Ilbo marking the one-year anniversary showed that only 47 percent of South Koreans in their 30s believe the results of the investigation. A majority of those surveyed, or 67.9 percent, said they believe the results, while 90.9 percent of citizens aged 60 or over had the same response.

Apart from the public, academic experts are still in disagreement over the official investigation results. One professor who teaches physics at the University of Virginia, Lee Seung-hun, insists that the investigation was fabricated by South Korean authorities.

Lee and another professor, Suh Jae-jung at Johns Hopkins University, said last year that they had studied the investigation carried out by the South Korean investigation group. They said they had found “inconsistencies” and demanded a reinvestigation.

“I asked [the team] for samples and they said they had none left after their experiment,” Lee said to the JoongAng Ilbo. “Samples remain even after experiments. They can carry out another experiment to prove that I am wrong, but they won’t do it. They won’t give me samples, and since they won’t do another experiment they are unable to refute me.”

The professor also spoke out against claims made last year against him and Suh by another South Korean professor from the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Song Tae-ho, a professor of mechanical engineering at KAIST had said last year that Lee and Suh’s findings regarding their analysis of aluminum residue were in the wrong. Song had claimed that the “No. 1” found inscribed in Korean on the bottom of a torpedo fragment salvaged from the ocean had not disappeared because the heat from the explosion had quickly cooled underwater, making it possible for the writing to survive.

The “No. 1” had become an issue of controversy when questions were raised as to why the writing had not been burned off during the explosion that split the vessel in half.

Despite the continuing divide over the cause of the sinking, there has been one irrefutable change: the incident created a rift in inter-Korean relations that was further exacerbated by the sudden shelling of Yeonpyeong Island a few months later.

According to information released yesterday on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North Korea policy a year after the Cheonan incident, the Ministry of Unification said that it will maintain its hard-line policy against Pyongyang.

A punitive measure had been taken by Seoul last May in response to the Cheonan sinking, banning all imports of North Korean goods, as well as the sending of aid in large scales, with the exception of humanitarian aid. No new investments into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the only joint economic effort left between the two Koreas, have been allowed.


By Christine Kim [christine.kim@joongang.co.kr]


Related Korean Article[중앙일보]

천안함 폭침 1주년

“천안함 사건 진실 알고 싶어” 대학생들 안보강좌에 몰린다

이대 ‘북한정치론’ 170명 수강
고대, 북한학과 지원학생 늘어
강좌 연 국민대 박휘락 교수
“학생들, 군인 보는 눈 달라져”

지난 17일 서울 이화여대 생활관 216호 소강당. 좌석 170개가 ‘북한정치론’ 수업을 듣는 학생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지난해 1학기 수강 신청생은 100명이었는데 같은 해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후 지난해 2학기 150명, 올해 1학기엔 170명까지 늘었다. 이날의 강의 주제는 6·25전쟁. 이 수업을 진행하는 최대석(북한학) 교수가 “지난 시간엔 질문이 많아 진도를 못 나갔다”며 “오늘은 쉬는 시간에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생 7명이 교수를 둘러싸고 인천상륙작전 등 수업 내용에 대해 질문을 했다.

최 교수는 “천안함 이후 학생들의 안보의식과 수업 참여도가 높아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며 “소강당에서 하는 교양과목이라 강의 위주로 별 질문도 없었는데 지금은 수업이 끝나면 질문 메일을 3~4통씩 받는다”고 했다. 수업을 듣는 서양화과 이호진(20)씨는 “오빠가 군 복무 중이라 천안함 사건 직후 내내 마음을 졸였고 북한을 모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싶어 수강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대학가에 전쟁, 군사, 북한 등을 주제로 한 수업이 인기다. 관련 학과 학생들만 소규모로 듣던 수업의 수강생도 늘고 수강생 전공도 다양해졌다. 예비역 대령인 국민대 박휘락(정치대학원) 초빙교수는 1년에 1학기만 진행하던 ‘전쟁과 평화’ 수업을 올해부터 1, 2학기 모두 진행한다.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3년 전에는 안보 관련 수업이 인기가 없었지만, 올해는 정원이 200명이었는데 추가로 신청한 30여 명을 돌려보냈다. 박 교수는 “학생들이 군인 출신에 반감이 있었는데 천안함 이후 국가에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전쟁사’ 강의를 듣는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김건우(21)씨는 “ROTC생처럼 의무 수강생 20여 명이 듣던 수업이 타과생들을 포함해 50명으로 늘었다”며 “강의 시작할 때 수강 신청 이유를 발표했는데, 대부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안보 문제에 관해 알고 싶어졌다고 했다”고 했다.

북한학과 경쟁률도 치열해졌다. 동국대 북한학과는 1차 수시의 경우 2010학년도 26.1:1에서 2011학년도 53.2:1로 올랐고, 정시 가군의 경우 6.6:1에서 14:1로 올랐다. 인문사회학부로 들어와 2학년 때 학과를 선택하는 고려대의 경우 북한학과 학생 수가 지난해까지 13~15명이었는데 올해는 25명으로 늘었다. 이중 전공, 부전공 형태로 수업을 듣는 학생도 많아졌다. 홍관희(북한학과) 교수는 “한반도와 4대 강국이란 수업은 50명 정원인데 2배 이상 신청해 강의실 제한으로 받을 수가 없었다”며 “특히 핵문제, 대량살상무기, 재래식 전력 등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대학생 보수단체도 세 곳이나 생겼다. 기존에 있던 단체들도 올 한 해는 안보 세미나를 열고 거리 추모운동을 벌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번 1주기에는 대학생 보수단체 일곱 곳이 모여 추모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미래를여는청년포럼 대표 신보라(28·명지대 국문학과 3년)씨는 “46 용사가 안장된 대전현충원 참배를 다녀왔는데 200여 명의 학생이 신청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고려대 유호열(북한학과) 교수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20대들이 북한의 실체를 인식하게 됐고, 해병대 지원 열기 등에서 보듯 국방에 대한 책임의식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효은·채윤경 기자


[천안함은 과학이다] 송태호 “천안함의 진실? 양심이 아니라 실력 문제”

지난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국가 안보’보다 ‘천안함 진실 공방’에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피격됐다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미 버지니아 공대 이승헌(물리학과) 교수 등 일부 인사가 ‘증거가 없다’고 밝히면서다. 그 논란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교수 주장의 대척점에 KAIST 송태호(57·기계공학과·사진) 교수가 서 있다. “천안함은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란 게 그의 일관된 요지다. 송 교수는 21일 인터뷰에서 이 교수에 대해 “과학자의 양심 운운하는데,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실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학자의 양심’으로 천안함 진실을 파고들었다고 한다.

“내 전공은 기계공학이다. ‘어뢰 흡착물 논란’ 등 비전공 분야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물리학자인 이 교수는 기계공학 등 모든 분야를 얘기한다. 흡착물은 논외로 하고, 나머지 주장은 다 틀렸다. 틀렸음을 인정하는 게 과학자의 양심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실력 문제다. 수능시험 보는 학생이 문제를 잘못 풀었다 하자. 양심의 문제인가. 아니다. 실력이 없어서다.”

-그는 미국 유명 대학 교수이지 않나.

“내가 석·박사 40명을 배출했고 이 중 5명이 미국 대학 교수로 일한다. 내 제자 중 이 교수 같은 사람이 있으면 쫓아냈을 거다. 지난해 말 반박글을 이 교수에게 e-메일로 보냈다. ‘열심히 읽어보시고 내실 있는 학자가 돼라’고 덧붙였다. 답장은 없었고, 인터넷 언론에 그전 얘기를 반복하더라. ”

-일대일 토론을 하지 그랬나.

“수차례 학회 차원에서 초청했다. 온다고 했다가 오지 않았다.”

-이 교수는 ‘어뢰 추진체 1번 글씨가 고열에 타지 않고 남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스가 수중에서 폭발해 버블이 생겨도 고온이 유지된다는 ‘비가역성’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가스가 물속에서 폭발하면 그 에너지는 옆에 있는 물을 밀어낸다. 그 과정에서 가스 에너지는 떨어지고 온도도 내려가게 돼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배우는 열역학 1법칙,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설사 고온이 유지된다고 100보 양보해도 그 짧은 시간에 표면 온도를 100도 이상 올릴 수 없다. 1번 글씨가 타지 않는 이유다.”

-물속이어서 그런가.

“물속이 아니어도 그렇다. 연평도 포격 때 수거된 탄피에서도 글씨가 안 타고 남아 있었다. 상식이다. 답답한 마음에 가스 폭발 시 열전도 실험을 한 동영상을 KAIST 열전달 연구실 홈페이지(http://htl.kaist.ac.kr)에 올렸다. 많은 사람이 보고 답을 얻었으면 한다.”

-이 교수도 과학자니까 많은 이들이 귀를 솔깃해하는 것 아닌가.

“과학자가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실물과 현장을 보는 거다. 이 교수 등은 천안함을 보지 않았다. 한국은 엔지니어링 분야가 시원찮은 나라가 아니다. 한국 과학자들을 쉽게 생각하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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