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Buddhist nun makes point but should eat

Feb 04,2005


Northern Ireland is the land of mystery. In the gentlemanly country of the Great Britain, the region is ridden with constant terrorist activities and blackmailing among armed resistance groups. One of the well-known symbols of Northern Ireland are political murals, especially the images of Bobby Sands. The portrait depicts his gaunt face and disheveled hair right before he died from a hunger strike in a Belfast prison. A core member of the Irish Republican Army, he died in 1981 from starvation after a 66-day hunger strike at the young age of 27.

The hunger strike was his last measure of protest as a man behind bars. He demanded that his organization was not a criminal one but a group of independence fighters. They should be treated not as criminals but as political offenders, he said. During the hunger strike in the prison, he won a seat in Parliament. However, the British government was unshaken. He continued the hunger strike, proclaiming that oppression only encourages the revolutionary passion for freedom. More that 100,000 people came to his funeral. The nine other members of the Irish Republican Army who remained in the prison followed the path of Mr. Sands died after hunger strikes. The life of Mr. Sands fueled the armed independence movement in Northern Ireland. The Irish Republican Army holds a memorial procession remembering Mr. Sands every year.

In the history of Korea, patriotic scholars staged memorable hunger strikes in their struggle against imperial Japan. In 1906, Choi Ik-hyeon raised an independence army at age 74. When he was arrested and imprisoned on Tsushima island, he didn’t eat because he did not wish to sustain his life with rice from the enemy. When the body of the old fighter was returned to Busan, mourning crowds gathered to pay condolences. Many scholars wrote tribute poems at the funeral, and Hwang Hyeon wrote, “Where should we bury the dolorous bones of the fighter?” Four years later, when Korea was officially annexed by Japan, Mr. Hwang gave up eating and drinking for six days and killed himself by swallowing a lump of opium.

The Venerable Jiyul desperately believes in saving the habitat of the salamander. Her cry has reverberated around the country, and the nation has learned enough of her cause. She should stop fasting and save her life.

The writer is the JoongAng Ilbo’s London correspondent.


by Oh Byung-sang

단식

북아일랜드는 불가사의한 땅이다. 점잖은 신사의 나라인 영국에서 무장세력 간의 테러와 협박이 끊이지 않는 분쟁지역이다. 북아일랜드의 대표적 상징물은 대형 벽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보비 샌즈(Bobby Sands)라는 인물화다. 벨파스트 감옥에서 단식투쟁으로 숨지기 직전 앙상한 얼굴에 산발한 모습이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아일랜드공화군(IRA) 핵심멤버였던 그는 1981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66일간의 단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단식은 영어(囹圄)의 몸으로서 택할 수 있는 최후의 정치투쟁 수단이었다. 그는 "IRA는 범죄집단이 아니라 독립군이다. 따라서 우리를 형사범이 아니라 정치범으로 대우해 달라"고 요구했다. 단식투쟁 중 보궐선거에 옥중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억압은 자유를 향한 혁명적 열의를 북돋울 뿐"이라며 단식을 계속했다. 장례식엔 10만 조문객이 몰렸다. 감옥에 남은 9명이 그를 따라 단식 끝에 숨졌다. 보비는 무장독립투쟁에 기름을 부었다. 지금도 IRA는 무장을 포기하지 않은 채 매년 보비를 기리는 추모행진을 한다.

우리 역사 속 단식투쟁은 꼿꼿한 선비들의 항일투쟁이다. 1906년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은 74세의 고령에 의병을 일으켰다. 일제에 붙잡혀 쓰시마에 갇히자 "원수의 밥으로 연명하랴"며 곡기를 끊었다. 부산포로 돌아온 늙은 투사의 주검 앞에 추모인파가 몰렸다. 선비들이 현장에서 쓴 만사(輓詞) 가운데 으뜸은 "고국에 산은 있어도 모두 빈 그림자만 푸르를 뿐/가련타 임의 뼈는 어드메에 묻을꼬"라는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작품이었다. 빼앗긴 산하에 어찌 독립투사를 묻겠느냐는 자괴감이다. 매천은 그로부터 4년 뒤 합방의 비보를 듣고 엿새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아편 덩어리를 먹고 숨을 거뒀다. '지식인으로서 사람 노릇 하기가 힘들구나(難作人間識字人)'로 끝나는 절명시는 남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단식은 절박한 상황에서 택하는 마지막 절규다. 감옥에 갇힌 독립투사는 아니지만 지율 스님 역시 그만큼 절박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 절규는 전국에 메아리쳐 뜻이 충분히 전달된 듯하다. 정부와의 합의로 스님이 단식을 접었다니 다행이다.

오병상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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