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chases a dream and 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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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 chases a dream and 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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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 Ha Jung-woo has been invited to the Cannes Film Festival four times including this year. Outside of acting, the 33-year-old loves to draw and write. Most recently, Ha published a book last month that features his paintings and essays. [JoongAng Ilbo]

Actor Ha Jung-woo could have gone the easy route. His father, Kim Yong-geon, is a well-known film and television actor who could have ushered him into the business. But Ha chose to make it on his own. He changed his name, studied theater in school and eventually entered film. Since then, he has become known for playing strong, unconventional characters, including a serial killer in the hit film “The Chaser” (2008), a male prostitute in “The Moonlight of Seoul” (2008) and a ski jumper who is an adoptee in the 2009 film “Take Off.”

He is also the only actor to be invited to the Cannes Film Festival four times. Only veteran Song Kang-ho has had more appearances at the prestigious French festival.

Aside from his acting, Ha is also an accomplished visual artist who has had four solo exhibitions in Seoul.

The JoongAng Ilbo recently sat down with Ha to talk with him about going to Cannes and his life as an actor and painter.


Q. This is the fourth time you’ve been invited to the Cannes Film Festival. What brought you there?

A. My first visit to Cannes was back in 2006. The 2005 film “The Unforgiven,” which deals with the absurdity of the Korean military, was part of Un Certain Regard. The film was directed by Yoon Jong-bin. He and I majored in theater together at ChungAng University. After that, a string of films that I was in, including “Breath” from 2007 and the 2008 film “The Chaser,” were invited to Cannes one after another. This year, I went to Cannes to promote “The Yellow Sea” (2010).

How do you feel about being invited to the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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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2007) is one of the many artworks Ha has exhibited in recent years.

I feel honored because it’s once-in-a-lifetime experience for some but I’ve been there four times.

What was your first visit to Cannes like?

I was a lesser known actor back then. I was staying at this cheap hotel, about 50 minutes from Nice by train. One time I took a taxi from the film festival venue to my hotel (after the train had stopped running) and it cost me about 100,000 won ($90). So instead of going back to the hotel, I stayed up all night watching films. I was also carrying my tuxedo around and I would change into it when I arrived at the venue. But I wasn’t discouraged because Yoon and I got to talk about our dreams in front of the Lumiere Theater.

Why do you think your films have been so popular at Cannes?

I know I’m far from the traditionally handsome type. But what I can do is just keep practicing. Back in college, I majored in theater but I didn’t want to be overshadowed by my father. It was my belief that I had to prove myself on stage with my own ability.

Do you think your father helped you become an actor?

Growing up, I thought I was going to become an actor because I always saw my father on TV. But I didn’t want people to see me as the son of Kim Yong-geon and that’s why I use a stage name. But my father did show me how to get into the business.

You’ve had four solo exhibitions as a visual artist. What made you start drawing?

Sometimes I need to vent even if I’ve poured myself into my acting. That’s what made me start drawing. That was around 2003.

Right after graduating from college, I went on a lot of auditions. I was jobless, so I had to do something. I signed up for English classes and learned how to play the piano. But I was still insecure about my future. That’s when I took an interest in drawing. It was a natural transition, I think. I never studied drawing but I feel alive whenever I draw.

Painter Kim Heung-soo has complimented you on your paintings. How did you learn to paint?

The only artist I knew was Picasso but after I started drawing I wanted to learn more about art. I asked for tips from friends with fine arts backgrounds. For example, I wanted to start using oil but it stiffened my brushes. My friends told me that I had to use a counteragent. I learned a lot of things like that.

I heard you fell on hard times in your early 20s. What happened?

My mother’s business failed. We had to move to a smaller house and I lost my room. My father was trying hard to support the family by doing multiple drama series at the same time and I joined the military earlier than other people my age. For Picasso, there were two periods, one was blue and the other one was rose. That was my blue period, but it made me realize that I had a passion for acting.

How’s your relationship with your girlfriend Goo Eun-ae, who is a professional model?

It’s good. (Laughs.)

Do you have any role models?

Robert De Niro. He could have chosen to have a comfortable life but he didn’t. And he still has a passion for acting at the age of 68.


By Kim Joon-sool [so@joongang.co.kr]


한글 관련 기사 [중앙일보]

칸 영화제 네 번째 초대받은 ‘국가대표’ 배우 하정우

해외 나갈 땐 직업란에 화가라고 써요

배우 하정우(33). 영화 ‘국가대표’로 유명하다. 스키점프 선수로 찡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런 그가 실제로 국가대표급 기록을 세우게 됐다. 올해로 네 번째 프랑스 칸영화제에 초대받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기록을 가진 배우는 송강호 정도다. 이제 데뷔 9년차. 비결은 뭘까. 알고 보니 지독한 ‘연습 벌레’가 밑천이었다. 역시 공짜는 없나 보다. “20대에 지독한 ‘바닥 생활’을 겪었다.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연습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됐다.” 그가 j독자들에게 맘껏 털어놨다. 배우로 산다는 것, 화가로서의 열정, 그리고 남자의 로망까지.

테러리스트 취급 받던 외모

●얼굴이 새까맣게 탔습니다.

“부산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촬영하느라고요. 내일(16일) 칸에 가는 비행기를 탑니다. 부산에서 막 올라왔어요. j와 인터뷰하려고요, 하하.”

●칸에 초대받은 게 네 번째죠.

“군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다룬 ‘용서받지 못한 자’가 2006년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뽑혔어요. 중앙대 연극영화과 1년 후배인 윤종빈 감독의 작품이었죠. 그 뒤로 제가 출연한 영화 ‘숨’(2007·김기덕 감독)과 ‘추격자’(2008·나홍진 감독)가 연이어 초청됐고요. 올해는 ‘황해(나홍진 감독)’ 덕에 참석합니다.”

●개인적으로 뿌듯하겠습니다.

“살면서 한 번 가기도 힘든데 영광이죠. ‘황해’는 1년 넘게 찍은 작품이에요. 이번에 가서 그때 쌓인 피로도 좀 풀고 와야죠. 밥 한 끼 먹어도 뿌듯하게 먹을 수 있는….”

●전에는 칸에서 고생했다는 소리인가요.

“2006년 처음 갔을 땐 제가 거의 무명이었죠. 혼자 가방에 턱시도 넣고 다니며 행사장 부스에서 옷 갈아 입었어요. 숙소도 칸에서 기차로 50분 걸리는 니스에 잡았고요. 택시 한 번 타면 10만원이라 일정 마치고 숙소로 가는 대신 칸에서 영화도 보고 날밤을 새웠어요.”

●그래도 호기롭던 시절이군요.

“당시 칸의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윤종빈 감독이 크게 외쳤죠. ‘정우 형은 로버트 드니로고, 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야.’ 함께 꿈을 얘기하고 키워갔던 그런 밤이었어요.”

●해외 나가면 입국신고서에 ‘배우’ 대신 ‘화가’로 적는다면서요. 이번에도 그럴 겁니까.

“2006년 미국에 갔을 때였어요. 수염 기르고, 머리에 비니 쓰고. 신고서 직업란에 ‘Actor(배우)’라고 적었죠. 그런데 차림새가 그랬는지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았어요. 취조실 같은 대기실에서 3시간 기다렸던 것 같아요. 너무 공포스러워서 마중 나온 친구에게 전화하려는데 전화도 사용하지 못했죠.”

●정말 위기였군요. 어떻게 모면했나요.

“안 되는 영어로 막 설명했죠. 결국 나중엔 웃으며 가라고 하더라고요. 서럽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해외 갈 땐 ‘화가’라고 쓰게 됐죠. 이번 칸에 갈 땐 영화제 참석이니 ‘배우’라고 적어야죠, 하하.”

●‘칸의 남자’로 등극한 내공은 어디서 나옵니까.

“제가 승부욕이 많아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꽃미남은 아니잖아요. 누가 봐도 ‘멋지다’ 이런 스타일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건 연습밖에 없었죠. 연극을 전공했는데, 이건 오로지 연습량 차이로 승부가 나요. 중앙대 들어가니 ‘배우 김용건 아들’이란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아무리 잘해도 본전인 거죠. 그걸 깨려면 지독한 연습, 무대에서 보여주는 수밖엔 없다고 여겼고요.”

●그래도 부친의 후광(後光) 효과가 없진 않았을 텐데요.

“어릴 때는 ‘저도 가만 있으면 배우가 되겠거니’, 이렇게 인식했던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늘 아버지를 TV에서 봤기 때문에 그랬던 거죠. 그러나 배우 활동을 하면서 아버지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가명(본명 김성훈)을 썼죠. 다만 후광이란 걸 다른 각도로 볼 수는 있어요.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보여준 연기 인생이 제게 배우라는 길을 열어줬잖아요. 정신적인 후광이 돼 주신 거죠.”

●지금은 연기력도 인정받고, 그래서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것 아닙니까.

“배우로서 숙성을 얘기하기엔 아직 멀었어요, 정말 멀었어요. 저는 지금도 진행형이죠.”

●하정우에게 연기란 무엇입니까.

“연기는 ‘감정 몰입’이라기보다 ‘감정 배분’이라는 소신이 있어요.”

●어려운 말이군요.

“저는 배우마다 메소드(method·캐릭터 표현법)가 다르다고 봐요. 배우도 매일매일 감정이 달라요. 시나리오가 요구하는 감정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죠. 눈물 연기하는데, 눈물 안 나오는 날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방법은 뭘까요. 최대한 나만의 표현방식을 연마하고 찾아야 하죠. 그렇게 계산된 연기, 준비된 연기를 사람들과 나누는 겁니다.”

●언제 터득한 철학입니까.

“2001년 연극 ‘카르멘’을 할 때였죠. 스스로 감정만 잡히면 된다고 봤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게 안 되더라고요. 공연을 망치고 저도 충격에 빠졌죠. 그 뒤로 ‘어, 나 이거 감정 왔어’,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게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거죠. 그걸 위해 필요한 건 앙상블이에요. 한마디로 소통이죠. 연출가·배우·스태프끼리요. 그러려면 귀를 열고 많이 들어야 합니다.”


김흥수 화백이 칭찬한 그림

●연기가 안 될 때도 있을 텐데요.

“배우라는 게 현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필(feel)과 에너지를 배출해도 잔뇨감(殘尿感)이 있어요. 집에 오면 뭔가 불만도 있고, 찝찝한 것도 있죠. 그럴 때 그림을 그려요.”

●언제부터 붓을 쥐었나요.

“2003년이었어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죠. 사실 관심이라기보다 살기 위해서 그랬던 건지…. 대학 나와서 사회에 진출해 오디션 보러 다니고 그럴 때였습니다. 백수니 혼자 어떻게 살지 철저히 계획을 짰죠. 헬스클럽도 세 군데 끊어서 다니고, 피아노에 영어도 배우고. 그런데 어떤 것도 당시의 불안함과 막연함을 상쇄시켜 주지 못했어요. 그럴 때 우연히 그림에 손이 간 거죠.”

●그림이 에너지가 됩니까.

“쉽게 말해 시간이 너무 잘 가요. 그렇다고 미술을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닌데 말이죠.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할 때마다 뭔가 나를 움직여주고 피를 돌게 하는 것 같았어요.”

●최근 그림과 연기를 주제로 한 에세이 책도 냈죠.

“처음엔 엄두가 안 났어요. 연기와 인생을 말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기에 그림으로 풀어갔죠. 『하정우, 느낌 있다』(문학동네)는 책은 그렇게 나왔습니다.”

●미술계 거장 김흥수 화백에게서 ‘재능 있다’는 칭찬도 들었다면서요.

“민망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화가란 말은 아직 저에게 붙이기 어려운 단어 같아요.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전시회도 네 번이나 열었습니다.

“책임감 같은 게 많이 들어요. 좀 더 진지해지기도 하고요.”

●정말 그림을 배운 적이 없나요.

“처음 아는 작가는 피카소 정도였어요. 그림을 그리다 보니 궁금한 게 하나둘 생기더라고요. 이런 물감은 없을까, 저런 표현법은 없을까 하고요. 미대 다닌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답을 얻었죠. 유화를 그리면 붓이 굳으니 중화제를 써야 된다, 캔버스엔 제소를 발라야 된다는 식으로요. 지식은 없었지만 부딪치면서, 물어보면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촬영할 때도 그림을 그린다면서요.

“지방에서 영화 찍어도 화구를 챙겨 가요. 호텔 방에서 작업을 하죠. 이번에 책을 쓴 것도 제가 재능을 가졌고, 어떤 그림들을 그렸고, 이런 치기 어린 자랑을 하려던 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30대건 50대건 상관없죠. 피아노를 배워 보고, 그림도 그려 보고…. 그런 뭔가를 일깨우고 건드려 준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도전이잖아요.”


혹한기 버텼다, 인생을 배웠다

●원래 어릴 때부터 카리스마가 있었나요.

“서울고 시절 선도부장과 신문반 편집국장도 했어요. 당시 인기 학과 중 하나가 신문방송 쪽이었죠. 신문반은 모범생 집합소였어요. 저는 100% 모범생은 아니었고, 모범생인 척하고 학교를 다녔던, 하하. 공부는 열심히 했어요. 누구한테 책잡히긴 싫었거든요. 신문반은 농구대회 나가려고 그만 뒀죠.”

●그러고 보니 운동광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몸 쓰고, 땀 흘리는 걸 좋아해요. 농구와 야구를 가장 좋아하죠. 지금 촬영장에서도 러닝머신을 대여해 늘 뛸 정도예요. 규칙적으로 몸과 마음을 잡아줄 수 있는 게 바로 운동입니다.”

●그럼 술은 잘 안 하나요.

“그때그때 달라요. 친구들 세 명이 공동 사장인 ‘신사동 577번지’라는 술집이 있어요. 아지트죠. 친구의 반 이상이 직장인입니다. 그 술집에 가면 늘 친구들이 모여 있어요. 맥주 한잔 하고 밥 먹고. 하루 일과 얘기하고. 인간 하정우가 사는 모습이죠.”

●연인인 모델 구은애씨와는 어떻습니까.

“지금 잘 만나고 있습니다, 하하.”

●실제로 보니 남성미가 넘치는데 배역도 그런 게 많았죠.

“사실은 제가 코믹한 역할, 밝은 캐릭터를 재미있어 해요. 영화 ‘멋진 하루’와 ‘비스티 보이즈’처럼 디테일이 강한 연기도 좋아하고요. 연극할 때도 희극을 많이 했죠. 정극이나 그리스 비극보다는요. 앞으로 다른 영화에서 충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인 최치림 중앙대 교수가 정우씨에게 ‘무표정의 힘’을 강조했다죠. 분노나 기쁨의 감정이 다가 아니라고. 실제 영화에서도 그런 표정이 많은 것 같던데요.

“교수님은 연륜을 말씀하려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의 나이테, 그런 게 쌓이듯 제가 인위적으로 뿜지 않아도 보여지는 기운들을 얘기하신 거죠.”

●20대 초·중반에 고생을 많이 했죠.

“어머니 사업 실패로요. 아버지는 출연 프로그램을 네댓 개씩 늘려 가며 일으켜 세우려고 하셨죠. 저도 그래서 군대를 일찍 갔어요. 배부르게 살았던 유년·학창 시절은 온데간데없었죠. 집도 줄이는 바람에 제 방도 없어질 정도였으니. 연기 강사 하면서 돈 벌고 그랬어요. 피카소에게 청색시대(우울한 화풍)와 장밋빛시대(아름다운 화풍)가 있었잖아요. 제겐 그때가 청색시대였던 거죠. 하지만 그 때문에 작품에 대한 열망, 절박감 같은 게 솟구쳤어요. 이 바닥에서 내가 할 건 연기밖에 없구나 하는.”

●롤모델로 삼는 배우는 누굽니까.

“로버트 드니로죠. 1943년생인데 아버지보다 세 살이 많아요. 그런데도 영화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죠. 엄청난 부를 누리면서 편하게 살 수도 있는데 말이죠.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마찬가지예요. 나이 먹고 배우에 감독까지 해내니. 그분 역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소재에 관심을 가져요. 하늘이 준 재능을 끝까지 잘 쓰는 것이죠. 저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j 칵테일 >> 고현정이 일깨워 준 ‘화가 본능’

드라마 ‘히트’(2007)를 찍을 때였다. 배우 고현정이 경찰로, 하정우는 검사로 출연했다. 휴식시간. 엽서 하나가 하정우의 눈에 들어왔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이었다. 고현정은 화가와 화풍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때부터 틈나는 대로 둘의 미술 대화, 그림 수업이 시작됐다.

●고현정씨가 미술에 관심이 많나 보죠.

“누나가 저와 화풍이 비슷한 화가를 많이 소개해 줬어요. 엘리자베스 페이턴이며 바스키아 등이죠. 현정 누나는 작품 수집도 하고, 신인 작가들 후원도 하고 그래요. 생애 처음으로 받은 화집도 현정 누나가 선물한 호퍼 화집이었죠.”

하정우는 화가들 얘기를 들으며 공부를 하고 자신의 그림 세계를 확장시켜 갔다. “바스키아를 들여다보며 아, 저렇게, 마치 낙서처럼 과감하게 그릴 수도 있구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진심과 진정성이 중요하구나, 그런 걸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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