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Last believers in the North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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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30,2018
JOO JUNG-WAN
The author is the head of Career Taskforce at the JoongAng Ilbo.

It was Easter in April 1988, a few months before the Seoul Olympic Games, when a dramatic event took place in the Vatican. Two Catholics from North Korea met with Pope John Paul II and received a blessing. North Korea probably struggled to find them at the request of the Vatican. They were a married couple, Mark Pak Dok-su and Theresa Hong Do-suk.

The Vatican sent Father Jang Ik, now a bishop, to Pyongyang in June 1987, and he met five North Korean Catholics, including the couple. Jang wrote on a booklet published by the North Korean Missionary Committee, “After all the churches were destroyed and believers were scattered, Catholics pursued their religious lives individually or as a family.” He added, “They continued to hold morning and evening prayers and replaced mass with citing the Lord’s Prayer and Hail Mary 33 times. Mark Pak and Theresa Hong did not want to miss the Solemnity, so they sang Latin hymns that they had memorized.”

The North Korean regime oppresses religion. After the Korean War, Catholic priests were arrested, abducted or killed. As a result, there was not a single Catholic priest left in the North.

“When I went to my room, I could see bullet holes on the walls and ceiling like the stars on the night sky,” said Father Lim Chung-sin, who had served at Goksan Church in Hwanghae province until October 1950. He barely saved himself. In his memoir, he wrote, “Fathers Seo, Yang and Chon almost survived but were killed as the Communists were retreating.”

Changes started as North Korea contacted the Vatican in the late 1980s. Around this time, Jangchung Church was constructed in Pyongyang. According to Bishop Jang, Theresa Hong was a native of Pihyon, North Pyeongan Province, and was 55 years old in 1987. She was a teenager at the time of the 1950-53 Korean War and kept her religion in hiding for 37 years.

Hong’s story was also featured in a book by former North Korean diplomat Thae Yong-ho. Workers’ Party executives searched old documents to find faithful Catholics before the Korean War, and Theresa Hong was found. She denied it at first, but later confessed that once God enters the heart, he never leaves. Thae wrote that the people at the Vatican saw her eyes and acknowledged that she was a believer.

What happened to Theresa Hong after she met the Pope? If she is still alive, she will be 86 years old. If Pope Francis visits North Korea, will he meet real believers?

JoongAng Ilbo, Oct. 29, Page 30
북한의 ‘진짜 신자’ 홍 데레사의 신앙
주정완 커리어TF팀장

"진짜 신자를 데려와라." 서울올림픽을 몇 달 앞둔 1988년 4월 예수부활대축일. 바티칸 교황청에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북한에서 온 천주교 신자 두 명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만나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교황청의 요구에 북한 정권이 어렵사리 찾아낸 사람들이었다. 주인공은 박덕수 말구, 홍도숙 데레사 부부였다.

바티칸의 파견으로 87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장익 주교(당시 신부)는 두 사람을 포함한 북한 신자 다섯 명을 만났다. 장 주교는 북한선교위원회 발간 책자에서 "모든 성당이 파괴되고 교우들은 흩어진 이래 각자 가정에서 또는 개인으로서 형편 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조·만과(아침·저녁기도)와 삼종경은 여전히 바치고 주일이면 주모경 서른세 번으로 대송(미사를 대신해 기도문을 외움)한다고 했다”며 “박 말구, 홍 데레사 부부는 큰 첨례(교회 대축일)를 그냥 보내기가 너무 허전해 예부터 외워오던 라틴말 성가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종교를 적대시하던 북한 정권은 6ㆍ25전쟁을 일으킨 뒤 천주교 신부들을 속속 체포ㆍ납치하거나 학살했다. 그 결과 북한에는 단 한 명의 신부도 남지 않게 됐다. “내 방에 들어가 보니 벽과 천장에 총알구멍이 밤하늘에 별처럼 송송 뚫렸다.” 황해도 곡산성당에서 50년 10월까지 사목했던 임충신 신부의 증언이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임 신부는 자신의 책에서 “송화 서 신부, 재령 양 신부, 사리원 전 신부 등도 끝까지 잘 남아 있다가 그놈들(공산당)이 쫓겨갈 무렵 학살당했다”고 전했다.

그러던 북한이 80년대 후반 교황청과 접촉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평양에 장충성당이 건설된 것도 이 무렵이다. 장 주교에 따르면 홍 데레사는 87년 당시 약 55세로 평안북도 피현 출신이라고 한다. 6·25 때 10대 청소년이었을 홍 데레사는 37년 동안 숨어서 간절한 신앙을 지켜왔을 것이다.

홍 데레사의 사연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책에도 소개됐다. 노동당 간부들이 예전 서류를 뒤져 6ㆍ25 전까지 독실했던 신자를 찾아냈는데, 그가 홍 데레사였다. 처음엔 부인하던 홍 데레사는 결국 용기를 내 “한번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교황청 사람들은 할머니의 눈빛만 보고서도 진짜 신자가 분명하다고 인정했다”고 소개했다.

교황을 만난 홍 데레사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아직 살아 있다면 약 86세다. 만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북한의 '진짜 신자'들은 교황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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