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Horses, history and corruption

Jan 04,2002

Here comes 2002, the year of the horse. In the Chinese calendar, one of the schemes for counting years is a 12-year cycle. Twelve animals, including the horse, are used to represent these 12 years. Past years of the horse have been significant in history.

The popular TV drama, "The Empress Myeongseong," recently dramatized an army rebellion in 1882, another year of the horse. The Joseon Dynasty's old-fashioned troops rose in revolt in June 1882 against the state's preferential treatment of the better-outfitted troops that Japan had trained for the kingdom, and also out of anger because of delayed payment of their wages.

The rebels drove out Empress Min, better known as Myeongseong, and her faction that supported an open-door policy. Daewongun, the father of Empress Min's husband King Gojong, was returned to power. But the coup d'etat ended in failure a month later; Daewongun was abducted by the Chinese Qing Dynasty's army to Tianjin, China.

The 1882 rebellion seems to have resulted from a power struggle between Empress Min and her father-in-law. But it was actually a fight between open-door and closed-door policy supporters. It was an important turning point because both sides sought alliances with outside powers, accelerating the Joseon Dynasty's collapse.

The insurrection taught that if power is concentrated and the powerful become corrupt, even the good aims of the group will fade away. Though Empress Min's supporters originally wanted to both open the nation's doors and keep the dynasty, they brought about the coup d'etat through their monopoly of power and their corruption. The old-fashioned troops had not been paid for 13 months, while Empress Min's people and the new-style troops lived the good life.

The year 1762 was another year of the horse. Jeong Yak-yong, one of the greatest scholars in Korean history, was born at a village near Namyangju city, Gyeonggi province, in June of that year. Over his 75-year life, he wrote books that were a lasting gift to the Korean people. As if he had forecast the army rebellion in 1882 and the corruption scandals of 2001, he wrote in one book, "Incorruptibility is the fundamental rule that a local government head must follow, the source of every good and the root of every virtue. One who is corruptible cannot head a government office."

We cannot waste more time in corruption scandals. We should follow the lesson of a forerunner who was born in the year of the horse.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of the JoongAng Ilbo.


by Sohn Byoung-soo







임오년 (壬午年)

2002년, 임오(壬午) 년의 첫날이 밝았다. 말띠해답게 시간 속으로 사라져간 세밑의 모퉁이를 돌아 늘씬한 준마가 갈기 곧추세우고 "히히잉"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임오년은 특히 우리 근대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인기 사극 '명성황후'에서 최근에 소개한 임오군란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지금부터 1백20년 전인 1882년 6월 일본의 지원을 받는 신식군대와의 차별대우와 체임(滯賃) 을 견디다 못한 구식군대의 쿠데타였다.

반란은 민비(閔妃) 일족과 개화파를 축출하고 대원군을 권좌에 복귀시켰으나 청군(淸軍) 이 대원군을 톈진(天津) 으로 납치해가면서 한달여 만에 실패로 끝났다.

임오군란은 외견상 왕비와 시아버지간에 벌어진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근대사 속에서는 개화파와 수구파가 권력을 위해 무분별하게 외세를 끌어들이면서 왕조시대의 몰락을 재촉한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임오군란은 권력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고 부패가 가세하면 아무리 좋은 명분도 빛을 잃는다는 교훈도 남겨주었다. 민비 일족이 비록 개국(開國) 과 왕조 유지를 함께 취하려는 명분을 가졌으나 지나친 권력 전횡과 부패로 쿠데타를 초래하고 말았다. 민비 일파나 신식군대가 호의호식하는 동안 13개월씩이나 급여가 밀린 구식군대의 봉기에 양민들이 적지 않게 가세한 것은 당시 민심의 소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임오군란으로부터 역시 1백20년 전인 1762년도 임오년이었다. 이 해 우리는 근대사의 큰 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을 얻었다. 영조 38년이던 그해 6월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말고개(馬峴) 에서 태어난 다산은 일흔다섯 생애를 살면서 후세에 축복과도 같은 저작들을 남겼다.

그는 구한말의 임오군란이나 거액의 뇌물이 핵심인 '게이트' 시리즈로 날밤을 지샜던 2000년의 정경을 예상이라도 한 듯 『목민심서(牧民心書) 』에서 이렇게 썼다. "청렴이란 수령이 지켜야 할 근본 요체이고,모든 선(善) 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 능히 수령 노릇을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올해 다시 맞는 임오년도 격변이 예고되는 한해다. 88올림픽 이후 최대의 국제행사인 월드컵을 성공시켜야 하며, 선거를 통해 차기 정권을 결정지어야 하는 한해다. 더 이상 부패 스캔들로 세월을 허송할 수는 없다. 말띠 선각자 다산의 가르침으로 말(馬) 을 삼아 고삐 다시 감아쥐고 올 한해 월드컵도, 대선도 거침없이 주파(走破) 해보자. 이랴, 이럇!



by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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