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s] AK 47의 발명가 미하일 칼라슈니코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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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 AK 47의 발명가 미하일 칼라슈니코프 사망

심장 질환으로 시달리던 미하일 칼라슈니코프가 23일 94세로 러시아 이제프스키에서 숨졌다고 더 타임즈가 24일 보도했다.
칼라슈니코프는 자신의 무기가 전세계에서 벌이는 학살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 불법적으로 사용되는 무기 자체의 잘못은 아니다.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은 정치인들이다”고 답했다.
그러나 범죄자나 게릴라들이 그의 무기를 사용하는 사실은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조국을 지키려 발명한 무기가 빈라덴 일당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TV를 통해 볼 때 마다 어떻게 저들 손에 저 총이 들어갔을까 생각해본다”고 그는 말했다.
AK47은 소련군과 동맹국의 공식 소총이었으며 12개국 이상에서 생산되며 55개국의 군인이 공식무기로 사용한다. 복제품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7000만정 이상이 생산됐다.
그러나 칼라슈니코프는 이 총의 발명으로 돈을 벌지는 못했다. 특허도 없다. 그래선지 84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보드카 회사의 회장이 된다. 우산과 생수에도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칼라슈니코프는 1919년 카자흐스탄의 쿠리야 마을에서 농부의 17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마치고 투르키스탄과 시베리아를 잇는 철도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1938년 탱크 운전병으로 군 복무를 시작한다. 그는 처음부터 무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41년 10월 브리얀스크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해 병가로 기차 회사에 잠시 돌아온 그는 손으로 처음 소총을 만들어 본다. 군 복무에 복귀한 그는 1942년 모스크바의 항공연구소에서 두 번째 소총을 만들어 본다. 그는 23살에 자동 7.62 밀리 칼빈 소총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면서 1946년 AK47의 초기 모델을 만들었다. 1년 뒤 총의 디자인이 완성되면서 이 총의 이름은 그 해를 따 AK47이 된다.
1948년에서 1951년 사이 AK47은 2백만 정이 만들어져 전세계로 수출된다. 이후 AK47은 매년 백만정씩 생산됐다. 소련은 망했지만 칼라슈니코프 제국은 계속 발전해 AK74, 101, 103으로 계속 발전해갔다.
AK47의 장점은 강하고 가벼우며 정비가 쉽다는 점이다. 사막이나 진흙에서도 서방의 무기는 불발이지만 이 무기는 여전히 발사된다. 미국의 M16보다 덜 민감하면서 더 믿을 만하다. 이 무기의 성공은 단순성이다 칼라슈니코프는 “군인들은 대학에 다니지 않았다. 그들이 생존하려면 단순한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K47은 1분에 600발을 발사할 수 있으며 300미터에서는 정확성을 1500미터에서도 살상력을 유지한다.
그는 AK 47이 생산되는 이제프스크 지역의 작은 아파트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왔다. 칼라슈니코프는 M16을 개발한 유진 스토너의 친구가 됐다. 칼라슈니코프와 달리 스토너는 엄청난 돈을 벌어 칼라슈니코프를 화려하게 접대하기도 했다.
부인 에카테리나 빅토로브나 모이세에바는 남편의 설계도 작성을 도왔으며 1977년 사망했다. 아들 빅토르는 소형 총기 제작의 전문가가 됐으며 9밀리 PP19를 개발했다. 두 사람은 딸도 세 명 더 두었다.



기사원문링크: http://www.thetimes.co.uk/tto/opinion/obituaries/article3957421.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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