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hood Isn’t Sacrifice, It’s Selfish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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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hood Isn’t Sacrifice, It’s Selfishness


I was taking a few weeks’ break from work over the summer. My family and I — my husband and my sons, then 9 and 7 — planned to spend the time at our house on the New Jersey shore. When my mother asked what we would be doing on our vacation, I told her we would be together - going to the beach and the nearby amusement park, cooking, playing in the yard.

저는 몇 주 정도 휴가를 내고 가족과 뉴저지 해변에 있는 우리 집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계획이었습니다. 가족은 저와 남편, 그리고 당시 9살, 7살이던 두 아들이었죠. 저희 엄마가 전화로 제 휴가 계획을 물었을 때 저는 해변에서 놀고 근처 놀이공원도 가고 맛있는 거 해 먹고 마당에서 가족과 함께 놀 생각이라고 말했죠.

In response, my mother said: “Oh, that’s not much of a vacation for you. I’ll bet you can’t wait to get back to work. Motherhood, it’s the hardest job in the world. All sacrifice!”

“아이고, 우리 딸 진짜 휴가는 글렀네. 그렇게 며칠만 보내면 금방 얼른 회사 가고 싶을 거다. 엄마 노릇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도 잘 알겠지만 말이야. 온통 희생뿐이지!”

“Really?” was all I could say in response.

엄마의 꽤 단호한 우려에 저는 그저 “정말 그럴까?” 하고 어깨를 으쓱하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I was looking forward to uninterrupted time with my boys. We would spend days by the ocean and take trips to the boardwalk, where they would scream with delight while riding the roller coaster — the same one I’d ridden when I was their age, then ridden alongside them until Hurricane Sandy deposited it into the Atlantic. We’d ram one another with bumper cars; we’d ride the old-fashioned merry-go-round, waiting until my youngest son’s favorite horse, bright-blue Freddy, became available. Some days were sure to end in tears of exhaustion, but the tears didn’t outweigh the joy. Even on the bad days.

무엇보다 두 아들내미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며칠은 바닷가에서 즐겁게 보내고, 근처 놀이공원에 가서는 제가 어렸을 때 탔던 롤러코스터도 함께 탈 생각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허리케인 샌디가 왔을 때 완전히 망가진 뒤 다시 지은 롤러코스터죠. 어쨌든 아이들은 분명 재밌어하며 또 타자고 조를 겁니다. 범퍼카를 탈 때는 몰래 편을 짜 한 명을 골탕 먹이기도 하고, 회전목마를 탈 때는 둘째가 좋아하는 하늘색 프레디 말에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잽싸게 달려갈 생각이었습니다. 노느라 지쳐서 힘든 날도 있겠지만, 넘치는 행복 앞에 힘들어서 나는 눈물쯤은 금방 마르리라 확신했죠. 아무리 모든 게 다 꼬이는 날이어도 좋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My mother was only trying to be sympathetic to my life as a working mother, but the self-satisfied way she proclaimed the sacrificial nature of motherhood grated. I don’t believe for one second that motherhood is the hardest job in the world nor that it is all sacrifice. Still, it wasn’t fair to blame her; she was merely parroting a common refrain. Once my annoyance lifted, in its place spread a kind of clarity that helped me to understand how these linguistic tropes reinforce the disempowerment of mothers and women.

엄마는 워킹맘인 저를 이해하려고 상당히 노력하시는 편이지만, 당신의 경험에 기대어 ‘엄마라는 게 원래 한없이 희생하는 거야’라는 식의 말씀을 틈만 나면 하시는 데는 정말 이골이 납니다. 저는 지금껏 단 한 순간도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희생을 감내하겠노라 다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물론 엄마가 하신 말씀이 세상의 통념을 그대로 읊조린 것에 불과하긴 하니, 엄마를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몰려오는 짜증이 한풀 꺾이고 나면 저는 이런 식으로 엄마와 여성에게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는 비유와 통념이 어떻게 퍼지고 굳어졌는지 가만히 앉아 따져 봅니다.

The assertion of motherhood as sacrifice comes with a perceived glorification. A woman is expected to sacrifice her time, ambition and sense of self to a higher purpose, one more worthy than her own individual identity. This leaves a vacuum in the place of her value, one that others rush to fill.

모성애를 향한 찬사의 바탕에는 엄마는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통념이 깔렸습니다. 여성은 때로 자기 시간과 야망, 자존감을 버리며 더 숭고한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숭고한 목표란 자기 자신의 정체성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에 휩쓸려 스스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다 보니, 자존감의 공백은 다른 수많은 것들로 서둘러 채워집니다.

When a woman becomes pregnant, she seems to become public property. Perhaps because bearing children ensures the continuation of the species, it is often prioritized as part of a larger social contract. Not only does this logic lead to an attempt to legislate women’s bodies, but also in smaller, everyday gestures, boundaries get crossed. Many friends tell stories about being touched by strangers during pregnancy, as if a woman’s maternal status turns her into a vessel to handle.

우리 사회는 임산부를 마치 공공 재산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결국 인류가 계속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번식 기능이니 어떤 의미에서 더 큰 사회적 계약의 일부분으로 해석할 법도 합니다. 이러한 논리가 여성의 몸을 규정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에 근거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여성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거리낌 없이 해대는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아이를 뱄을 때 불룩 나온 배를 행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져 당황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두 번씩 해본 정도입니다.

Written more than 30 years ago, Margaret Atwood’s “The Handmaid’s Tale” offers a cautionary tale of womanhood as sacrifice. In this dystopic novel, women are grouped according to the uses men determine for them: namely, sterile wives married for appearance or fertile “handmaids,” who are raped routinely for procreation. One male character declares that the woman must “learn in silence with all subjection” and that “she shall be saved by childbearing.” In this scenario, the act of motherhood is subverted for the benefit of those in power, and they get away with it because of the concept of motherhood as sacrifice.

마가렛 애트우드가 30년도 더 전에 쓴 “시녀 이야기”에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다른 것을 위해 희생하라고 요구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디스토피아적인 이 소설 속에서 여성은 남성이 쓸모를 정한 대로 분류됩니다. 임신할 수 없지만, 과시용으로 외모만 보고 ‘결혼 당한’ 아내들과 출산 기능만 담당하는 “시녀들”은 주기적으로 성폭행을 당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남자는 여성이 “복종하며 침묵 속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 존재일 뿐이고, 아이를 낳는 데 사실상 유일한 존재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 속 엄마의 역할은 권력을 가진 자에 복무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권력은 엄마란 원래 희생하는 자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왜곡을 포장합니다.

When we cling to the idea of motherhood as sacrifice, what we really sacrifice is our sense of self, as if it is the price we pay for having children.

엄마는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시각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정작 희생하는 우리 자신을 보지 못하고, 마치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그런 희생을 감내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Motherhood is not a sacrifice, but a privilege - one that many of us choose selfishly. At its most atavistic, procreating ensures that our genes survive into the next generation. You could call this selfishness as biological imperative. On a personal level, when we bring into the world a being that is of us, someone we will protect and love and for whom we will do everything we can to help thrive and flourish, it begets the question, How is this selfless? Selflessness implies that we have no skin in the game. In motherhood, we’re all in.

엄마는 희생의 아이콘이 아닙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우리가 다분히 이기적인 동기를 바탕으로 선택한 대단한 특권입니다. 출산을 통해 우리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기적인 선택으로 엄마가 되었다는 걸 생물학적 기제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우리의 일부를 물려받은 존재이자 우리가 사랑하고 지켜주는 존재,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도와줘도 전혀 아깝지 않은 존재를 낳아 기르는 행위를 보면 “어떻게 우리가 이토록 이타적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타적이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우리 자신의 성공에 있지 않다는 뜻이죠. 맞습니다. 엄마는 말 그대로 모든 걸 쏟아붓습니다.

By reframing motherhood as a privilege, we redirect agency back to the mother, empowering her, celebrating her autonomy instead of her sacrifice. Granted, some of us have more autonomy than others. There are many mothers who would not have chosen motherhood, for financial or personal reasons. Still, by owning our roles as mothers and refusing the false accolades of martyrdom, we do more to empower all women.

하지만 모성애를 희생이 아니라 특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엄마의 당연한 희생이 아니라 엄마가 되기로 선택한 여성의 결정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모든 여성이 똑같은 정도의 자율권을 행사하는 건 아닙니다. 엄마 중에는 경제적인 이유든, 개인적인 사정이든 선택의 여지 없이 엄마가 된 경우도 수없이 많을 겁니다. 그래도 엄마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부당하게 강요된 엄마의 희생을 찬양하는 그릇된 통념을 단호히 거부할 때 모든 여성이 빼앗겼던 지위를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In my experience, when women talk among women, our ambivalence or frustration is rarely about our roles as mothers. (That doesn’t mean our kids don’t drive us crazy sometimes.) Rather, conversations turn to questions of how to manage the best part of our lives (those very kids who are driving us crazy) with our partners, careers and other responsibilities. And while many women derive their deepest fulfillment as mothers, it doesn’t preclude their ambition or fly in the face of leaning in or out or sideways.

제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여성들끼리 이야기할 때 엄마의 역할에 관해서는 보통 별 이견이 없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그보다 다른 가족 구성원과 나 자신의 삶을 어떻게 조화롭게 가꾸어나갈 것인가, 일과 가정의 양립, 또 다른 책임감 등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복잡하게 흘러가곤 합니다. 많은 여성이 엄마로서 삶의 가장 큰 보람을 느끼지만, 동시에 훌륭한 엄마로 살면서도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누구나 얼마든지 있기 마련입니다.

Calling motherhood “the hardest job in the world” misses the point completely because having and raising children is not a “job.” No one will deny that there is exhaustion, fear and tedium. Raising a family is hard work, but so is every other meaningful aspect of our lives.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으로 규정하는 건 중요한 가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먼저 직업이 아닙니다. 출산과 육아가 진을 쏙 빼놓는 일이며 참기 힘든 분노가 밀려올 때도, 한없이 지루한 순간이 올 때도 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일입니다. 가족을 꾸리는 일이 원래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 이는 우리 인생의 아주 의미 있는 과정이자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The language surrounding child rearing as a job surely derived from caregivers’ and homemakers’ efforts to be acknowledged as fulfilling an important role. And clearly raising childre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we do - for both women and men ? but that does not make it a job. In a job, an employer pays for services an employee agrees to perform. And there is a boss to whom the employee reports. In the case of parenting, who would that be?

아이를 기르는 것을 직업으로 표현한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을 맡아서 해준 보모나 주부의 노력을 치하하기 위한 단어 선택이기도 합니다. 분명 아이를 기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책임은 여성과 남성에게 똑같이 있지만요. 어쨌든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육아가 직업이 되지는 않습니다. 직업이라면 사용자가 노동과 서비스의 대가를 지급하고 노동자는 계약에 따라 일을 합니다. 직장에는 얼마만큼 일했는지 보고하는 상사가 반드시 있죠. 육아에는 당연히 그런 보고 체계가 없습니다.

That doesn’t mean we don’t want support - paid parental leave, more flexible working hours, publicly funded day care. But the cultural shift has to happen for the policies to follow. Martyrs, after all, don’t need or expect public services.

그렇다고 부모가 아무런 도움 없이 온전히 육아를 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유급 육아휴직이나 유연한 근무 시간, 정부 재정의 지원을 받은 육아시설 등 제도적인 지원이 먼저 필요합니다. 제도가 선행되어야 의식이 그에 따라 개선될 것입니다. 만약 육아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면, 제도적 지원을 논의할 필요도 없겠죠.

Fathers are rarely, if ever, spoken about in the same way that mothers are. It’s culturally acceptable for men to have children and professional identities without having to choose between the two. These unspoken biases run deep.

출산, 육아와 관련해 아빠들은 대개 별말이 없습니다. 말을 하더라도 엄마들이 하는 말과는 결이 아주 다르죠. 문화적으로 남자는 아이를 낳고 아빠가 되더라도 자신의 경력과 육아 가운데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생겨난 무언의 편견은 상당히 단단한 편입니다.

It reminds me of a friend whose husband complained about having to “babysit” the children while she went to dinner with friends. Has a woman ever “babysat” her own children? Things are changing, but the insidious inferences persist.

엄마인 한 친구가 제게 한 번은 다른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느라 아이를 맡아줄 보모를 구해야 했을 때 남편이 그에 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얘기를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평소에는 거의 매일 엄마가 아이를 돌보고 기르기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 뿐, 육아의 책임을 엄마와 아빠가 제대로 나누지 않은 전형적인 집안의 상황이 드러났던 것이죠. 물론 이 또한 바뀌고 있지만, 변화에 대한 저항도 끈질깁니다.

Further, with “women” and “family” as go-to cultural corollaries, studies show, terrifyingly, that these biases are being adopt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too. Calling motherhood a woman’s “job” only serves to keep a woman in her place. The priorities of mothers who work outside the home are often questioned. It’s as if women are forced to choose between ambition (or simply earning a living wage) and family.

게다가 “여성”을 쉽게 “가족적인 것”과 한데 묶는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이러한 편견을 인공지능이 배우고 있다는 끔찍한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을 직업으로 규정하는 것은 곧 여성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묶어두는 것이기도 합니다. 워킹맘에게 일과 가정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끝없이 따라붙습니다. 마치 여성은 항상 자신의 야망과 가족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상황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죠. 사실 야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저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워킹맘도 정말 많습니다. 비슷한 질문에 당면했던 아빠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If we start referring to motherhood as the beautiful, messy privilege that it is, and to tending to our children as the most loving yet selfish thing we do, perhaps we can change the biased language my mother used. Only when we stop talking about motherhood as sacrifice can we start talking about mothers the way that we deserve.

이제는 엄마라는 역할과 엄마라는 존재를 아름다운 특권으로 여기고 그려야 할 때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되는 건 가장 사랑스러운 일이며 자기 본위에 충실한, 이기적인 결정이라는 점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저희 엄마가 제게 썼던 편견 가득한 가치관을 걷어낼 수 있을 겁니다. 엄마는 희생의 아이콘이 아닙니다. 이 자명한 사실을 인지하고 엄마와 희생이라는 단어를 떨어뜨려 놓아야만 엄마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The New York Times In Education
AUG.4, 2017

한글 번역 전문은 newspeppermint.com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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