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ad story repeats in the United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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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ad story repeats in the United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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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ept. 11, I visited a quiet residential neighborhood in Columbia, Maryland, about a one-hour drive from Annandale, Virginia, where the Korean population is concentrated. Kim Ju-yeol, 81, was waiting for reporters. Kim’s hometown is in Kaepung County, Hwanghae province, in North Korea near the city of Kaesong. The last time he was in his hometown was in 1949, when he was in his second year of middle school. Thereafter, he went to school in Seoul, living with relatives. The last memory he has of his hometown is of his mother taking him to the train station to go to Seoul. The Korean War broke out the following year, and he never saw his mother again.

“I still remember that I didn’t want to let my mother’s hands go,” he said. “She passed away before she ever saw me again. I have been holding on to the memory for the last 65 years.”

Kim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in 1978, and in the early ’90s he received an unexpected letter. He had sent letters to his relatives in North Korea through other people several times, and he finally got a response. A relative in the North wrote that his mother had treasured fabrics to make a suit for him for 20 years but had passed away a year earlier.

After settling in the United States, he returned to Korea four times and visited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to look across to the other side. He toured Kaesong and visited the nearby Dorasan Observatory. When he visited Kaesong, he saw Sonjuk Bridge, only a few hundred meters away from where his aunt had lived. But he wasn’t allowed to go further.

Kim keeps a family portrait of his children and grandchildren. “Now that I think of it, the last time I saw my mother was when I was my grandchildren’s age.” Then, the reporter and I realized we had given him false hopes. “When I heard two reporters were visiting me, I thought I might be included on the reunion list.” I felt sorry as I told him frankly that we were visiting without knowing who is on the list. We were so insensitive to the plight of separated families.

After an hour-long conversation, Kim saw us off. He hoped we would visit with good news next time. I was reminded of what Rep. Charles Rangel (above photo) had said when I met him earlier that day: Korean-Americans had made a new home in the United States but cannot forget what they had left behind on the Korean Peninsula.

Living in America cannot erase their sorrows. The pain of separated families is just as intense in the United States as it is in Korea.

BY CHAE BYUNG-GUN

*The author is the Washington correspondent of the JoongAng Ilbo.





지난 11일(현지시간) 오후 1시쯤 찾은 미국 메릴랜드주 컬럼비아의 조용한 주택가. 한인 밀집 지역인 버지니아주 아난데일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다. 한 주택의 정문엔 김주열(81)씨가 미리 방문을 알렸던 취재진 두 명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김씨는 개성에 인접한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고향은 중학교 2학년 때였던 1949년 겨울방학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의 친척 집으로 와서 중학교를 다녔던 김씨. 그 겨울에 고향 집을 찾았다가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단역으로 나왔던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해 발발한 6·25 전쟁은 어머니와 아들을 영영 갈라놓았다.
“지금도 어머니의 손을 놓고 헤어지기 싫었던 그때가 눈에 선합니다. 그때 뵙곤 영원히 못 뵌 채 돌아가셨어요. 그때를 생각하며 65년을 이러고 살았습니다.”
1978년 미국으로 이민을 온 뒤 90년대 초 생각지도 못했던 편지가 김씨에게 배달됐다. 그간 몇 차례 인편을 통해 북한의 친척에게 보냈던 편지의 답장이었다. 북에 살고 있는 친척은 “어머니는 주열이에게 해줄 거라며 양복 옷감을 20년 동안 보관하고 계시다 지난해 돌아가셨다”고 알렸다.
힘들었던 이민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김씨는 네 차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고향의 산을 멀찍이에서라도 보기 위해 휴전선 인근을 찾았다. 개성 관광에도 나섰고, 도라산 통일 전망대도 갔다. 개성 관광으로 돌아봤던 선죽교에서 수백m 떨어진 곳엔 옛날 고모댁이 있었지만 더는 가 볼 수 없었다.
김씨의 집엔 자녀·손주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다. 김씨는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서 어머니를 뵈었던 게 지금 내 손주들 나이 밖에 안 돼요.” 기자는 물론 함께 김씨 자택을 찾았던 워싱턴 중앙일보의 현지 기자가 동시에 아차 싶었던 것은 바로 이때였다. 김씨는 “기자들이 두 분이나 온다고 해서 혹시 이번엔 (상봉 명단에) 들어가나 해서….” 기자들이 혹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가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준 것이었다. 상봉 명단에 포함됐는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가 뵈러 왔다고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리면서도 죄송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생전을 듣고 싶은 이산 가족의 절절한 심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만나려 했다. 1시간가량 말씀을 듣고 집을 나서는데 김씨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양말 차림으로 문밖에 나와 기자들을 배웅했다. 그 모습엔 ‘다음에 올 때는 좋은 소식을 갖고 와 달라’는 말 없는 소망이 담겨 있었다. 순간 오전에 만났던 찰스 랭글 미국 하원의원의 말이 머리 속에 교차했다. “코리안 아메리칸은 미국에서 새 고향을 만들었지만 한반도에 남아 있는 걸 잊지 못한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데 미국에 산다고 해서 가족을 그리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없어지겠는가. 이산가족의 아픔은 한국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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