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Gimcheon home of Na Hwa-rang is named a cultural heritage site

Mar 11,2020
The birthplace of composer Cho Kwang-hwan, popularly known as Na Hwa-rang, in Gimcheon, North Gyeongsang, is now a national cultural heritage sit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The home of late composer Cho Kwang-hwan, more popularly known as Na Hwa-rang, in the North Gyeongsang city of Gimcheon has been registered as a national cultural heritage site,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nnounced on Monday.

“Composer Cho was a figure that represented musicians and composers in Korea shortly following its independence,” the administration said in its statement Monday. “His home is among very few existing homes of musicians and composers of his time and deserves preservation and study.”

This marks the first time that a musician or a composer’s birthplace has been registered as a heritage site in Korea.

Cho, born in 1921, learned to play violin in Japan. He debuted as a singer in 1942 and the next year started composing music at the recommendation of his older brother, Cho Kyung-hwan, who was composing music and writing lyrics for pop music at the time.

Na Hwa-rang (Cho Kwang-hwan)
Cho Kwang-hwan was known for incorporating mambo into Korean music in the 1950s and rose to fame when Lee Mi-ja released “Love at 19” in 1959, which he wrote.

The composer’s songs include “Samgaksan Guests,” “Doraji Mambo” and “Milestone.” He wrote around 600 songs before he died in 1983.

Cho married singer Yoo Seong-hee and had three sons - Cho Kyu-cheon, Kyu-man and Kyu-chan - all of whom performed as singers in the 1990s. Kyu-chan debuted first among the brothers in 1989 after winning the gold prize at the first Yoo Jae Ha Music Concours. All of Cho’s sons were known for their music composition and editing skills. The trio produced their first album “Cho Trio” in 1998.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said that the owner of Cho’s birthplace first approached the administration regarding the possibility of having it registered as a national cultural heritage site.

Other sites registered along with Cho’s house on Monday were a tourist hotel in Gwangju that dates back to post-Korean War (1950-53) era and is the only surviving government-built hotel dating back to this time, and a historical street in Tongyeong, South Gyeongsang, that provides a glimpse at life following Korea’s independence from Japan’s colonization (1910-1945).

BY KANG HYE-RAN, ESTHER CHUNG [chung.juhee@joongang.co.kr]



‘열아홉 순정’ 작곡 나화랑 생가 등록문화재 됐다

‘열아홉 순정’ ‘늴리리 맘보’의 작곡가이자 가수 조규찬의 아버지 나화랑(본명 조경환, 1921~1983)의 경북 김천 생가가 문화재로 등록됐다. 대중가요 작곡가‧작사가‧가수 등을 통틀어 대중음악인의 생가가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9일 ‘김천 나화랑 생가’ ‘광주 구 무등산 관광호텔’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 등 총 3건을 문화재로 등록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국가등록문화재 제775호가 된 김천 나화랑 생가는 나화랑이 태어난 1921년 지어졌다. 안채‧사랑채‧창고를 갖춘 건축물로 현재까지 과거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나화랑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79)의 1959년 데뷔곡 ‘열아홉 순정’을 포함해 500여곡의 가요를 작곡했다. 일각에선 작곡 편수가 1000여곡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무너진 사랑탑’ ‘늴리리 맘보’ ‘청포도사랑’ ‘서귀포 사랑’ 등 그가 남긴 곡은 대부분 경쾌하면서 정감이 서려있다는 평을 듣는다. 남일해‧송민도‧이미자‧도미‧손인호 등 1960~70년대 인기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불렀고 히트시켰다.

1981년 3월 동아일보와의 생전 인터뷰를 보면 그가 대중가요에 발붙인 것은 일본에서 중앙음악학교를 다닐 당시 고 백년설(1915~1980)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을 부른 당대 최고 인기가수 백년설은 그에게 “대중가요라고 무시하지 말고 정통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 대중음악을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와 가스펠 가수 유성희씨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들이 1990년대 각각 솔로가수로 활약한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현수‧규만‧규찬 형제 가운데 막내 조규찬이 가장 먼저 데뷔했다. 동국대 서양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9년 제1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자작곡 ‘무지개’로 금상을 수상하면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3형제 모두 작곡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작사, 작곡, 편곡에 능했고 함께 ‘조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1998년 1집 앨범을 내기도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건축물 등록문화재는 50년 이상 된 게 대상인데 대중음악가의 생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면서 “당대 작곡‧작사가 및 가수 등 100여명을 조사했고 나화랑 선생은 생전 업적과 현재 생가 상태 등을 볼 때 문화재로 등록할 만한 가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정문화재와 달리 등록문화재는 소유주가 등록 신청을 하면 문화재청이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 선정되면 향후 보수‧복원 때 국고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날 함께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광주 구 무등산 관광호텔’(제 776호)은 한국전쟁 이후 중앙정부가 설악산, 서귀포, 무등산 등 국내 명승지에 건립한 관광호텔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로 관광사적 의미가 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임시 피난처로 사용되었던 측면에서 지역의 근대사적 가치가 인정됐다.

또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제 777호)은 조선시대 성 밖 거리의 흔적들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대한제국기부터 조성된 매립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까지 번화했던 구시가지의 근대 도시 경관 및 건축 유산이 집중적으로 보존되어 있어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았다.

문화재청은 또 ‘김천고등학교 본관’, ‘김천고등학교 구 과학관’, ‘수원역 급수탑’ 및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대표적인 불교 종합 잡지인 『불교』 등 4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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