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ing to reinstate freedom fi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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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hting to reinstate freedom fi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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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ae-yeong

After the cabinet decided on April 5 to withdraw decorations from 19 independence activists during the Japanese colonization, a son of one of the activists filed a lawsuit Friday against the Minister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demanding that his father’s decoration be reinstated.

According to the Seoul Administrative Court on Monday, Kim Dae-yeong, 74, former vice minister of construction and the fourth son of Kim Hong-ryang, demanded the ministry overturn the decision revoking the award from his father.

Historians harshly criticized the cabinet’s decision last month to withdraw awards from the freedom fighters, including prominent journalist Jang Ji-yeon, who is popular for his poem “I cry bitterly today.”

Based on studies conducted by several civic groups,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made a decision, which proved to be quite controversial, that those activists partly collaborated with the Japanese during that country’s occupation of Korea from 1910 to 1945.

In his petition, Kim said if the ministry wants to withdraw his father’s decoration, they should prove three points - his contribution to the independence of Korea was false, he was convicted on a charge of threatening national security and he had received a sentence of more than three years in prison on a charge of violating a criminal law, customs law or tax evasion law.

Kim was adamant, though, that his father didn’t do any of these things.

“The two newspapers submitted to the national assembly as evidence, Maeil Sinbo and Gyeongseong Ilbo, are all issu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and don’t have any credibility,” Kim said.

In an interview with the JoongAng Ilbo on Saturday in his office in Sinsa-dong, southern Seoul, Kim showed a notice from the government, which reads “Please move your father’s tomb from the National Cemetery right away.”

Angered by the notice, Kim said, “The notice really hurt me .?.?. If I win the case, I will move the tomb of my father outside of the National Cemetery because I don’t want him to lie in this kind of country’s state-run cemetery.”

“My father was in a close relationship with Baekbeom,” Kim said.

Baekbeom is the pen name of the famous freedom fighter Kim Koo, who was the last head of Korea’s provisional government in Shanghai, China.

Historians say Kim’s father and Baekbeom were arrested in 1911 with about 160 independence fighters on a charge of making a plot to murder the general of the Japanese government in Korea.

Bringing out Baekbeom’s famous journal called “Baekbeom Ilji,” Kim pointed out 22 sentences showing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his father and Baekbeom, such as “Kim Hong-ryang is the person with superior ethics and abilities than I .?.?. if I am questioned by Japanese government about him, I will say in favor of him so that he can be released.”


By Koo Hui-lyung [heejin@joongang.co.kr]


한글 관련 기사 [중앙일보]

“아버지 서훈 취소를 취소해 달라” 첫 행정소송

독립운동가 김홍량 아들 김대영 전 차관 “선친이 돈 댄 임시정부도 친일 정부인가”

친일 행적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위암(韋庵) 장지연 등 독립유공자 19명의 서훈을 취소한 정부의 결정에 대해 “부당한 처분이니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서울행정법원은 16일 포우(抱宇) 김홍량의 넷째 아들인 김대영(74) 전 건설부 차관이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선친에 대한 서훈 취소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위암의 후손을 비롯해 나머지 유족들의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5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내린 서훈 취소 결정은 사회적 파장을 크게 일으켰다.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을사늑약을 통탄하는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오늘 목놓아 통곡하노라)’으로 유명한 위암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소장에서 “서훈을 취소하려면 ▶서훈 공적이 거짓이거나 ▶국가 안전에 관한 범죄로 형을 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형법·관세법·조세범처벌법으로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경우여야 하는데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근거 자료인 ‘매일신보’ ‘경성일보’ 기사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고 말했다.

소송을 낸 김씨는 통계학 박사 출신으로 현재의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개발한 인물이다. 경제기획원 국장, 건설부 차관, 대한주택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김씨는 서울 역삼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부친의 묘소를 조속히 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공문을 보여줬다. 그는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도 현충원에 함께 모셨는데…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그는 격앙된 표정으로 “재판에서 이긴 다음 두 분을 국립묘지 밖으로 모실 생각”이라며 “이런 나라에 신세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보훈처에서 지난해 가을 『친일인명사전』 내용을 보내고 소명을 하라더라”며 “광복 때 여덟 살이었던 내가 70~80년 전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 다른 유공자들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기관에서 직접 조사하고 엄정한 심사를 거쳐서 취소를 결정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선친의 행적에 대한 논문을 쓴 학자에게 소명을 부탁했더니 당시 총독부에서는 명망 있는 한국인들이 일본 군자금을 댔다고 허위로 기사를 내고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하더라”며 “총독부 기관지를 근거로 아버님이 친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얼마나 공신력 있는 곳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버님은 백범과 의형제였다”며 백범의 차남인 김신(89) 전 공군참모총장이 “김홍량 선생 집안에서 할머니, 형과 함께 9년 동안 기거하는 등 큰 도움을 받았다”고 쓴 글을 보여줬다. 또 『백범일지』에서 선친을 ‘기러기 친구’라고 부르며 언급한 부분도 짚었다. ‘김홍량은 여러 가지로 나보다 능력이 낫고 품격도 나은 만큼 신문 받을 때 그에게 이롭도록 말하여 그가 방면되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등 모두 스물두 곳이다. 김씨는 “상해 임시정부로 간 우리 집안 돈이 얼마인데…. 그럼 임정도 친일 정부냐”며 따졌다.

김씨는 “아버님과 함께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선친의 숙부 두 분(김용제·김용진)과 사촌동생(김선량)의 후손들이 ‘우리 집안 독립운동의 뿌리가 서훈이 취소됐으니 우리도 서훈을 반납해야겠다’고 격앙되어 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마지막에 변절한 경우도 있다”는 지적에 그는 “아버님은 끝까지 창씨개명을 안 하신 분”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일본인 담임이 ‘긴타이에이(김대영의 일본식 발음), 네 이름은 나쁘다. 너희 집안은 정말 나쁜 집안이다’고 괴롭혔었다”며 “친일 결정을 내린 이들의 조상은 그 잔혹한 시기에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버틴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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