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w-budget movie with high ho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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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ow-budget movie with high ho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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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ngsan” director Jeon Jae-hong, 34, left, and producer Jeon Yoon-chan, 38. Kim Ki-duk wrote the screenplay and was the executive director of the low-budget film. By Byun Sun-su


Part love story, part postwar tragedy, with a dose of comedy thrown in, the low-budget film “Poongsan” is expected to make a splash in the Korean movie industry when it opens nationwide on Thursday.

The film’s plot has all the makings of a high-budget cinematic endeavor. Poongsan (Yoon Kye-sang) has the unenviable - and death-defying - job of delivering messages across the North and South Korean border to separated families.

When South Korean government agents ask him to smuggle in In-oak (Kim Kyu-ree), the lover of a high-ranking North Korean defector, into the South, the damsel and rescuer fall in love instead.

But “Poongsan” came to life on just one-tenth of the average budget for Korean films, a trademark of the movie’s executive director Kim Ki-duk, 51, who just won the Prize Un Certain Regard for “Arirang” at last month’s Cannes Film Festival.

Working with his protege Jeon Jae-hong, 34, and producer Jeon Yoon-chan, 38, Kim self-funded half of the movie’s total production cost of 200 million won ($184,200).

But despite its financial limitations, the film has been lauded by critics for not betraying any notion of its poverty roots.

Indeed, Kim and his team said they aimed to take a different approach than movie productions funded by large companies - one in which films are produced through the filmmakers’ passion and energy rather than the depth of their pockets.

“We were determined to show that movies must be made with passion and not with money,” said director Jeon. “Many movie stars don’t like to join the production of low-budget films because of financial reasons, but there are ‘real actors’ who are willing to participate no matter what the financial circumstances.”

Producer Jeon said “Poongsan” would break the stereotype of low-budget films translating into low-quality work. “This movie will break the stereotype because experts in their field came together to produce a quality film.”

Including the two lead actors, 40 actors and crew took part in the film’s production without pay. Instead, they are guaranteed to receive a cut of the film’s profit if it passes its break-even point.

“When I read Kim Ki-duk’s screenplay, I thought to myself, ‘This movie must be produced no matter what,’?” said producer Jeon. “We were confident in directing a better film than ‘Rough Cut,’” the 2008 low-budget film that achieved box-office success and that was also directed and produced by Kim. The film drew in 1.3 million moviegoers.

“We wanted to show different genres, including action, romance and comedy, every 15 minutes in the movie in order to loosen the dark and heavy story line,” said director Jeon, who won an award for his film “Beautiful” at the 2008 Fukuoka Asian Film Festival. “Elements of black comedy are also included in the film because it fits well with the reality of how separated families in North and South Korea cannot communicate with each other.”

Although most movies are filmed over 40 to 60 days in a three-month period, “Poongsan” was filmed for just 25 days over one month - a grueling schedule that tested the crew.

“We filmed the movie for almost 24 hours a day,” said director Jeon. “We were all under a lot of stress, and I sometimes got into arguments with Producer Jeon and once told him that I was not a filming machine.”

“Poongsan,” which has already been screened for selected guests and movie critics, is expected to do well at the box office against well-funded movies - not the least of which is due to its high-quality feel.

In fact, asked if they were willing to produce another film with just 200 million won, director Jeon indicated that “Poongsan” may have set the bar for low-budget films too high. He jokingly replied, “Never again .?.?. We’ll be in trouble if our film becomes the benchmark for low-budget movies.” After all, they may have trouble even topping themselves the next time around.


By Ki Sun-min [estyle@joongang.co.kr]

한글 관련 기사 [스타뉴스]
`풍산개` 전재홍 감독 "분단 자체가 슬픈멜로"

3시간만에 휴전선을 넘는 남자(윤계상 분). 그것도 장대 하나로 훌쩍,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넘어선다. 60년 가까이 굳게 닫힌 휴전선 너머에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말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두고 살아가는 이곳에서 영화 `풍산개`(감독 전재홍)는 일종의 판타지다.

`풍산개`는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입을 굳게 다문 남자에게 남과 북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다그쳐 묻는다. 대답할 때까지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남이냐 북이냐에 따라 내 편인지 네 편인지가 선명하게 갈라지는 분단국가의 비극이 아프게 녹아있다.

남북의 이야기를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아슬아슬 흥미롭게 그려낸 `풍산개`는 영화계의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도 줄타기를 반복한다. 100억 예산을 투입한 대작이 즐비한 올해 극장가에 노개런티를 감수한 배우와 헌신적인 스태프가 열정 하나로 만어 내놓은 영화다. 그 제작자와 각본가가 김기덕 감독이라는 점은 흥미와 관심을 더한다.

`풍산개`는 블록버스터가 독식하다시피 한 현실의 극장가에서 반전의 판타지를 노린다. 그 선봉에 선 이가 연출자 전재홍 감독이다. `아름답다` 이후 3년만에, 천신만고 끝에 새 작품을 내놓은 그에게선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였다.


-영화 잘 봤다. 흥미롭고 또 `때깔`이 좋더라.

▶고맙다. 보통의 저예산 영화처럼 보이면 안된다는 게 목표였다. 저예산 영화는 롱테이크가 많고 카메라가 고정된 경우가 또 많다. 우리 영화는 빠른 속도로 찍고 편집도 빠르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에 카메라를 3개씩 돌리기도 했다. 특히 후반작업은 더욱 공을 들였다. 관객은 저예산 영화라고 더 후하게 평가하는 게 아니지 않나. 가진 데서 최상을 끌어내야 했다. 색보정, 조명, 촬영 모두에 신경을 썼다. CG는 모팩, 음향은 스튜디오K, 색보정은 2L, 뮤직 에디터는 박인영 음악감독…모두 최고의 스태프가 참여했다.

-크레디트에 투자 `풍산개 스태프`라고 올라갔더라.

▶우리 영화의 포인트다. 열정으로 만든 영화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더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쉽게 못 보여드린 부분도 있지만, 열정이 있기에 지금만큼이 가능했다.

우리는 모든 스태프가 투자자다. 후반작업 업체도 그렇고 스태프의 노력과 호흡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윤계상과 김규리씨도 투자자다. 그들의 열정 또한 투자다. 우리 팀은 열정의 드림팀이었다. 그건 돈으로 꾸릴 수가 없는 팀이었다. 너무 다행인 게, 김기덕 감독님이나 저에 대한 신용이 나쁘지 않은 것 같더라. 약속을 지켜야 했고, 그 때문에 30일만에 25회차 촬영을 해 낼 수 있었다.

다만 걱정이 있다면 이게 모든 저예산영화의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팀 마다 상황이 다른데 그걸 전형으로 삼을 순 없는 거다. 스태프만 상처를 받을 수가 있다.

-처음 시작할 때 김기덕필름 사무실도 없었다던데. 사활을 건 작품을 하며 부담감 또한 컸을 것 같다.

▶시작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감독님이 제게 시나리오를 먼저 보내주셨다. 부담만 컸다면 영화를 못 찍었을 거다. 겁은 없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영화였고, 거의 없어진 김기덕 필름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건 부담이 아니었다. 그 기회를 제게 주신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 작품을 내가 한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했고, 김기덕 감독님이 다시 일어서시는구나, 나 또한 일어나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가진 건 없어도 열정이 넘쳤다. 제가 사는 오피스텔이 메인 사무실이었다. 거기에 자리 두고 작업을 했다. 하루 출근하고 안 나온 연출부도 있었다. 나중엔 침대를 엎고 간이 책상을 세워서 일했다. 나는 행운아다. 열악했지만 최고의 현장, 최고의 스태프, 최고의 배우였다.

-그 사이 김기덕 감독과 장훈 감독의 결별 이야기가 회자됐고, 칸 영화제에서 `아리랑`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사이에서 곤혹스럽지는 않았나.

▶곤혹스럽다기보다는 모든 상황이 슬펐다. 그렇게밖에는 이야기를 못 하겠다. 장훈 감독과 통화를 했다. 그냥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말씀만 드리겠다. 저도 그렇고 김기덕 감독님도 제자들끼리 싸우는 걸 원치 않으신다.

처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풍산개`를 촬영하고 있었다. 조감독이랑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더라. 잠깐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가 다시 촬영을 했다. 감독이 현장에서 감정을 보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배웠고. 장훈 감독은 친형 같은 형이다. 더 좋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김기덕 감독님도, 또 장훈 감독도.

-`아리랑`이 첫 공개된 칸 영화제에서도 김기덕 감독과 함께했다.

▶`아리랑`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건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다. 다만 나는 모든 것이 슬펐다. 가장 슬펐던 건 김기덕 사단의 붕괴였다. 그 땐 돌파구가 없었다. `풍산개`를 하면서 장철수(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조창호(피터팬의 공식, 폭풍전야), 노홍진(굿바이 보이), 데뷔를 앞둔 문시현 감독이 다 모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뭉클했다. `풍산개` 때문에 서로 모여 격려하던 그 순간이 참 따뜻했다. `풍산개`는 그렇게 위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김기덕 사단 감독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부드럽다는 거다. 다 순하고 부드럽다. 영화들을 보고 다 거친 줄 아시는데 그렇지가 않다. 꼭 써 달라.(웃음)

-칸 영화제 얘기를 다시 하자면, 2005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을 처음 만난 뒤 6년만의 칸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원래 감독님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그 분만이 영화를 가르칠 수 있다고 확신했고, 전화를 하고 그냥 칸에 찾아갔다. 이번엔 같이 갔지만 그 땐 그런 위치가 아니었다. 처음 감독님을 만난 같은 장소에서 6년만에 다시 눈을 뜨시는 걸 보는 게 묘했다. `아리랑` 때 기립박수를 받으실 땐 제가 더 감격했다. 눈물이 나서 혼났다.

김기덕 감독은 제게 아버지 같은 존재다. 감독님이 아니면 내가 영화를 할 수 있었겠나. 늘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셨고, `풍산개`를 하면서도 그 믿음이 너무 감사했다. 칸에서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누가 네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한다면 그를 믿겠냐`고. 답이 선뜻 안 나왔다. 감독님은 다만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하셨다. 제가 감독님을 걱정하는 그 순간에 감독님은 제 걱정을 하고 계시더라.

-제작자로서 김기덕 감독은 어떤가.

▶감독의 역량을 믿고 의견을 듣고 자유를 주는 제작자라면 최고의 제작자가 아닐까. 제가 현장을 지휘할 수 있도록 일부러 현장에는 안 나타나셨다. 나중에 듣고 보니 첫 촬영 때 멀리서 지켜보셨다고 하더라. 늘 너의 영화를 찍으라고 하신다. `풍산개` 또한 제 시선에서 찍고 싶었는데 그걸 믿어 주셨다.

-중립국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면서 직접 북한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이번 영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70년대 생이라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 갔더니 그 분들이 너무 순박하게 생기고, 또 뛰어난 예술적 역량에 놀랐다. 너무 연주가 좋았던 게 생각난다. 그런데,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기회인데도 그게 되질 않았다. 똑같이 생기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 중립국에 있는데도 우리 사이에 벽이 있었다. 이념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풍산(윤계상 분)이 너무 와 닿았다. 나 역시 이념, 정치 이런 거 상관않고 그들과 풀밭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그 곳이 가장 먼 곳이라는 게 아이러니했다.

기존의 전쟁영화를 보면 화려한 폭탄 속에서 날아다니는 주인공을 영웅적인 느낌으로 그린다. 하지만 전쟁은 비극이고 슬픔이 아닌가. 분단이 우리에겐 너무 멀게 느껴지지만 사실 너무 생생한 거다. 기존 분단 영화와 차별성을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렵지 않게, 남녀노소 편하게, 또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시사회 뒤 그런 반응들이 많아 다행이다.

-상업적으로 신경을 쓴 대목도 엿보인다. 의외의 유머라든지.

▶`풍산개`는 모든 요소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밌어야 하고, 멜로도, 액션도, 코믹도 다 깔려있었으면 했다. 관객 또한 남녀노소 상관없이 즐길 수 있었으면 했다. 그 관객 모두와 같이 웃고 울고 슬퍼하는 게 영화인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영화를 한다.

-분단의 아픔이 결국엔 남녀의 멜로로 그려지더라. 그 이유는 뭐였나.

▶분단 자체가 멜로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나. 그게 멜로다. 그것도 슬픈 멜로. 그걸 풍산과 인옥(김규리 분)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분단이고 슬픈 멜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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