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ing after Nakas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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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owing after Nakasone

Former Japanese Prime Minister Yasuhiro Nakasone was an unconventional leader of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During his term from 1982 to 1987, he broke many taboos to settle postwar issues. On Aug. 15, 1985, he made an official visit to the Yasukuni Shrine, the first prime minister to do so. He promoted small government and sought administrative and fiscal reform as well as privatization of railroads, telecom and tobacco.

He also opposed his predecessor Yoshida’s lightly armed, economy-focused policies. It was a challenge to the mainstream conservative Liberal Democrats. Nakasone increased defense spending beyond 1 percent of GNP in 1986 and proclaimed that the United States and Japan have a shared fate. He called the Japanese islands an “unsinkable vessel” against Soviet invasion. However, Nakasone did not focus on the United States all the time. He valued Asia as well. Right after his inauguration in January 1983, he visited Korea first and then went to the United States after six days. The next month, he sent a special envoy to China and acknowledged Japan’s war of aggression in the Diet. It was the first time a Japanese president did so. On the Sino-Japanese War, he said that the war was internationally defined as a war of aggression. China protested his Yasukuni visit, and he never repeated it.

Nakasone’s four principles of foreign policy have universal lessons: A country must not pursue diplomacy beyond its capacity; diplomacy cannot be a gamble; a leader must not mix domestic and international affairs; and foreign policy should not deviate from the mainstream global trends. For the 7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World War II, Nakasone contributed a column in Japanese media.

He wrote that Japan’s war in Asia was wrong and that the pain cannot be healed for 100 years. People who do not face history directly cannot win the trust or respect of others, and it is Japan’s destiny to work with the United States, with whom Japan shares values. At the same time, Japan is part of Asia and cannot exist without the friendship and cooperation of Asia, he argued. If the future represents what we have learned from the past, we should march forward while reflecting on the faults that must not be repeated and ideals for the new era.

Abe’s statement proclaims to deviate from the postwar system, and it does not reverberate with the insight and vision of Nakasone. It is a regression of Japan’s historical awareness. Korean foreign policy may have to deal with this trend in Japan for a while. Korea should not follow public sentiment. Instead, the authorities need to buck the trend and offer a friendly hand. Korea-Japan relations have been suppressed by history for too long.

*The author is Tokyo bureau chief of the JoongAng Ilbo. JoongAng Ilbo, Aug. 22, Page 30

by OH YOUNG-HWAN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97) 전 일본 총리는 이질적 자민당 지도자였다. 1982~87년 재임 중 전후(戰後) 총결산을 내걸고 여러 터부를 깼다. 85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역대 총리로선 처음이었다. 내정으론 ‘작은 정부’를 밀어붙였다. 행정·재정 개혁과 더불어 철도·전신·담배의 민영화를 했다. 자민당 표밭을 갈아엎은 격이었다. 나카소네는 자민당 소수 파벌 출신이다. 정권 출범 당시 당과 내각의 핵심인 간사장과 관방장관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 총리)파였다. 다나카소네(田中曾根) 내각이란 소리를 들었다.
 외정으론 경(輕)무장, 경제 우선의 요시다(吉田) 전 총리 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자민당 보수 본류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카소네는 86년 방위비의 국민총생산(GNP) 1% 내 틀을 처음으로 깼다. 미·일 운명공동체론을 펴기도 했다. 일본 열도를 소련의 침공에 맞서는 불침(不沈)항모라고 했다. 그렇다고 나카소네가 미국 일변도였던 것은 아니다. 아시아도 중시했다. 총리 취임 직후인 83년 1월 한국을 먼저 들른 뒤 6일 만에 방미했다. 그 다음달 중국에 특사를 파견했고, 국회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인정했다. 이 역시 역대 총리로선 최초다. 그는 중일전쟁에 대해 “국제적으로도 침략 행위로 판정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수용한다”고 답변했다. 야스쿠니는 중국이 반발하자 다시 찾지 않았다.
 나카소네의 외교 4원칙은 보편적 시사점을 준다. 국력 이상의 외교를 해서는 안 된다, 외교가 도박이어선 안 된다, 내·외정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세계사의 정통 조류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실주의 외교의 한 전형이 아닐까 싶다. 나카소네가 전후 70주년을 맞아 일본 언론에 기고문을 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역사 법정의 피고(被告)로서 성찰을 담았다.
 요체는 이렇다. “아시아 전쟁은 해서는 안 될 잘못된 침략 전쟁이었다. 민족이 입은 상처는 100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 민족은 다른 민족의 신뢰도 존경도 받을 수 없다. 같은 가치관과 해양형 국가의 조건을 가진 미국과의 연계는 필연이다. 동시에 일본은 아시아의 일원이다. 아시아와의 우호 협력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그러면서 “미래가 역사에서 배워 얻은 반성과 그에 의한 진보라고 한다면, 우리는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될 잘못에 대한 자성(自省)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이상을 갖고 전진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카소네는 이것이 전후 70년의 관점이라고 했다.
 전후 체제 탈피를 내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담화는 이런 울림이 없다.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마저 보일락 말락 한다. 아베 담화는 일본의 역사인식 후퇴다. 동시에 자민당 보수 정치의 왜소화를 상징한다. 우리 외교는 상당 기간 일본의 이런 기류를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 국민 감정에 편승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손을 내밀 수 있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한·일 관계는 너무 오래 역사에 짓눌려 왔다.
오영환 도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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