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s role in the life of the struggling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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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s role in the life of the struggling artist


“Death of Chatterton” (1856) by Henry Wallis (1830-1916). Oil on Canvas, Tate Britain, London

A young man lies in a twisted position on a bed. His right hand, which holds pieces of paper, falls limply to the floor. Scattered around him are shredded scraps of paper and an empty bottle. On the windowsill, there is a flower in full bloom but the young man cannot smell it any more and the sliver of sunlight that may once have brought him comfort now shines on his cold body.

This young man is Thomas Chatterton, a poet in the late 18th century and a prodigy who showed his talent in his teenage years. He wrote medieval sonnets under the name of an imaginary medieval monk and produced a large body of work, from romantic idylls to political columns. Magazine editors praised his writings but neglected to pay him enough or put off paying him altogether. So Chatterton lived in poverty and was always at the brink of starvation. To make matters worse, some of his established peers harshly criticized his work. In August 1770, Chatterton carried a bottle of arsenic up to his attic room, tore up all of his manuscripts and poisoned himself to death. He was just 17 years old.

Later, Romantic poets like Percy B. Shelley and William Wordsworth re-evaluated Chatterton’s work and became outraged by his death. In the mid-19th century, the young painter Henry Wallace (1830-1916) created “Death of Chatterton” as a tribute to the struggle of the young artists of the day. It became a huge sensation, mainly because a lot of writers and artists of the time felt the painting mirrored their own difficult situations.

More than a century later, there was a similar death of a young writer in Korea. The death is even more heartbreaking since it was not a suicide like Chatterton’s was.

A month ago, news reports of the death of screenwriter Choi Go-eun, who had been suffering from chronic disease and starvation, shocked the public. In particular, news that Choi had put a note on her neighbor’s gate just before her death triggered not only sympathy but also fierce controversy over social welfare support for artists. The local newspaper that reported the note said that in it she asked her neighbor (who was also her landlord) for any “leftover rice or kimchi” the neighbor could spare.

Some blamed Choi’s death on the country’s weak social welfare system, while others said that she could have applied for and received government support or eaten at soup kitchens. Some blamed her, saying that she must have been too proud to take part-time jobs.

This led the famous novelist Kim Young-ha, who once taught Choi at university, to write on his Web site that Choi died not of starvation but from a chronic illness. Kim emphasized that Choi did her best to survive before she lost all her energy because of the disease. Kim unleashed his anger on the media, for publishing “sensational” reports immediately after her death.

When the real note was later obtained and published by another local newspaper, it had a very different tone from the initial media reports. It is true that she asked for rice and kimchi - but not for “leftovers” - but the note also said she would receive a delayed payment in mid- or late February that would enable her to pay her share of the electricity bill.

I agree with Kim. Choi should not be blamed for failing to take care of herself. Neither is the nation’s social welfare system to blame.

But that doesn’t mean her death is unrelated to society’s ills.

The thing in the note that caught my eye was the part about the “delayed payment.” According to people in the local film industry, most screenwriters receive only one-tenth of their fee as an advance. And then they have to wait.

They don’t receive the remainder of their fee until the production company attracts investors - even if they have finished their work. If the company fails to attract investors, the writer never gets paid. More often than not, the writer is never paid.

Kim would likely agree. He once compared screenwriters to slaves.

Of course, the absence of payment is not a death sentence for an artist. But if artists were paid on time, they wouldn’t have to go through the burden of applying for welfare support and could concentrate on their art, rather than doing part-time jobs.

I know that the delayed payment is not what killed Choi, but I’m not sure that it didn’t dampen her spirit and health either. As for Chatterton, he killed himself in despair. But I have to wonder whether the young poet would have been so dispirited if the magazines had paid him, too.

These days, there are a lot of talented screenwriters leaving film, which indicates to me that resources are not being allocated properly. In broad terms, it is a market failure, and in this case I think the government should intervene so that artists can be paid for their work. Of course, that doesn’t mean that all artists should be paid equally; that could lead to a glut of untalented hacks. But in culture as in the economy, there should always be a balance between government intervention and laissez-faire policies.

By Moon So-young []

Related Korean Article[중앙선데이]

시대를 초월한 글쟁이의 신세

예술가에게 창의력의 대가를 ‘구걸’케 하지 말라

[문소영 기자의 명화로 보는 경제사 한 장면 : 마지막회- 어느 가난한 글쟁이의 죽음]

한 젊은이가 침대에 누워 있다. 그런데 모습이 좀 이상하다. 한 손은 갈가리 찢은 문서 조각들을 움켜쥔 채 축 늘어뜨려졌고 손 근처엔 조그만 빈 병이 바닥을 구르고 있다. 얼굴과 손은 비정상적으로 창백하다. 창가의 화분은 작은 꽃을 피웠건만 그는 더 이상 그 향기를 맡을 수 없다. 옥탑방에서 화분과 함께 유일하게 그를 위로했을 아침 햇빛은 이제 그의 죽은 몸을 비출 뿐이다.

이 젊은이의 이름은 토머스 채터턴, 18세기 후반에 실존했던 시인이다. 불과 10대의 나이에 천재성을 발휘했다. 가상의 중세 수도사 이름으로 중세풍의 시를 쓰기도 하고, 낭만적인 시부터 정치 칼럼까지 다양한 글을 여기저기 기고했다. 그런데 잡지 편집인들은 그의 글을 칭찬하면서도 원고료는 아주 적게 주거나 핑계를 대며 계속 미루곤 했다. 그래서 채터턴은 지속적으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그 와중에 몇몇 문인의 혹평까지 받게 되자 그는 절망에 빠졌다. 1770년 8월, 그는 며칠간 끼니를 거른 상태에서 비소를 갖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남은 원고를 모두 찢은 뒤 목숨을 끊었다. 불과 만 17세였다.

그 후 19세기 초에 이르러 셸리나 워즈워스 같은 낭만주의 시인들이 그의 작품을 재평가하고 죽음을 애도했다. 19세기 중반에는 젊은 화가 헨리 월리스(1830~1916)가 이 그림 ‘채터턴의 죽음’을 내놓았다. 라파엘전파(Pre-Raphaelite)의 그림답게 배경 세부 묘사가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 분위기가 흐르는 이 작품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림 속 채터턴의 모습에서 수많은 예술가가 자신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100년도 넘는 세월이 흐른 현대 한국에서 채터턴의 죽음과 비슷한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보게 됐다. 채터턴처럼 자살이 아니기에 더욱더 가슴 아픈 죽음이다. 그런데 최초 보도에서 최고은 작가가 죽기 전 남긴 말이라는 “남는 밥과 김치 좀 주오”가 너무나 충격을 일으킨 나머지 본질에서 벗어난 논란이 자주 일어났다.

어떤 이들은 이게 다 한국 사회의 빈약한 사회보장제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또 어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할 수도 있고 무료 급식소도 널렸는데 무슨 말이냐고 반박하며 최 작가가 왜 이것을 이용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했다. 어떤 이들은 최 작가가 파트타임이라도 뛸 수 있었을 텐데 예술가로서 자존심만 내세우다 죽은 게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이 논란 와중에 최 작가는 실생활에 상당히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게 돼 버렸다.

이것이 최 작가를 지도한 적이 있는 유명 소설가 김영하를 몹시 속상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작가는 며칠 전 최 작가가 굶어 죽은 게 아니라 병마로 세상을 떠났다는 글을 썼다. 그는 최 작가가 “의연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꾸려 갔다”며 다만 죽음 직전에는 지병이 악화돼 모든 기력을 잃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최 작가의 비참했던 상태를 강조하는 게 사회 비판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과장하는 건 고인의 인간적 존엄을 해친다고 생각한 듯하다. 실제로 최 작가는 최초 보도처럼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 남는 밥이랑 김치 좀 주세요”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한 인터넷 매체가 입수한 그녀의 친필 쪽지에 따르면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있을까요. 번번이 죄송합니다.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후 생략)”라고 했다. 혹자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후자의 말에는 최 작가의 자존감이 좀 더 살아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런 김 작가의 글에 대체로 공감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나리오 작가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언급이 이번 글에서 빠져 있는 것이다. 김 작가가 앞서 쓴 ‘어느 영민했던 제자의 죽음’에서 영화판을 떠받치는 시나리오 작가들의 처지를 ‘갤리선의 노잡이들’에 비유한 것처럼 이번 글에서도 그 점을 지적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확실히 최 작가의 죽음을 일반적인 기초 사회복지 문제로 보려는 것은 심한 비약이다. 그렇다고 최 작가의 죽음을 지병에 시달린 예술가의 개인적인 죽음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그녀의 죽음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문제와 관련 있다.

내가 최 작가의 쪽지에서 주목하는 말은 “쌀과 김치 좀”이 아니라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때 못 받았다는 것이다. 영화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 제작사로부터 계약금의 10분의 1 정도만 선금으로 받는다. 그리고 기껏 열심히 시나리오를 써서 완성하면 제작사가 투자자를 못 구해 영화가 엎어지고 잔금을 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투자가 이뤄져 잔금을 받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물론 시나리오 작가가 그 돈 없다고 자동으로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돈을 제대로 제때 받으면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하는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되고 아르바이트할 시간을 아껴 창작에 더욱 매진할 수 있지 않은가? 시나리오 작가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에 최 작가가 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처우가 그녀의 기력과 생의 의지, 건강을 악화시키지 않았다고 장담하는가? 200여 년 전 채터턴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그가 잡지 원고료를 제대로 받았다면 그렇게 쉽게 절망했을까?

열악한 현실에 처한 많은 작가가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결국 글 쓰는 일을 포기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늘 부러워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애니메이션, 미국 TV 드라마의 정교한 플롯과 기발한 상상이 나올 수 있을까?

2007년 11월 미국 방송ㆍ영화작가조합이 DVD와 VOD 등의 수입에서 작가 지분을 인상해 줄 것을 요구하며 방송사와 할리우드 제작사를 상대로 대규모 파업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미드가 중단될까 봐 우리나라 미드팬까지 전전긍긍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그들을 지지하는 영화배우들의 보이콧으로 2008년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까지 취소됐다. 결국 2월에 작가조합이 바라던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이 사건이 미국 문화산업의 힘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처우는 한 정신노동자의 가치와 존엄성 문제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 사회의 문화 발전과 연관된다.
재능 있는 시나리오 작가들이 열악한 현실로 영화판을 떠나는 것은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상황, 넓은 의미의 시장 실패인 셈이다. 하지만 제작사는 정말 돈이 없는 경우도 많고, 투자사는 까다롭게 투자 여부를 따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나리오 작가가 노동에 대한 대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부가 개입할 일이다.

물론 지나친 정부 지원도 경계해야 한다. 그 폐해의 극단적인 예로 우베 볼이라는 독일 감독의 경우가 있다. 주로 컴퓨터게임을 영화화하는데 하도 졸작이어서 게임팬 사이에 악명이 자자하다. 그의 영화들은 대부분 망했다. 그런데도 그가 한동안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정부의 강력한 영화 지원 세금공제제도 덕분이라고 한다. 정부 개입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방해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한 지원이 지나치면 경쟁력 없는 작가들까지 업계에 머무르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결국 문화예술계에서도 경제적 자유방임과 정부 개입의 중용이 필요하다. 중용의 구체적인 선을 정하는 게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것이 내가 명화로 보는 경제사를 연재하면서 새삼 느낀 점이다. 그 점을 강조하며 이 시리즈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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