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gotten 4 decades of Mindan
Published: 02 Aug. 2016, 18:54
Nevertheless, the Korean Residents Union in Japan, or Mindan, encouraged the parents to send their children to the event. For the children with Korean heritage, Mindan works hard to promote Korean culture.
Celebrating its 70th anniversary this year, Mindan has done its best to help the home country. They are the ones who wish for Korea’s success the most. Depending on how the motherland thrives, they are treated differently in their society.
When North Korea invaded the South, 642 members of Mindan joined as volunteer soldiers and 135 were killed in the Korean War. In the 1960s, they sent 3.1 million saplings of tangerine trees, which made Jeju Island a center of tangerine production. It was the Koreans in Japan who proposed the Guro Industrial Complex, and they owned more than 70 percent of the companies in the complex. It is also well-known that Shinhan Bank was 100 percent funded by Korean Japanese investors.
At the time of the Seoul Olympics, they donated 10 billion yen, about 177 billion won ($159.8 million) in today’s value. Including the Korean Embassy in Tokyo, nine out of 10 Korean mission sites in Japan were donated by Korean residents in Japan. They have so far donated a total of 800 billion won in today’s value.
It is written in textbooks that the money remitted from Germany by miners and nurses in the 1960s helped the foundation of Korea’s development. The stories of the Korean residents in Japan are not widely known but they contributed just as much, if not more, and they are not rightfully credited.
Moreover, the Korean politicians who used to meet with Mindan when they visited Japan don’t pay visits as often. A Mindan official said that they don’t get proper assistance on the issues requiring the Korean government’s support, such as the legislation for a hate speech prevention bill and the establishment of a second Tokyo Korean school.
The mainstream of the Korean community in Japan has switched from the first and second generations, who have a strong sense of nationalism,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s, who are not proficient in Korean. The naturalization rate is rapidly increasing, and the number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declined from 910,000 in 2009 to 850,000 last year. The solid Mindan organization may crumble.
Korean politicians and authorities need to pay more attention to the Korean community in Japan.
JoongAng Ilbo, August 2, Page 31
*The author is an editorial writer of the JoongAng Ilbo.
NAM JEONG-HO
지난달 29일 오후 고려대 화정체육관은 개구쟁이들의 운동회로 왁자지껄했다. 이날 운동회는 4박5일간 고국을 찾은 재일교포 초등학생 450여 명과 이들의 국내 친구 500명을 위한 행사였다. 치열했던 '박 터트리기' 경기가 끝나자 한 교사가 두 나라 말로 외쳤다. "여기로 모이세요, 고고데 아쓰메테 구다사이". 동포 학생 중 200여 명은 일본 학교에만 다녀 한국어에 서툰 탓이다. 부모 한쪽이 일본인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행사를 주최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측은 부모를 설득, 한국어를 모르는 아이들도 적극 끌어들였다. 한국인 피가 흐르는 모두에게 어떻게 든 우리 문화를 알리자는 뜻에서였다. 올해는 민단 창설 70주년. 그간 민단은 조국을 힘껏 도와왔다. 이들만큼 한국의 발전을 바라는 이들도 없다. 조국이 얼마나 잘되느냐로 사회적 대접이 달라지는 까닭이다. 실제로 1950년 북한이 남침하자 642명이 의용군으로 자원해 135명이 전사한다. 60년대에는 감귤 묘목 310여만 그루를 보내 제주도를 귤 왕국으로 만들었다. 구로공단을 입안한 것도 재일교포였으며 입주 기업의 70% 이상이 이들 소유였다. 100% 재일교포 자본으로 신한은행이 세워졌다는 건 잘 알려진 일이다. 특히 서울올림픽 때는 약 100억 엔, 지금 돈으로 1770여억 원을 쾌척했다. 도쿄 한국대사관을 포함, 10곳의 일본 내 공관 부지 중 9곳이 교민들이 기증한 땅이다. 그간의 재일교포 성금 전체를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8000억 원이 넘는다. 6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 송금이 나라 발전의 기틀이 됐다는 건 교과서에 나와있다. 반면 이 이상으로 헌신한 재일교포들 사연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로서는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일본 방문 때면 으레 민단에 들렀던 한국 정치인의 발길도 요즘 뜸해졌다. 그래선지 민단 관계자는 "헤이트스피치 방지법 제정, 제2 동경한국학교 설립 등 한국 정부 지원이 절실한 사안에 대해서도 제대로 도움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어느덧 재일교포 사회에서 민족의식이 강한 1·2세대는 퇴장하고 한국말이 서툰 3·4세대가 주류가 됐다. 그래선지 귀화자가 급증해 2009년 91만 명이던 재일교포 숫자는 지난해 86만 명으로 줄었다. 자칫 든든한 후원자였던 민단 조직이 와해 될 판이다. 정치권과 당국이 이제라도 재일교포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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