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not a question of phra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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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a question of phrasing

On the JTBC variety show “Non-Summit” on July 6, Japanese cast member Yuta Nakamoto was asked how he viewed the historical issues between Korea and Japan, to which he responded, “Apologies need to be made repeatedly until the victim accepts it.”

His opinion sounded familiar. In April, 66-year-old Haruki Murakami made a similar remark.

In an interview with Kyodo News, the best-selling author said, “I think that is all Japan can do - apologize until both countries say: ‘We can’t necessarily get over it completely, but you’ve apologized enough. OK, let’s move on now.’”

However, I just can’t agree with Murakami. His claim is based on the premise that Japan has already apologized a number of times, and since Korea has not accepted it, Japan needs to apologize more.

Is that true? Has Japan really apologized? Whether it is an apology, or a regret, Japan has never expressed it sincerely. An apology in July would be followed by a visit to the controversial Yasukuni Shrine in August. When the administration in Japan changes, so too does the attitude. Tokyo even downplays the 1993 Kono Statement and the 1995 Murayama Statement, both considered relatively sincere repentances. There has never been true remorse. Korea isn’t angry because of the level of the apology, it’s because we never received an apology in the first place, so the idea of a continuous apology makes no sense.

Because Japan has yet to apologize, Korea’s demand for one is fair and just. Naturally, Koreans are closely watching whether the address by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in August to mark the 7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World War II will contain the terms “colonial rule” and “apology.” Still, including those phrases doesn’t mean Japan is sincere. Abe already revealed his true colors when Japan obtained Unesco World Heritage status for several of its Meiji era industrial sites.

Tokyo accepted Korea’s demand to acknowledge in the registration that multitudes of Koreans had been “forced to work” at some of those facilities, but the next day, the Japanese government changed its stance and claimed that the acknowledgement did not mean “forced labor.” So what can we expect from Abe’s statement?

Let’s not demand an apology at all and let Japan do what it wants. Instead, let’s do what we need to do. Let’s use all possible legal means. Also, Korea should more aggressively publicize Japan’s crimes against humanity during the war - forced labor, human experimentation and sexual enslavement. It will be a long battle, but there is no other way. Japan gave Korea 36 years of suffering and 70 years of humiliation. We must put an end to this.

The author is a business news reporter for the JoongAng Ilbo.

JoongAng Ilbo, July 15, Page 34

by KIM JUN-HYUN



6일 방송된 JTBC의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일본 대표로 출연한 나카모토 유타(20)는 역사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사과를 받는 사람이 납득할 때까지 (사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타의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었다. 그렇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6)가 지난 4월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방 국가가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고 할 때까지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타의 말에 중국 대표가 “우리 아마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환영한 것처럼, 하루키의 발언에 대다수 한국인들은 “역시 하루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하루키에 동의할 수 없다. 하루키의 말은 ‘일본이 사과를 했다. 그것도 여러 번 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사과했지만 한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계속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일본이 사과한 적이 있었나. 사과든, 사죄든, ‘통석의 념’이든, 일본은 그런 걸 해본 적이 없다. 7월에 사과하고, 8월에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하는 게 일본이다. 정권이 바뀌면 손을 뒤집는 게 일본이다. 그나마 제대로 된 반성으로 평가되는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도 없었던 일로 하는 게 일본인 것이다. 이런 것을 사과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화가 나 있는 건 사과의 수준이 아니라 사과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납득할 때까지 계속 사과해야 한다’는 말은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표현이다. 일본이 사과한 적이 없는 까닭에 “사과하라”는 우리의 요구는 정당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월 발표할 종전 70주년 담화에 ‘식민 지배’와 ‘사죄’란 단어를 담길 것인지에 우리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단어가 담화에 담긴들 그게 진심일까. 일본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일에서 아베 담화는 이미 그 진정성을 드러냈다. 한국 정부와의 협상에서 ‘의사에 반해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했다’는 표현을 넣은 지 하루 만에 일본 정부는 그게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말을 뒤집었다. 아베 담화에서 우리가 뭘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사과하라고 요구하지도 말자.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자. 대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자. 일본 정부의 사과를 기다리자 지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미국 연방법원에 집단소송을 내기로 한 것처럼 가능한 법적구제 수단을 모두 동원하자. 위안부, 강제징용, 731부대의 생체실험 등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는 작업도 지금보다 더 활발히 벌여야 한다. 지겹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방법이 없다. 일본이 사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36년의 고통과 70년의 수모를 줬다. 이런 모욕을 끊어내려면 우리가 강해지는 길밖에 없다. 스러져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눈물짓기에. 김준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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