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ce of a tyrant’s privilege
Published: 05 Jan. 2012, 19:42
When Park Ji-won and the Joseon mission to Imperial China arrived in Beijing, they learned that the Qing emperor was at the summer residence of Chengde. Park quickly gathered information about Chengde and some said it was 160 kilometers (100 miles) away from Beijing, while others claimed that it was 280 kilometers away. Park was curious about the discrepancy. When he arrived in Chengde, a friend told him that the distance is actually 280 kilometers. The emperor usually stayed in Chengde, but the ministers were reluctant to travel from Beijing, so by changing the distance, the emperor was able to get the ministers to come to his summer residence more often.
The two incidents took place in the same period, only 12 years apart, and the two have something in common. It may be a coincidence, but it could also mean it is human nature. The person in power is capable of anything.
It is not much different in Korea today. President Lee Myung-bak implemented a price management system and had government officials keep stable the prices of specific agricultural and livestock products. Of course, it may be cruel to compare the president to the Jacobins, who divided a day into 10 hours and each hour into 100 decimal minutes, and the Qing emperor, who ordered his ministers to travel 280 kilometers. He had devised the plan to mitigate the burden on the average citizen struggling with surging prices and to ensure that officials are accountable for price increases. But he is using the wrong method. The cause of price increases is more than production and distribution. Even if a cabbage producer successfully keeps prices low, the effect will result in damage to radish growers.
The Qing Dynasty leaders may have had the right cause but chose the wrong solution. As John Milton wrote in “Paradise Lost,” when the method is not right, the cause may be considered the “privilege of a tyrant.”
*The author is a culture and sports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Lee Hoon-beom
프랑스 혁명으로 출범한 제1공화정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레고리력(歷)을 새로운 공화력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숭고한 혁명의 뜻을 고루한 삶의 패턴에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혁명의 공포와는 달리 공화력은 지극히 낭만적이다. 4월은 ‘플로레알(꽃의 달)’, 7월은 ‘테르미도르(열의 달)’ 이런 식이다. 이 공화력은 9월에 해당하는 방데미에르(포도의 달)부터 시작한다. 공화정이 수립된 9월을 기념하는 뜻인데 마침 9월22일이 추분인 게 좋은 구실이 됐다. 공화력 제정위원회를 이끌었던 질베르 롬은 외쳤다. “한 해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순간부터 시작돼야 한다. 프랑스 국민의 대표자들이 시민적·정신적 평등을 선포한 순간 낮과 밤의 평등도 하늘에 새겨졌다.” 연암 박지원이 동행한 연행사 일행은 북경에 도착한 뒤 청 황제가 여름 휴양지인 열하(熱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감해했다. 급히 열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누구는 북경에서 400리라 하고 누구는 700리라 했다. 궁금한 걸 그냥 넘어갈 연암이 아니다. 열하에 도착해서 지인에게 물으니 그 대답이 걸작이다. “북경에서 약 700리인데, 황제가 늘 여기서 머무르다 보니 신하들이 오기를 꺼려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각 참(站)의 이수(里數)를 줄여 400리로 만들어서 항상 말을 달려 일을 아뢰게 한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은 시차가 12년에 불과한 동시대의 일이다. 서양과 동양, 시퍼런 공화정과 노회한 제정이라는 간극을 무색케 하는 교집합이 있다. 우연일 터지만 견줄만한 우연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인간사회의 속성이 그렇다는 얘기다. 권력의 무소불위 속성 말이다. 오늘날 우리 땅도 다르지 않다. ‘쇠고기 차관보’ ‘배추 국장’으로 대변되는 '물가실명제'(농축산물 중심으로 품목별 물가를 담당 공무원이 이름을 걸고 관리하라는 MB의 연초 지시)도 다른 게 아니다. 물론 10진법에 맞춰 한 시간도 100분으로 고치려던 자코뱅이나, 280㎞ 험한 길을 한걸음에 달려오라던 청 황제와 대통령을 비교하는 건 잔인하다. 치솟는 물가로 고통 받는 서민들이 가엾어 내놓은 고육지책일 테고, 또 담당 공무원들이 확실하게 책임을 다하라는 채찍일 터다. 그래도 방법이 잘못됐다. 물가 상승의 원인이 생산과 유통에만 있겠는가. 설령, '배추 국장'이 가격을 억눌러도 그 풍선효과로 인한 '열무 과장'의 고통은 어쩔 것인가? 지금 프랑스인들은 니보즈(눈의 달) 달력을 넘기고 있지 않다. 청나라도 북경-열하를 왕래하는 대신들의 피로만큼 쇠퇴해갔다. 필요는 있었지만 방법이 잘못됐던 까닭이다. 방법이 잘못되면 자칫 그 필요는 “폭군의 특권”으로 치부되고 만다. 밀턴이 『실락원(失樂園)』에서 한 말이다. 이훈범 문화/스포츠 에디터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