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Farewell to first lady Lee (KOR)

June 13,2019
The name Lee Hee-ho carries special weight. It became tradition for political heavyweights to pay their respects to the most revered first lady. Hwang Kyo-ahn, the head of the main opposition Liberty Korea Party (LKP), had planned to visit her if she had not fallen ill. Her entire life — 97 years — had value because of her passion for women’s rights, democracy, human rights and peace.

She was more than a first lady to the nation. She should be remembered as one of the greatest female leaders and a figure of colossal importance gender aside. She was an activist and reformist. She founded the country’s first women’s movement and research organizations in the ’50s and served as the secretary-general for Korean 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 (YWCA). She fought for gender equality during rigidly patriarchal times. She played a role in institutionalizing the first Ministry of Women’s Affairs under the presidency of her husband, President Kim Dae-jung.

At the same time, she was a devoted partner to Kim, a longtime dissident, in his lonely and hard struggle for democracy against dictatorship and the military regime. Nothing, even under the pain of his death, bent her will and aspiration for democracy and peace.

She sent a letter to her husband every day when he was imprisoned and sentenced to death for insurgency by the military regime. She later joked that she had “schooled” him in prison. She found the books her husband would like and highlighted parts of importance — she was Kim’s soulmate.

Lee also was a messenger of peace, having visited North Korea three times. She accompanied her husband during the first-ever inter-Korean summit in 2000. She also led the South Korean entourage to attend the funeral of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in December 2011. She crossed the border to help the conservative government to break the ice with North Korea despite her poor health in August 2015.
As a person, she was warm and compassionate. She would only use half of the lights at her home in Donggyo-dong, western Seoul, to save energy. Kim’s secretaries remember how Lee would make breakfast for them while wearing hair rollers.

Her last words were: “I thank everyone for giving so much love to President Kim Dae-jung and me. I hope you will live with love, harmony and happiness. I will pray for all of you in heaven and for peace and unification.” She passed away on June 10. We will remember the great democracy activist every June 10 when we commemorate the June 10 student democracy movement.

JoongAng Ilbo, June 12, Page 30
‘큰 어른’ 이희호 여사의 특별한 마지막 메시지

‘이희호’라는 이름은 하나의 특별한 상징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에서부터 숱한 무게 있는 정치인들이 동교동을 찾아 이희호 여사에게 예를 표하는 장면은 이미 우리에겐 낯익은 풍경이었다. 심지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까지 이 여사 예방을 추진해왔다. 만약 이 여사가 10일 영면에 들지 않았더라면, 이 여사가 보수야당 대표를 맞이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자체가 현대사인 이 여사의 97년 삶을 돌아본다면, 그가 상징해온 것들은 여성·민주주의·인권·평화 등의 소중하고 값진 가치였다.

이 여사는 영부인 이전에 세 가지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위대한 ‘여성지도자’이자 ‘큰 어른’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우선 고인은 사회운동가일 뿐 아니라 혁신가였다. 이 여사는 이태영ㆍ김정례 등과 함께 1950년대에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을 창설해 활동하고 훗날 YWCA 총무를 맡았던 제1세대 여성운동가였다. 여성에겐 모든 게 척박하기만 했던 이 땅에 양성평등권을 제도화하는 길을 열어나갔다. 최초로 김대중 정부가 ‘여성부’(현 여성가족부)를 설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 사회변화를 이끌었으니 가히 혁신가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한편으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낸 '김대중(DJ)의 동반자'였다. 김대중의 동반자로 살다 보니, 고인의 삶은 온전히 형극이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의 표현에 따르면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그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고인은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1980년) 받고 투옥 중일 때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옥중의 김 전 대통령에게 ‘공부’를 시키려는 의도였다니 가히 '대통령 DJ'를 설계했다고 할 만하다. 또한 고인은 DJ가 읽고 싶다는 책이 있으면 미리 구해 읽고 중요한 대목에 마크하거나 참고 서적을 찾아 같이 넣어주는, 세심한 지적 파트너이기도 했다. 그래서 DJ는 야당 총재 시절 국회에서 연설할 때는 참모들이 정리한 원고가 아니라 이 여사가 자신의 구술을 받아적어 육필로 정리한 원고를 갖고 들어갔다고 한다.

고인은 또한 북한을 세 차례 방문한 한반도 평화의 메신저였다. 2000년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에 영부인으로 동행한 것을 비롯해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방북했고, 2015년 8월에 다시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방북했다. 단절된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라면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도 협력한 것이다.

여성지도자가 아닌 ‘인간 이희호’ 여사는 소박하고, 인정 많고, 구수한 우리네 보통 어머니이기도 했다. 동교동을 출입한 인사들은 이 여사가 자택 전등 스위치 중 절반은 아예 누르지도 못하게 테이프로 고정해 둘 정도였다고 전한다. DJ는 아침 식사 자리에도 늘 의관을 완벽하게 정제하고야 나오는 스타일이었지만, 이 여사는 머리카락에 헤어롤을 감은 모습으로 따뜻한 밥상을 직접 차려 비서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런 이 여사는 ”우리 국민께서 김대중 대통령과 제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하다.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 하늘나라에 가서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소천했다. 이 여사가 영면에 든 날은 6월 10일 밤이었다. DJ의 민주화 동지 이 여사를 이제 6ㆍ10민주화운동과 함께 기억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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