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tting aside negative feelings towar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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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tting aside negative feelings towar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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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 Geum-deok

Yang Geum-deok, 82, who was forced by Japan to work at Mitsubishi Heavy Industries from October 1944 to August 1945, said that although she is a victim of Japanese colonization she hopes the earthquake-torn country recovers quickly.

“They are the enemy to us, but the earthquake breaks my heart,” Yang said in an interview with the JoongAng Ilbo. “I was shocked to see when the waves [from the tsunami] struck and swept through farm fields and even moved airplanes.”

In December 2009, the Japanese government fueled anger among Koreans after it sent 99 yen ($1.21) in welfare pension refunds to seven Korean women who were used as forced laborers during Japanese colonial occupation.

Yang and six other women had filed lawsuits against the Japanese government in 1998 and they each received the 99 yen 11 years later, but the women criticized the move for not reflecting the inflationary value of the amount they had originally paid.

“Japan caused so much pain for us, so why wouldn’t I have hatred toward [the country]?” Yang said. “But after seeing footage of the pandemonium that has swept through Japan after the earthquake and tsunami, I want to help them.”

Meanwhile, a civic organization that stages protests in front of the Japanese Embassy in Seoul every Wednesday demanding the Japanese government admit its role in drafting Korean sex slaves before and during the World War II, decided it will mourn the earthquake victims this Wednesday instead of holding pickets condemning the Japanese government, the Korean Council for the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said yesterday.

The organization has been staging the protests every Wednesday since January 1992. Yang is a member of the group.

“Grandmothers [former comfort women] couldn’t take their eyes off television-news reports on Japan’s earthquake and they are deeply concerned,” said Yoon Mee-hyang, president of the group.

Yoon said the organization hasn’t skipped a single Wednesday demonstration since 1992, except once in 1995, when the Kobe earthquake struck Japan.

The organization said Korea understands the pain Japan is going through because Koreans have also gone through heartbreaking incidents in the past.


By Kim Mi-ju, Yoo Ji-ho [mijukim@joongang.co.kr]

Related Korean Article[중앙일보]
양금덕 할머니 “하늘 아래 다 귀한 생명 … 재앙 딛고 일어서길”
태평양전쟁 때 강제 노역 … 미쓰비시와 아직도 배상 협상

양금덕 할머니가 도난카이(東南海) 지진으로 숨진 한국인들을 위해 나고야(名古屋) 미쓰비시중공업 공장부지에 세워진 위령비의 사진을 가리키며 “일본인에게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참 비열한 나라예요. 그래도 나라가 나쁘지 국민이 나쁘겠습니까. 시커먼 바닷물이 마을을 집어삼키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소식을 접한 양금덕(82·광주광역시 양동)씨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2009년 9월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이 한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99엔을 지급했던 일명 ‘99엔 소송’의 당사자다.

사회보험청은 “후생연금보험법에 따라 당시 급여를 기준으로 계산한 금액”이라며 99엔을 지급했다. 양씨 등 7명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현실적인 금액을 지급하라”며 재심사를 청구한 상태다. 양씨도 지진 피해자다. 그의 옆구리 상처가 과거의 아픔을 보여준다. 1944년 12월 7일 나고야(名古屋)의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공장에서 일할 때 입은 흉터다. 그날 점심 무렵 도난카이(東南海) 지진이 나고야 일대를 강타했다. 전남 목포·나주·광주 출신 각각 2명씩 모두 6명의 소녀가 무너진 건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양씨는 그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갑자기 공장이 심하게 흔들렸어요. 누군가 ‘지진이다’라고 외치더군요. 건물 밖으로 뛰어 나가는데 공장이 무너지면서 지름 1~2㎝가량의 쇠꼬챙이가 옆구리를 뚫고 들어왔어요. 병원에 갈 처지도 못 돼 식당에서 된장을 구해 발랐는데, 지금까지 쑤시고 아프네요.”

 그는 당시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1944년 5월 전남 나주 대정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본에 가면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만 믿고 나고야로 간 지 7개월여 만이었다. 그때 함께 간 전남·충남 지역 13~16세 소녀 288명은 나고야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에서 매일 10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그는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너무 억울했다. 양씨는 그래서 99년 3월 같은 처지의 근로정신대 할머니 7명과 함께 일본 정부 및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다 2009년 양씨 등이 후생연금에 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일본 사회보험청이 99엔을 지급했다. 그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을 중심으로 다시 배상을 요구해 현재 미쓰비시 측과 협상 중이다. 양씨는 “일본이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줬는데 왜 미운 마음이 없겠느냐”며 “그러나 모두 귀중한 생명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이 재앙을 딛고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씨가 활동 중인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은 14일 “하늘 아래 다 같은 생명이며, 형제다. 대지진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이 발생한 데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는 성명을 냈다. 시민모임은 “국경을 달리한다고 해서 결코 아픔을 달리하지 않는다”며 “국가적 재앙이 조기에 수습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와 국민이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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