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a voice for children in need : After retirement, actress Shin Ae-ra has become an advocate for families

Home > National >

print dictionary print

Being a voice for children in need : After retirement, actress Shin Ae-ra has become an advocate for families

테스트

Shin Ae-ra and her husband Cha In-pyo together with a group of children in Ethiopia in 2007. The couple is known for their dedication to humanitarian work. [COMPASSION KOREA]

IRVINE, California - Shin Ae-ra was the biggest star of the 90’s, and her marriage to actor Cha In-pyo in 1995 was major celebrity news. She continued to appear on TV shows and movies after her marriage, but in 2014, she suddenly announced her retirement and moved to the United States to study.

These days, she is a student and an ambassador of a child sponsorship organization called Compassion, as well as being a wife and a mother of three children. Shin and Cha adopted two daughters, and have worked to highlight the issue of adoption in Korea. The JoongAng Ilbo, the mother paper of the Korea JoongAng Daily, met her in Irvine, California, where she now lives.



Q. What have you been doing recently?

A.
Currently I am studying Family Ministry at HIS University in Corona, California. I also have a position as promotional activist at Compassion Korea.

[Compassion is a Christian philanthropy organization found by evangelist Everett Swanson in the wake of the Korean War. Initially intended to help Korean orphans, the movement has expanded to support more than 1.8 million children. Compassion Korea was established in 2003 and now helps more than 120 thousand worldwide.]



테스트

Above: Shin, an avid supporter of adoption and legal guardianship, often speaks about the necessity of an infrastructure to create and protect families. Here she is holding a seminar at a Korean American Family Services gathering, a charity group dedicated to assisting low-income Korean American families or immigrants. Below: Shin adopted two daughters, Ye-eun and Ye-jin, after giving birth to her son Jeong-min. She believes that adoption should be a viable alternative for families. [SHIN AE-RA]

What type of children does Compassion support?

A lack of opportunities is what Compassion views as true poverty. For instance, there is a village that exists in a heap of trash in the Philippines. What drives these inhabitants into depression is not the fact that they eat trash to survive, but the harsh reality that they cannot break out from their economic situation.

Compassion provides these children a window of opportunity to escape the cycle of poverty.



Could you explain what Family Ministry is?

Family Ministry is the coursework to set up a proper household. The course includes counseling, education and psychology based on Christian philosophies.



What was your motive behind studying Family Ministry?

The work I want to accomplish lies with Family Ministry. I want to encourage adoption and legal guardianship in Korea. Developed nations have more guardian households than orphanages.

In families, adults and children have a one-to-one relationship, while in orphanages, adults and children have one-to-many relationship. The younger children are, the more attention they need.

It would be the best if society can provide single mothers with the environment to raise children without discrimination. But when it is difficult, adoption or guardianship should also be a viable alternative.



What was it like raising three children through puberty?

One particularity of puberty is that [children make] audacious excuses that don’t make sense. While it may shock parents that their children speak out about something nonsensically, it is normal.

In my experience, my eldest son Jeong-min lied and I overlooked it despite the fact that it was a pretty blatant lie. It’s more important to listen, believe and bond than criticize and analyze their irrational behaviors.



How is your husband, Cha In-pyo, now that he has entered the Hollywood movie scene?

He is currently shooting a movie called “Heavenquest: A Pilgrim’s Progress.” It is a low-budget Christian movie that he had originally intended to only invest in but he finally decided to appear in it. His movie company, TKC Pictures, was a part of his dream to do good by sending positive messages in the form of publishing, TV dramas and other media formats. His self-produced movie “50,” which was screened at the 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was the same idea. Even though this venture costs money, if it makes him happy then I’m down for it. It’s truly important to do what makes you happy.



Among the films that you have made, which work do you remember most fondly?

I’d have to pick the romantic TV drama “Love In Your Arms” (1994) because that is where I met my husband. The family drama “What is Love?” (1991) is another piece that I can now see as more interesting, compared to my rookie days. Speaking as a veteran, even now those pieces were truly unique and difficult to come by.



Which actors do you admire and aspire to be?

I look up to Na Moon-hee whose acting looks so natural. Her expression and her acting come so comfortably that her acting has become life itself. That is something I wish I could become.

Nowadays, I also ponder upon how an actor should wrap up their life. Silver screen stars like Elizabeth Taylor, Marilyn Monroe and Audrey Hepburn all had extraordinary careers but ended their lives in a different fashion. From their paths, I think Audrey Hepburn was the most respectable and I would like to follow in her footsteps.

BY BAE YANG-SOOK, CHANG HA-NY [bae.seunghoon@joongang.co.kr]



한국의 오드리 헵번, 신애라를 만나다

배우 송혜교와 송중기의 결혼 발표에 버금가는 빅 뉴스였던 신애라와 차인표의 결혼. 199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연기자 신애라는 한국의 '피비 케이츠'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결혼 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던 그는 2014년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미국 유학을 위한 선택이었다. 미국에서 만난 신애라는 TV로 보던 것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연기자, 차인표의 아내, 세 자녀의 엄마, 가정사역 박사 과정 중인 학생, 그리고 한국 컴패션 홍보대사. 선행과 봉사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한국의 오드리 헵번, 신애라를 '배양숙의 Q'가 만났다.



근황이 궁금합니다.

“현재 히즈대학교(HIS University)에서 가정사역(Family Ministry)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또 한국 컴패션(Compassion)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컴패션은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컴패션은 전 세계 25개국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1대 1로 결연해 성인이 될 때까지 전인적으로 양육하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입니다.”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후원하고 계시다고요.

“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아이를 후원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양육’하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후원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의 소통, 교류가 이뤄져야 하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제가 키우는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는 건 물론 편지도 제가 직접 읽고 답장을 보냈어요. 그런데 몇십 명이 넘어가다 보니까 이름을 기억하기 힘들고 편지도 일일이 보내주기 힘들더라고요. 저는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현지에서 직접 봤기 때문에 후원자가 보내주는 편지가 얼마나 아이들한테 소중한지 알고 있어요. 때문에 명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명을 후원하더라도 그 아이와 진정성을 갖고 관계를 맺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제가 키우고 있는 아이들한테 많이 미안해요. 가장 중요한 걸 해주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컴패션은 1952년 미국인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한국 내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설립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대돼 현재 18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양육 받고 있다. 한국 컴패션은 가난했던 시절 한국이 전 세계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갚고자 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2003년 설립됐다. 현재 약 12만 명의 전 세계 어린이들이 한국 후원자들을 통해 양육 받고 있다.



컴패션은 어떤 아이들을 후원하나요?

“컴패션은 단순히 못 먹고, 못 입는 것 보다 기회의 부재를 진짜 가난으로 봅니다. 필리핀에는 쓰레기 마을이 있어요.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죠. 그런데 쓰레기를 주워 먹는다는 사실보다 쓰레기 더미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아이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거예요. 컴패션은 그런 아이들에게 쓰레기 더미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물론 한 아이를 양육한다는 건 단순히 집 지어주고, 빵 나눠주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제가 한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면 그 아이가 나중에 1000명, 10000명을 도울 수 있죠.”



한 아이를 성장 시키고 독립 시킨다는 점에서 후원자도 많은 보람을 느끼겠네요.

“컴패션을 통해 후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얘기를 해요. ‘분명히 우리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시작한 건데, 왜 우리가 이렇게 행복할까?’ 그러다 마태복음의 한 구절이 떠올랐어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요. 저는 이 말씀이 누군가를 도우면 도움 받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말씀을 실천하면 결국 내 자신이 행복해 진다는 것을 깨달았죠. 봉사하면 내 시간과 돈을 나눠야 하겠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는 누구인가요?

“처음 컴패션 홍보대사를 제안 받았을 때, 필리핀으로 직접 갔어요. 컴패션이 어떤 곳인지, 어떤 일을 하는 지 알아보기 위해서요. 거기서 '리카'라는 아이를 만났어요. 9살도 안된 아이였는데 눈망울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 아이가 제 첫 딸이 됐어요. 제 아들하고 나이가 비슷해 더 기억에 남기도 해요. 리카는 후원하면서도 몇 번 만났어요. 필리핀으로 가족 여행 갔을 때, 한국 방송국에서 리카를 초청했을 때. 다만 리카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꼭 가고 싶었는데 가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요. 아마 리카가 컴패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가난한 동네에서 배우지도 못하고 남겨져 있었겠죠. 하지만 다행히 컴패션을 만나 잘 자라줬고, 대학까지 갔으니 한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리라 믿어요. 월 4만5천원이면 영화 한편 보고 밥 한끼 먹는 값이잖아요. 이 돈이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아이를 후원하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건 그 아이에겐 상상 할 수 없는 기적이에요.”



가정사역 박사 과정 중이신데, 우리에겐 조금 생소한 학문입니다.

“가정사역은 ‘올바른 가정을 세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는 기독교 상담학, 그리고 그 상담을 교육할 수 있는 기독교 교육학, 그리고 기독교 심리학이 있어요. 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을 말씀 드리자면, 심리학은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고 상담학은 알게 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거예요.”



어떤 사람을 알아가고 관계를 맺는 게 바로 사회생활이잖아요.

“저는 심리학과 상담학이 대학에서 교양필수과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담의 기본은 공감과 수용입니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해야 해요.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죠. 이 사람과 내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흑과 백이 아니라 그 사이에는 수만 가지 색이 있다는 걸 받아들일 때 우리사회는 훨씬 따뜻해질 거예요.”



가정사역을 공부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가정사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위탁과 입양을 적극 장려하고 싶어요. 선진국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보육원이 없는 대신 위탁가정이 있어요. 물론 위탁가정도 장단점이 있어요. 하지만 가정은 1대 1의 관계고 보육원은 1대 다수잖아요. 어린 아이일수록 1대 1의 관계가 필요하거든요. 물론 미혼모가 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입양을, 입양이 힘들다면 위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마땅히 사랑 받아야 할 모든 아이들이 가정을 경험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세 명의 자녀를 키우고 계시잖아요. 아이들의 사춘기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사춘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치에 닿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는 거예요. 아이들이 비논리적인 얘기를 당당하게 하면 많은 부모들이 놀라는데, 그게 정상입니다. 지금 생각나는 일화는, 첫째 아들 정민이가 거짓말을 했고, 저는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넘어갔어요. 이처럼 사춘기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더라도, 일일이 따지고 혼내기보다는 무조건 들어주고, 믿어주고,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게 중요해요.”



무조건 믿어주면 아이들이 더 엇나가지 않을까요?

“중학교 정도 됐으면 아이들도 부모가 속아준다는 걸 알아요. 아들도 제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넘어갔을 때 죄책감을 가장 많이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부모가 아이를 변화할 수 있는 시기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끝나요. 때문에 가르치고 혼내면 관계만 틀어지게 되죠. 일단 믿어주고 관계를 좋게 만들면 아이들은 돌아오게 돼 있어요. 대신 정말 용납할 수 없는 것을 하나씩 요구하세요. ‘네가 밤 12시 넘어서 들어오는 건 엄마가 너무 걱정되니까 이건 지켜줬으면 좋겠어.’ 이런 식으로요.”



많은 부모들이 올바른 훈육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훈육은 어렸을 때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훈육이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 되면 안돼요. 아이의 인격을 키워주기 위한 방법이 돼야죠. 집에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데 학교에 가는 건 사회를 배우기 위해서 예요. 올바른 공동체 생활을 하려면 아이들의 인격과 인성이 우선 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공부를 잘해야만 좋은 아이인 것처럼 만들고 있어요. 왜 우리가 아이를 키워야 하며, 왜 아이를 좋은 사회인으로 자라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들의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는 부모 대상 교육을 하고 싶어요. ”



신애라씨도 초보엄마 시절이 있지 않았나요?

“둘째 예은이와 막내 예진이는 가슴으로 낳은 딸들입니다. 예은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첫째 정민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그때는 더 어린 예은이한테 올인해야 된다는 생각에 아직 어린 정민이를 밤늦게 까지 학원에 보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저한테 계속 안기니까요. 초보엄마 시절 정민이한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 마음 아파요. 정민이가 저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사랑해’이거든요. 아마 어릴 때 받지 못한 사랑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건지도 몰라요. 모든 자녀들은 대학교에 가기 전에 한번씩 부모한테 응어리를 풀어낼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도 정민이한테 그런 기회를 줬고, 맺힌 걸 다 풀었어요. 설령 자녀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더라도 무조건 들어주세요. 그 매듭을 한 번 풀고 부모를 떠나는 것과 매듭이 있는 채로 떠나는 것은 다르거든요. 매듭을 풀고 가면 부모가 해줬던 좋은 말들이 기억나지만 풀지 못하면 그 매듭밖에 기억나지 않아요. 지금은 외할아버지를 따라 실용음악을 공부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정민이를 항상 응원하고 있답니다. 둘째 예은이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서 유치원이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싶고 막내 예진이는 동물을 너무 좋아하니 수의사나 동물을 돌봐주는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 싶어요. 저는 아이들이 원하는 꿈을 지지해주려고 해요. 세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있어 참 고맙기만 합니다.”



엄마이기 이전에 딸이었잖아요. 어머니의 교육방침은 어땠나요?

“어머니는 항상 저를 믿어주셨지만 거짓말은 용납하지 않으셨어요. 늦게 들어와도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한 상황을 얘기하면 이해해주셨죠. 성실성과 책임감을 강조하셨고, 더불어 사는 행위를 잘 했을 때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어머니의 이런 교육방침이 지금 제가 봉사활동을 하고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죠. 대신 공부하는 거에 대해선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빨리 연기자로서의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남편 차인표씨가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에 진출했다고요. 아내로서 어떻게 내조하시나요?

“‘헤븐퀘스트’라는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기독교 소규모 영화인데, 원래는 투자만 하려다 출연까지 하게 됐어요. 최근에는 ‘TKC 픽쳐스’라는 영화사를 설립했습니다. 인표씨가 하고 싶은 일은 좋은 메시지의 글, 드라마,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 얼마 전 ‘50’이라는 영화를 직접 만들어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하기도 했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거예요. 설령 그게 돈을 쓰는 일이더라도 남편이 좋아하면 저도 좋아요.”

‘헤븐퀘스트 : 필그림스 프로그레스(Heavenquest : A Pilgrim’s Progress)’는 기독교 고전인 존 버니언의 소설 ‘천로역정’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액션 판타지 영화다. 차인표가 설립한 영화사 ‘TKC 픽쳐스’와 미국 영화제작사 ‘킹스트릿 픽처스’가 공동제작하며 내년 여름 개봉할 예정이다. 차인표는 주인공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애라씨도 연기자로서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요?

“아무래도 남편을 만나게 된 ‘사랑을 그대 품안에’가 가장 기억에 남죠. 또, ‘사랑이 뭐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었어요. 그때는 신인 시절이라 정신 없어서 잘 몰랐지만요. 그런 작품은 연기자로서 인생에 한 번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닮고 싶은 연기자가 있나요?

“나문희 선생님이요. 인상도 너무 자연스럽고, 연기도 자연스럽게 하시잖아요. 너무 연기하는 것 같이 하기 보다는 연기가 삶 같고, 삶이 연기 같죠. 저도 그렇게 편안한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요즘에는 연기자로서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요. 세기의 은막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이 세 사람 모두 너무 아름답지만 마지막 모습은 각자 다르잖아요. 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오드리 헵번을 존경하고 그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요.”



100세 시대라고들 하잖아요. 인생의 절반 정도가 지났는데 남은 시간을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산다는 건 순간을 의미있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과거, 미래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을 기쁘고 감사하게 사는 거죠.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 나한테 놓여진 이 상황이 지금의 나한테는 전부에요. 사실 저는 성격이 급해서 자꾸 미래를 보려고 해요. 아침밥을 빨리 차리려고 대화를 원하는 아이를 내친 적도 있죠. 하지만 그 아이는 몇 시간이 아니라 그저 5분 동안 눈 마주치고 안아주고 잠깐 얘기 하기를 원하는 것이거든요. 사실 그게 아침밥 빨리 차려주는 것 보다 소중한 시간이잖아요. 그래서 요즘 저는 매일 밤 죽어요. 내 인생이 오늘 끝난다면 과연 나는 오늘 후회 없는 삶을 살았는지 반성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내일은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노력해요.”

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에서 만난 연기자 신애라씨는 소박한 옷차림이었지만 자연스러운 품위가 전해졌다. 가슴으로 낳은 두 딸의 학교 일로 늦어져 황급히 약속장소로 들어오며 활짝 웃던 그녀의 미소는 빛이 났다. 외면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었음을 인터뷰가 끝날 즈음 알 수 있었다. 어둡고 낮은 곳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쳐 품어주는 큰 사랑이 내면에 가득했기 때문이리라.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배양숙 기자, 장하니 인턴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s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