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China’s help then and now

Apr 29,2003


The trilateral talks in Beijing between North Korea, China and the United States ended last week, suggesting that a long and winding road lies ahead. While watching the talks in which China participated as a mediator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North Korean nuclear problem emerged as a hot international issue, I thought of a negotiation 121 years ago.

On May 22, 1882, the Joseon Dynasty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signed an agreement with the mediation of China. The agreement was the fruition of an effort by the United States, which for 16 years had tried to open the reclusive kingdom in East Asia.

The United States before the agreement made repeated diplomatic and strategic blunders. Its strategy relied on military power on two occasions, which ended in failure. The clashes between the two countries took place in 1866 and 1871, both initiated by the United States. In 1871, in particular, the United States attacked Joseon with five military vessels and 1,200 soldiers.

The United States then started looking at diplomacy. It first asked Japan to preside over the talks. But Joseon refused Japanese mediation. The United States did not want to recognize China’s influence over Joseon, but because Joseon wanted Chinese mediation, changed its strategy and allowed China to play a role.

The agreement was made possible by the three countries’ different policy goals. In return for fulfilling the U.S request for talks, China wanted to be seen as a traditional power in East Asia. Indeed, after the 1882 pact, China signed a treaty with Joseon, which states Joseon is subordinate to China. The United States thought it would ultimately realize its interests in East Asia after crowding out China. As for Joseon, it saw the United States as less imperialistic than other powers at the time. It thought its long friendship with China would be a balance against the United States. But Joseon depended too much on a failing China, and the days of Joseon thereafter were tragic.

Unlike during the talks more than 100 years ago, China is now growing more powerful. North Korea, unlike Joseon, which had nothing to depend on, has South Korea to help its cause. But it excluded the South from the Beijing talks. China indeed has become a vaunted mediator this time.

What gains have China and the United States shared this time? Are we confident that our analysis is correct and that the situation is different from what it was 121 years ago?

The writer is a JoongAng Ilbo editorial writer.


by Kim Seok-hwan

中國중재

베이징(北京)에서 열렸던 북한.중국.미국 간 3자회담이 예상대로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고 끝을 맺었다. 한반도의 핵문제가 국제 정치의 주요 이슈로 등장한 이래 처음으로 중국이 단독 중재자로 참여한 이번 회담은 여러 모로 1백1년 전 상황을 떠올린다.

1백21년 전인 1882년 5월 22일 당시 조선도 중국의 중재로 미국과 조.미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당시의 조약체결은 동북아의 은둔왕조(隱遁王朝) 조선을 개국시키려던 미국의 노력이 16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었다. 하지만 수교 때까지 미국은 수많은 전략적.외교적 실수를 반복해왔다.

군사력을 앞세웠던 초기의 개국 전략은 두 차례에 걸친 직접 무력 충돌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끝났다. 1866년(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1871년(신미양요)에 있었던 두 번의 직접 충돌은 모두 미국의 일방적 선제 공격으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중재 외교로 방향을 선회한다. 하지만 일본의 중재를 거부한 조선의 입장 때문에 미국은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중국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하는 전략적 수정을 택한다. 이는 3국의 당시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중국은 미국의 중재 요청을 성사시켜줌으로써 한반도에서 중국의 전통적 지역적 영향력을 인정받고자 했다. 미국과의 수교 중재 후 조선을 압박해 '조선은 청의 속방'임을 명시한 '조.청 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반면 미국은 일단 발만 들여놓으면 서서히 조선을 중국 영향력으로부터 이탈시켜 종국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조선은 미국을 다른 제국주의 세력보다 덜 야심적으로 보았고 전통적 후원 세력인 청의 도움으로 미국과 수교하면 세력 균형을 이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선의 정세 분석의 치명적 약점은 쇠락하는 중국에 대한 과잉 기대였고, 이후의 역사는 조선의 입장에서는 비극사로만 흘러갔다.

1백년 전과 달리 현재 중국은 욱일승천의 기세다. 기댈 곳 없던 조선 조정과 달리 북한에는 같은 동족인 남한이 있다. 그런데 남한이 배제된 채 다시 1백여년 만에 중국이 북한과 미국, 아니 한반도와 미국 간의 중재자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중국과 미국은 이번엔 어떤 이익을 나눠 먹었을까. 이를 용인하고 체념하는 우리의 정세 분석은 절대로 실수가 아니며 1백년 전 조선 조정의 정세 분석과는 다르다고 과연 자신할 수 있을까.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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