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ing tides in the Yalu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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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ing tides in the Yalu River

In China, bent rivers are called he while straight rivers are named jiang. The Yellow River, or Huang He, is the most well-known bent river, and the Yangtze River, or Chang Jiang, is the straight kind. I spent last week in Dandong, and the Yalu River flowing between Dandong and Shinuiju is a straight river.

A Dandong local said, “In 30 years, the flow of the river changes and the east of the Yellow River becomes the west of the Yellow River. Similarly, the Yalu River’s north and south experienced changes in 30 years.” He said that in the 1960s and ’70s, the economic situation in North Korea and China were reversed. As a result of the experiments of people’s communes, which removed all private kitchens, and the Cultural Revolution, many people starved to death in China. North Korea was well-off at the time and did not neglect China’s needs.

Since the ’80s, China successfully opened and reformed, attaining rapid growth. In contrast, North Korea experienced famine and flood and went through the “Arduous March” in the mid-1990s. Just like today, a lot of supplies crossed the Yalu River. After the 1980s, the flow crossing the Yalu River reversed. The Chinese people in Dandong no longer treat North Korea as a “blood brother.”

The main cause is the economy. Dandong aspires to be the Shenzhen of the North. Just as Shenzhen backs up Hong Kong, Dandong built the 6,026-meter New Amnok Bridge and completed the construction of new towns in the area. Hwanggumpyong Island is completed, but the new project has turned into a ghost town due to North Korea’s nuclear ambitions.

The fourth nuclear test and the long-range rocket launch changed the direction of China’s North Korea policy. The arguments that North Korea is an eternal strategic asset for China are fading, and voices calling for “creative intervention” are growing. It seems that the new normal in foreign policy is arriving.

In an interview with a Hong Kong magazine, China’s People’s Liberation Army’s strategist Air Vice Marshal Chao Liang criticized North Korea for being ungrateful. Of course, he was discussing America’s “ambitions for hegemony,” and the main target was not North Korea. Meanwhile, Cao Xin, director of the China-Asia Development Exchange Foundation, discussed policy alternatives as a liberal intellectual in a contribution to the Financial Times Chinese Edition. He went so far as to argue that China must exercise influence over the North by stopping free assistance, closing the border temporarily and controlling smuggling.

The third 30-year cycle of the Yalu River is not about ideological offensives from China - if the flow of the public sentiment really changes every 30 years.

The author is the Beijing correspondent of the JoongAng Ilbo.

JoongAng Ilbo, Mar. 5, Page 26

by SHIN KYUNG-JIN



강은 물길의 곧고 굽음에 따라 강(江), 하(河)로 나눈다. 황허(黃河)가 굽은 강의 대명사, 창장(長江)이 곧은 강의 대명사인 이유다. 지난 한 주 머물던 중국 단둥(丹東)과 북한 신의주 사이를 흐르는 압록강 역시 곧고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단둥의 한 교포는 “삼십년하동, 삼십년하서(三十年河東 三十年河西)”를 말했다. 황허의 동쪽이 30년이 지나면 물줄기가 바뀌어 황허의 서쪽으로 변하듯 압록강 남북도 30년 주기로 변화를 겪었다는 이야기다. 그분이 겪었다는 1960~70년대 북한과 중국의 경제 상황은 지금과 반대였다고 한다. 모든 가정의 부엌까지 없애버린 인민공사 실험과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당시 여유롭던 북한은 중국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한다.
 80년대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에 성공해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고 북한은 90년대 중반 수해와 흉작이 겹치며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대기근을 겪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많은 물자가 북한으로 압록강을 건넜다. 80년대를 전후로 압록강을 건너는 물줄기가 남북으로 교차된 셈이다. 다시 30년 주기를 맞았지만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중국을 괴롭히는 이웃으로 변했다. 단둥의 중국인들은 더 이상 북한을 ‘혈맹(血盟)’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이유는 역시 경제다. 단둥의 모델은 북방의 선전(深?)이다. 홍콩의 배후도시 선전을 꿈꾸며 6026m의 사장교 신압록강대교를 건설했고 배후 신도시까지 모두 완공한 상태다. 착공식을 마친 황금평도 단둥의 잠재 성장엔진이지만 모두 핵을 고집하는 북한 집권층의 야욕으로 단둥 신도시는 ‘유령도시(鬼城)’로 전락했다.
 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대북정책마저 물줄기를 바꿨다. 이미 다원화된 중국 학계는 대북정책의 백화제방(百花齊放)을 시작했다. 북한은 중국의 영원한 전략적 자산이란 주장은 사그라들고 ‘창조적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교정책의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가 온 모양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략통인 차오량(喬良) 공군소장은 최근 홍콩 월간지 인터뷰에서 “북한은 받아먹기만 하는 배은망덕한 존재”라며 비난했다. 물론 차오 소장의 속내는 미국의 ‘패권욕’을 폭로하는 것으로 북한이 주 타깃은 아니었다. 반면 차오신(曹辛) 중국-아시아발전교류협회 이사가 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FT) 중문망에 기고한 글은 자유파 지식인의 정책 대안을 담아냈다. 차오 이사는 “한국의 국가 안보를 약속하는 조약 체결”을 주장했다. 북한과 이미 ‘중·조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맺고 있어 북한의 반발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더불어 대북 무상 원조를 중단하고, 국경을 임시 봉쇄하며 밀무역까지 엄격히 단속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압록강의 세 번째 30년은 이처럼 중국발 사상 공세가 아닐 듯싶다. 민심의 물줄기 역시 30년 주기로 ‘하동하서’를 넘나든다면 말이다.
- 단둥에서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출처: 중앙일보] [글로벌 아이] 삼십년하동 삼십년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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