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obscurity, a star is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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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obscurity, a star is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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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 Ji-yeon

Within a month, Cha Ji-yeon, 29, has gone from obscurity to renown in the music industry. That may seem like an instant in a world where stars are born and flame out quickly, but Cha’s whirlwind success has actually been years in the making.

It all started in May when she appeared as a backup singer with Yim Jae-bum on “Survival: I Am a Singer,” a popular reality TV show. Though the segment was short, Cha managed to captivate the audience.

She also managed to impress a few record company executives, who offered her a recording contract. She released her first single, “Where Are You?”, at the end of the month.

Then, earlier this month, she was named best actress at the Musical Awards on June 7 for her performance in the musical “Seopyeonje.”

Taken together, she said, the experience was magical.

“Last month felt like a dream. Every morning I would wake up afraid of feeling too blessed,” she said.

To some, Cha may just seem like a lucky woman. But she has endured all kinds of hardship in her relatively young life. When she was still a teenager, her family’s business failed and she moved to Seoul with her younger sister to earn money for her family. For the next six years, she worked at bars and food stands while taking care of her sister and continuing to pursue her dream of becoming a singer. During that time, she sent demo tapes to record companies, but never had any success until a friend suggested she audition for a musical.

It wasn’t long before she was cast as an understudy in a Japanese production of “The Lion King.” She got her turn on stage when the actor playing Rafiki, a leading role, was unable to continue and she was selected to play the part.

Despite having a tough journey on her way to stardom, Cha is familiar with fame. Her grandfather, Park Oh-yong, is a renowned pansori (theatrical form of narrative singing) singer and an intangible cultural asset. As a child, the people in Cha’s neighborhood referred to her a “gugak (Korean traditional music) prodigy.” So it was fitting that she won her best actress award for Seopyeonje, which tells the story of a pansori family.

The JoongAng Ilbo recently sat down with Cha to talk with her about her recent success and future plans.


Q. How do you feel about winning the best actress award?

A. As someone once said, if you follow your passion there will come a day when you finally get what you want. The award has surely given me confidence. I’m pleased that the way I’ve lived my life is worthy of an award.

What does Seopyeonje mean to you?

It is a piece that marked a turning point in my life as an actress. Prior to that, I was used to playing tough characters who were unlucky yet passionate. But in Seopyeonje, I was able to be rather relaxed and natural.

What do musicals mean to you?

When I received the award, I was not exaggerating when I said that I have never thought of myself as someone special. I was uneasy about my future in my 20s, but musical theater was an escape. As an actress I was trying not to let my life collapse. It feels unreal that I get to sing and act on stage. I guess I am well suited for the theater.

How did you end up working with Yim Jae-bum on I Am a Singer?

When I was in The Lion King, songwriter Ha Gwang-hun saw me perform. Later, he came backstage and told me that he felt like something interesting would eventually happen with my career and he was eager to see what I would do. His generosity made me trust him, just as a daughter has faith in her father.

Two days before the I Am a Singer episode was to be taped, he asked me to sing backup vocals for Yim Jae-bum. I was a little afraid, but Ha encouraged me by saying, “You can do it.” I had one day of rehearsal before the taping, but I think I did well. And I was shocked by the positive reaction from the audience.

Now that you have a recording contract, how do you feel about having to face the record producers who once rejected you?

I act as if nothing happened, but facing them is quite uncomfortable. It was heartbreaking to try for six years to produce an album only to fail. But I think those years helped me become the person I am today. If it had been easy, then I wouldn’t have the passionate and obsessive attitude toward my job that I do now.

What are you planning to do next?

I’m going to be a guest on Yim’s upcoming Korea tour and plan to release more albums. I’m also thinking about auditioning for a movie or television drama. I want to be adventurous and try new things. This will help me find my inner self.


By Choi Min-woo [estyle@joongang.co.kr]


한글 관련 기사 [중앙일보]

[star&] 꿈일까, 아침마다 두렵다는 그 … 차지연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했졌다는 말, 이럴 때 제격이다.

차지연(29). 한 달 전까지 이 이름을 아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됐을까. 뮤지컬계에선 실력 있고 잠재력 있는 배우 1순위로 꼽혔지만, 일반인에겐 낯설기 그지 없었다. 벼락스타가 된 건 지난달 ‘나는 가수다’에 임재범의 코러스로 참여하면서부터. 보일 듯 말 듯, 들릴 듯 말 듯 짧은 순간의 출연과 노래였지만 존재감은 강렬했다. 독특하고 신비하고 한편으론 스산한 분위기까지 연출한 그에게 대중의 호기심은 뜨거웠다. 일주일가량 검색어 순위 1위를 내달렸다.

곧바로 차지연은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고, 음반을 출시했고, 그리고 7일 제 5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당당히 ‘뮤지컬 퀸’에 등극했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지난 한 달은 정말 꿈만 같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건지, 아침마다 두려울 정도”라는 말은 인사치레가 아닌 듯 보였다.

억세게 운 좋은 여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고교 시절 여동생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온 소녀가장이었다는 걸, 6년간 음반을 내지 못한 채 호프집·분식집 등 20여 개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는 걸 그 누가 알랴. 오랜 좌절과 역경을 딛고 차지연은 임재범의 ‘그녀’를 넘어 만인의 ‘그녀’를 향해 지금 무대 정중앙에 섰다.

2년전 이맘때도 차지연과 인터뷰를 했다. 뮤지컬 ‘드림걸즈’를 막 끝냈을 때였다. 에피 역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그는 15㎏을 찌웠고, 역할에 빠진 탓인지 다소 차분한 모습이었다.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현재의 차지연을 다시 만났을 때는 2년 전과 사뭇 달랐다.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툭하면 노래를 흥얼댔고, ‘어머, 정말요!“ 같은 다소 과장된 반응도 많았다. “원래 이렇게 밝으셨나요?”라고 물으니 “인생 뭐 별거 있나요. 재미있게 살려고요”라며 또 까르르 웃었다.

-제5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지 2주 가량 지났다.

“죽기 전에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간절히 원하면, 간절히 바라면 기적처럼 다가온다고. 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내가 살아온 지난날이 그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

-수상을 예상했나

“인사치레가 아니다. 전혀 몰랐다. 지난해 공연했던 ‘서편제’가 앞으로 언제 공연될 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다시 송화가 돼서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게, 그리고 ‘심청가’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신이 났다. 사실 시상식전엔 기대도 있었다. 삼세판이라고 하지 않던가. (차지연은 2009년 ‘드림걸즈’, 2010년 ‘몬테크리스토’, 2011년 ‘서편제’로 3회 연속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런데 식장에 막상 앉으니 옆에 옥주현·최성희, 저 건너편에 정선아·리사·조정은…. 정말 한숨이 나왔다. ‘끝나고 낚지 볶음이나 먹으러 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근데 내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정말 멍해졌다.”

-‘서편제’는 본인에게 어떤 작품인가.

“지금껏 주로 ‘센’ 역할을 많이 했다. 거칠고, 기구하고, 격정적인 인물이었다. 파란만장이라면 송화 역시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연기 자세는 많이 달랐다. 그간 차고 넘쳤다면 송화는 절제했다. 이지나 연출이 ‘몸에 힘을 빼고 무대 위에서 한번 비워보자”라고 말씀하셨다. 내 연기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다.”

-지금껏 8편 정도의 뮤지컬을 해 왔는데, 제작사가 다 달랐다.

“내가 뮤지컬 쪽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그저 역할 보고, 작품 보고 좋다고 생각하면 했다. 많은 배우들이 특정 제작사가와 계속 작업을 한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만큼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뜻 아닐까. 좋게 해석하고 싶다.”

차지연의 뮤지컬 데뷔작은 일본 극단 시키(四季)가 제작한 ‘라이온 킹’이었다. 본래 가수를 꿈꿨지만, 6년째 기회는 없었다. 2006년 봄, 은행에서 안내 역할 아르바이트를 하던 와중이었다. 친구가 “뮤지컬 오디션 지원해봐”라고 권했다. “연기도 못하는데 뮤지컬은 무슨…”라며 뺐더니 “노래만 잘해도 붙여준다더라”라며 부추겼다. 오디션에 붙은 뒤 일본으로 건너가 6개월 이상 연습했다. 앙상블이었다. 개막 한 달을 앞두고 ‘라피키’역을 맡은 배우가 갑자기 한국 공연에 참가할 수 없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차지연에게 덜컥 기회가 왔다. 데뷔부터 주인공을 한 셈이었다.

-가수는 6년을 준비했어도 음반 하나 못 냈는데, 뮤지컬은 시작부터 화려했다.

“수상 소감으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에게 살아갈 희망을 준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했는데, 과장이 아니다. 미래도 없고, 불안한 20대였던 나에게 뮤지컬은 탈출구였다. 먹고 살자는 심정으로 발버둥을 쳤다. 노래하고 연기하고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지금도 꿈만 같다. 뮤지컬과 궁합이 맞는 모양이다.”

-‘나는 가수다’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라이온 킹’ 공연 때 하광훈 작곡가님이 보러 오셨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참 뒤에 우리에게 뭔가 재미나는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때를 기다리자’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푸근하고 조근조근하고 뭐랄까, 아빠 같다고 해야 할까. 믿음이 생겼다. 그러다 ‘나가수’ 녹화 이틀 전에 갑자기 호출을 받았다. 임재범의 코러스를 해달라고 하셨다. ‘한국적인 소리였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퓨전의 느낌이 살면서 어딘가 몽환적이었으면 좋겠는데…’라고 하셨다. 악보도 없었다. ‘그런 소릴 어떻게 내요’라고 투정을 부렸더니 ‘넌 할 수 있어. 한번 해보자’고 용기를 주셨다. 그렇게 하루 연습한 뒤 녹화에 들어갔다. 폭발적인 반응, 어리둥절했다.”

-과거 당신을 못 알아본 음반 제작자를 만나면 어떤가. 솔직히 통쾌하지 않은가.

“(순간 들떠 있던 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지금 뵈도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는 드리지만 솔직히 불편하다. 그렇게 죽어라 연습하며 몇 년을 보냈는데, 결과물이 없었으니 어찌 서운함이 없겠는가.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현재의 차지연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 쉽게 음반을 냈으면, 쉽게 무대에 섰으면 지금 같은 절실함, 애절함, 집요함은 없었을 것 같다.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른 살에, 여자 가수가 첫 음반을 내는 것도 의미 있는 게 아니겠는가.”

-계획이라면.

“임재범 선배의 전국 투어에 게스트로 참여한다. 음반 활동도 활발히 하고, 드라마나 영화 얘기도 오가고 있다. 장르·영역·배역 가리지 않는다. 뭐든지 새로웠으면 좋겠다.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했으면 더 없이 좋겠다.”


차지연

-1982년 대전 출생

-서울예대 연극과 휴학 중

-뮤지컬 출연작 ‘라이온 킹’ ‘마리아마리아’‘씨왓아이워너씨’ ‘드림걸즈’‘선덕여왕’ ‘몬테크리스토’ ‘서편제’

-첫 싱글 음반 ‘그대는 어디에’

시시콜콜 씩씩한 차지연, 솔직한 차지연

“누가 성형 안 했대요? 예뻐지고 싶어 좀 했어요, 안티팬도 관심의 표현이겠죠”

유명세는 논란이 된다. 최근 인터넷엔 ‘차지연 성형 논란’이 자주 떴다. 그는 “성형 누가 안 했다고 했나요. 했어요. 좀 예뻐지고 싶어서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2009년 ‘드림 걸즈’ 끝나고 눈 조금 크게 하고, 코 살짝 올렸다. 덕분에 과거보다 조금 세련돼 보이는 것 같아 만족”한단다. “15㎏나 찐 몸을 갑자기 빼니 사람들이 더 많이 성형을 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때는 돈을 많이 벌지 않던 때라 성형 전-후 모델을 하기도 했다. 논란이 생기는 것도, 안티팬이 생기는 것도 다 관심의 표현 아니겠는가”라고도 했다.

뮤지컬 ‘서편제’에 출연한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오용옹이다. 그 끼를 이어 받아 세 살 때부터 북을 두들기며 ‘국악 신동’으로 불리었다. 장구·징·꽹과리를 배웠고, 거문고·가야금도 탔다. 그는 “판소리를 제대로 배우진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귀동냥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 소리를 익히는 게 크게 낯설지 않았다”고 한다. 차지연은 대전에서 자랐다. 곡절 많은 젊은 시절의 출발은 고3 때였다.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냈다. 집엔 차압 딱지가 붙었고, 가족은 흩어져야 했다. 그는 여섯 살 터울 여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방 한 칸을 얻어 동생을 챙기며 ‘소녀 가장’ 노릇을 했다.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꾸었다. 광고 전단지를 돌리고, 호프집 서빙을 보았으며, 인형 탈을 쓰기도 했다. 2006년 뮤지컬 무대에 데뷔하기 전까지 어림잡아 20개가 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원 없이 부를 수 있게 된 게 가장 기쁘다고 한다. “트로트를 내 스타일에 맞게 편곡해 부르고 싶다”고도 했다.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가 18번이란다. 배우 겸 가수 차지연이 코러스가 아닌 정식 출연자로 ‘나가수’ 무대에 서는 일은, 이젠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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